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김민지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현재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시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어국문학 강의를비롯해 문학, 글쓰기, 북토크 등 다양한 특강을 진행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동 시학’, ‘브라이언 마수미’ 등이 있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10월’(기형도) 중

 

지나치게 더웠던 여름이 가고, 갑자기 부는 차가운 바람은 나도 모르는 사이 큰 공백을 만든다. 그 공백은 어김없이 외로움을 불러온다. 일교차가 내 몸에 알레르기 반응을 남기듯, 갑작스러운 변화는 기쁘기도 하고 간혹 절망적이기도 하면서도, 이상하게 나를 슬프게 한다. 아마 나도 모를 미안함 같은 것이 남아 있어 그런가 보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기형도를 떠올린다. 그리고 10월이 되면, 제목처럼 ‘사랑하는 시월의 숲’을 생각한다. 과거의 절망을 잊었다고 믿을 때마다, 어느새 절망은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다시 나온다. 하지만 뭐, 그저 흘려보낼 수밖에.

 

1. 문학

나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다.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었으며, 눈에 띄는 재능도, 남다른 총명함도 내게는 없었다. 오히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동요하고, 미리 불안해하는 겁 많고 나약한 아이였다. 그런 내게 문학이 보여준 세계는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문학은 나에게는 동경이었다. 그 속에서 사랑을 처음 배웠고, 좀처럼 울지 않는 내게 슬픔이 얼마나 인간다운 감정인지 알았다. 처음 운 것도 시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이 궁금했고, 진실로 슬퍼했다.

문학은 언제나 어린 날의 나를 감쌌다. 현실은 차갑고 무심했으나, 문학이 보여주는 서사는 눈이 부실 듯 아름다웠다. 아마 나는 그때의 순간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문학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2. 일상

가끔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눈을 감고 지난날을 떠올린다. 눈을 감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 어렴풋이 스친다. 망각과 환상으로 뒤섞인 찰나의 장면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 안에는 고통 속을 헤매던 내가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묵묵히 견뎌준 흐릿한 얼굴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내가 언젠가 읽었던 시와 소설의 장면들, 그 언어들이 내 안에서 뒤섞여 만들어낸 하나의 잔상이었다.

 

3. 아빠

나는 슬픈 일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말을 꺼내면 슬퍼지고, 내가 슬퍼하면 내 옆의 사람들도 또한 슬퍼질 테니… 그저 모든 것을 흘려보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심함은 종종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한 권의 시집을 꺼내 든다. 그 시집 속에는 언제나 아빠가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떠올리고 싶은, 이 양가적인 마음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한꺼번에 내게 밀려온다. 이미 지나간 미안함, 눈 오던 날의 놀이터, 끝내 먹지 못한 충무김밥, 그리고 다시 돌아와 머무는 미안함.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다. 문학은 그런 내 마음을 대신하여 말해준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슬픔이라고, 그리고 사실 슬픔이 아니라 그리움이라 내게 말해준다.

 

4. 선택

나는 종종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라이프니츠가 그랬듯, 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 안에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하게 하셨다. 그러니 내 모든 선택은 신의 섭리 안에 놓여 있으며, 그 자체로 이미 최선이기에 후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 믿음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내 선택 또한 최선이었음을 믿으려 노력한다.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신은 어련히 최선의 길을 택하셨을 테니, 그저 묵묵히 내 몫의 하루를 살아내면 그만이다. 혹여나 후회가 스칠 때면 분명 필연적인 무언가가 있으리라 스스로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믿는다. 모든 것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외로운 순간에는 언제나 시가 있었다. 시인도 절망을 말했고, 진부한 위로 대신 고통을 보여주었으며, 나보다 더 슬퍼했다. 그때의 안도감은 지금까지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소리 없이 그리워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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