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학생이든 교환학생이든, 독일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수업을 듣는 것 외에도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독일 내 수많은 도시를 틈날 때마다 다녀보는 것. “독일 여행은 당연히 많이 다닐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업을 듣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독일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면, 독일 내 지역을 구석구석 다니기에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여유롭지 않다고 했지,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면, 한 달 동안 주어진 주말은 네 번이다. 즉, 주말마다 매번 다른 도시들을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닌데,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나는 주로 이런 상태이기 때문이다.유다빈밴드의 곡 ‘GET LUCKY!’(2025)에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순 없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뮤직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듣게 된 곡이었는데, 이 가사가 너무나도 내게 와닿았다. 이전에 유행한 “소확행”이라는 말은 소소한 일에서라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이 가사는 아예 시각을 달리해 내게 “굳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어?”라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도 완전한 인간임을 주장하기는 매우 힘들다. 여성의 삶은 종종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되며, 그 경계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된 여성 억압 구조가 사회 전반에 침투한 결과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무엇을 봐야 이 구조를 분명히 감각할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획기적인 계획을 선보인다. 27세의 여성이고 심리학 석사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미래에 대한 불안, 기후위기에 대한 공포,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 이야기,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낙관적이지 않은 경제 지표들, 취약한 노동 시장, 쌓이는 과제와 미친 듯이 다가오는 데드라인에 쫓기는 일상∙∙∙, 우리 모두의 삶이 불안정한 것 같다.“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애나 로웹하웁트 칭은 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
그런 영화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영화 어때?” 라는 말에, “재밌어”라고도, “흥미로워”라고도, “잘 만들었더라”라고도 대답할 수 없는, 사무치는 마음과 조심스러워지는 생각에 아무런 이야기조차 내어놓을 수 없는 영화. ‘다음 소희’(2023)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아주 단순한 계기였다. 지난 여름, 거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누워 있다가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서 티빙에 들어갔다. 그리고 ‘너와 나’(2023)를 통해 알게 된 김시은 배우의 이름을 치자 이 영화가 나왔다. 그래서 틀었을 뿐이었다. 핸드폰을
‘무엇을 위해 교환학생이 돼 미국에 와 있는가?’ 교환학생 생활 동안 간혹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질문이다. 개강 후에 한 달 정도는 적응하기에 바빴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했고, 수업에도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며 마치 신입생이 된 것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종강이 한 달 남은 지금,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물려버린 학교 식당 음식, 그리고 다시 평범한 대학교 3학년이 된 것 같은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새로운 곳에 있지만 학교에 다니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교환학생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공인행동분석가(BCBA)로서 자폐 및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행동 중재 및 교육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다인ABA행동지원센터 및 하다행동연구소 대표이자 국 립정신건강센터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며, 사이버대학에 출강 중이다.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준비하며, 2003년 미국에서 석사 졸업 무렵 참여한 학회의 잡페어(Job Fair) 인터뷰에서의 질문이 기억에 떠올랐다.“당신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요”라는 질문이었고, 나는 대략 “우리는 응용행동분석(ABA)을 통해 학습에 어
현재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시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어국문학 강의를비롯해 문학, 글쓰기, 북토크 등 다양한 특강을 진행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동 시학’, ‘브라이언 마수미’ 등이 있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아무런 잘못도 없다-‘1
흔히 대화 소재나 면접 질문으로 많이 사용되는 질문인 “어떤 걸 좋아하세요?”는 정중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저는 늦게 일어나 뒹굴뒹굴하면서 쇼츠를 보면서 요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그 자리에서 정제된 버전의 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간의 암묵적인 대답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에 해 이야기하고 싶다.우선 나는 눈이 쌓이고 공기가 차갑지만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보
