영광이라고 하셨다. 젊은 학생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요즘은 참 소통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는데 이런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뻐요. 예전처럼 모두가 상부상조하며 함께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늘 상처를 삼키기만 했어요. 그런데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여러분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
베트남 전쟁 파병 용사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어 전시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한 달째 진행하고 있다.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매주 참여할 순 없었지만, 회차마다 진행 상황과 결과를 검토하고 점검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현장을 엿볼 순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서로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졌다.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인터뷰였다. 파병을 가기 전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삶이 달라졌는지.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하시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늘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는데도 후련한 얼굴로 말을 마치셨다.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런 말을 꺼내면 공감은커녕 비웃음거리만 됐다고 하셨다. 단순히 ‘좋은 일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이야기를 알리고 이 울림을 전하고 싶다.
민들레는 홀씨가 바람에 날아가 퍼지면 새 땅에 꽃을 피운다. 참전 용사의 이야기가 씨앗이라면, 전시를 보고 간 많은 이들은 바람이 되길 바란다. 그들의 마음속에 새 희망의 꽃이 활짝 피기를 바라는 게 최근의 가장 큰 소망이 됐다.
당신은 나라의 부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파병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나라만 강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투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라와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기조는 이제 강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개인주의적 사고는 코로나19라는 특수적 상황을 지나서 더 강해졌다. 더불어 인공지능이 부상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 더 줄어들 것을 주장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애인이 인공지능과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는 고민 글도 보인다.
“당시 우리나라의 군대는 근대화되지 못한 상태였어요. 파병 간 군인의 월급을 나라에서 가져가 자본을 마련하고 전쟁에서 쓰다 버려진 무기들을 수거해 와서 장비를 갖춰나갔죠. 국군의 근대화에 당시 베트남 파병 군인들의 노고가 컸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자랑스러워요. 파병 당시에는 상황실 정보부에서 근무했어요. 그래서 다른 부대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답니다. 사상자의 보고를 받을 때 제가 있던 상황실에서는 숫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진도 함께 전달돼요. 정말 참혹했습니다. 아직도 사진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때 죽어 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생각나요. 낯선 땅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참 많이도 쓰러져 갔어요.”
그래도 그때를 후회하지는 않는 마음.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당신과 우리는 시대도 세대도 너무 다르다. 그렇지만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광장으로의 모임과 탄핵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어져 오고 있는 게 아닐까? 개인으로 보이던 너무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모두가 같은 곳으로 모였다. 추위에도 도로 위를 지키며 ‘나라’를 위해 견뎠다. 우리는 그래도 아직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소통, 유대감, 사회적 활동. 이 단어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 우리는 계속 너와 나의 개인이 아니라 우리로 엮여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라의 위기는 우리가 우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인공지능이니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도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그래. 요즘 사람은 공동체 의식이 옅긴 하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촛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드는 것으로. 나는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연대가 변화할지 기대된다.
다시 돌아온 일상이 기쁘다. 우리는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겨울을 겪었고 같은 기억을 나누었다. 우리가 ‘우리’가 되어 광장으로 모이는 힘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였고, 다음에도 모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믿음은 오늘의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삶에 어떤 목표를 가지기 어려운 시대를 지내고 있지만, 함께 섞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 혼자만의 힘듦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이상을 크게 가져야 현실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 글을 읽고 모두 조금이나마 따듯함을 나누고 함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작은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