2025년 마르부르크 대학의 겨울학기 시작일은 10월1일이다. 1일부터 8일까지 국제 학생들을 위한 환영 파티, 게임 파티, 도시 투어, 수강 신청 안내 등 다양하게 구성된 겨울학기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 후, 빠르면 10월 중순 혹은 10월 말에 본격적인 첫 수업이 시작된다. 나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수강 신청 시스템으로 인해 10월 초에 신청한 과목이 독일어 언어 코스와 영화 수업, 총 2개밖에 없었음에도 개강한 지 4주 차에 들어서는 지금은 언어 코스 포함 총 4개의 수업을 신청한 상태다. 사실 이런 신청이 가능했던 이유는 독일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속도에 치여 살아간다. 달리지 못해 걷고, 걷다 못해 기어서라도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쳐간다. 스스로의 속도를 잃은 채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기에 버겁고, 또 무겁다.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 이곳은 휴남동에 위치한 한 동네 독립 서점이다. 영주는 서울의 한적한 골목에 독립 서점을 열었다. 삶에 지쳐버린 자신뿐만 아니라 지친 이웃들까지 모두 한 번 더 일어서 보기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이 가득한 지금, 휴남동 서점
최근 뉴스 기사를 읽거나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를 대체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기술 기업들은 인공지능이 의학, 금융, IT 등 다양한 영역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IT 영역에서는 주니어 개발자들이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걱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때론 불안감을 느끼지만, 가까이에서 관찰할수록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확인
테네시주의 인종 비율은 약 백인 77%, 흑인 13%, 아시안 5%, 기타 5%로 구성돼 있다. 이스트테네시대학(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ETSU)의 학생 인종 비율은 약 백인 79%, 흑인 6.5%, 아시안 2%, 복수 인종 3.7%이다. 실제로 인종을 의식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내 시선 속에 담기는 대다수는 백인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수업을 듣고 있다. 성별과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도 한 사람의 정
우리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노동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양대학교에서 행정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변호사와 공인노무사 자격을 가지고 20년째 일하고 있다. 저서로 ‘당신의 노동법 자문 변호사’, ‘소청변호사 상담 노트’, ‘공인노무사 출신 노동전문변호사가 알려주는 진짜 쓸모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법 이야기’가 있다.거의 1년 365일 글을 쓴다. 소장, 준비서면, 변호인 의견서, 자문 의견서… 쓰고 또 쓰고 질리도록 쓴다. 열 시간이 넘도록 의자에 앉아 기록을 읽고 서면을 쓰는 일을 십여 년간 계속하고 있다. 그날 써야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2025)을 보는 내내 질문에 직면한다. '나는 사랑을 받을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류은중(김고은)인가, 아니면 결핍된 사랑 때문에 관계를 파괴하는 천상연(박지현)인가?' 우리는 마땅히 은중이 되기를 바라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마다 속으로는 상연의 비뚤어진 열등감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 우리들의 평범한 관계에서 드러나는 미묘하고도 사실적인 인간의 감정을 30년의 연대기에 걸쳐 세밀하게 풀어나간다.40대의 은중이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상연에게서 마지막 부탁을 받으
어린 시절, 꿈을 물으면 ‘토이 스토리’를 떠올렸다. 주인이 잘 때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들. 그 장난감에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나는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웃고 울며 걸음마를 배우는 피조물들을 본다. 영혼이 충만해지는 순간이다.나는 17년 해외파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국제학교만 다니며 자란 덕에 영어는 모국어처럼 편했다. 2006년 영문과를 졸업한 뒤 KBS 보도국에 입사해 ‘영어 하면 민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방송과 창작, 그리고 영어. 그 모든 것은 훗날 인생 2막을 위한 예고편이었다. 20
독일 시각으로 23일 오후6시30분, 드디어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했다고 해서 두 발 뻗고 쉴 수 있는 내 집에 도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프랑크푸르트 중앙역(Frankfurt Hauptbahnhof), 마르부르크역(Marburg)을 거쳐 집 도착까지 3시간의 시간을 예상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한 가지 변수를 만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듬 타고 마르부르크 왔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던 것과 달리 내가 마주한 현실
어느새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계절이 왔다. 그건 친밀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전혀 뜬금없는 누군가가 되기도 한다. 다음 주에 만날 아직은 서먹한 동아리 부원, MT에서 밤새 수다를 떨었던 선배나 후배도 있다. 아주 가끔 잊고 지냈던 누군가가 생각날 때면, 당신은 어떤 마음인가. 연락 한 번 해볼까 싶다가도 괜히 망설여지고, 이내 들었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일 것이다. 먼저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은, 그저 내 삶에 스쳐 간 지인의 관계. 이를 사회 연결망 이론에서는 ‘약한
이 책은 젊음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도리언 그레이는 몹시 아름답고 부유한 청년이다. 그는 화가 배질의 뮤즈가 되어 화실에 드나들던 중 배질의 친구 헨리 경을 만나고, 그로부터 젊음이 얼마나 빛나며 짧게 타오르는 것인지 듣는다. 젊음에 집착하게 된 그레이는 ‘그림이 변하고 나는 지금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레이가 연인을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순간부터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그가 죄악을 저지를수록 그의 초상화는 추하게 늙어가지만 ‘진짜’ 그레이는 가장 아름다운 청춘, 배질이 그의 초상화를
19세기 말은 한국이 본격적으로 서구와 조우하던 시기였다. 개항 이후 한국을 방문한 서구인들은 풍물과 풍속, 제도와 사회 구조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있던 노래와 시에도 눈길을 줬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단순히 민속학적 호기심으로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적 깊이를 진지하게 파악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기록은 한국 시가(詩歌)의 의미와 가치를 당대의 세계적 지평 속에서 어떻게 조망했는지를 보여 준다.우선 캐나다 출신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은 문헌에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