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감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민의 끝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일 텐데 쉼 없이 고민하면서도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학보사에서 일하는 중에도 이러한 고민을 피할 수는 없다. 마케터로서는 아쉬운 발언일지 모르겠지만, 학보사의 기사를 완벽히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매주 어떤 기사를 메인으로 콘텐츠를 제작할지를 고민하면서도 말이다. 분야가 다르다 해도 한 단체의 구성원으로 자리하다 보면 하나의 기사를 내기 위해 각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스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면서도,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종래에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보의 구성원으로서는 독자가 더 눈여겨볼 만한, 또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기사를 고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매주 작업에 임한다.

고민이 이어지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사랑하게 되곤 한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그리 거창한 열정이나 사명감으로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상할 정도로 자주, 또 오래 일에 손을 댄다. 아무도 모르게 수시로 마음을 준다. 매사에 이렇게 임하며 살아왔지만, 일회성 과제가 아니라 일정 기간 한 기관에 소속돼 있으니 그 마음의 크기가 어째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듯한 기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여러 일 때문에 하루가 잘게 쪼개지는 걸 느낄 때마다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모아둔 마음이 많다는 핑계로 선택 앞에서 고민하다가 모든 것을 놓쳐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다반사다. 지겹고 지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어떻게든 해내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면 한순간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소망인지 착각인지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의무감 이상으로 이상하게 놓지 못하는 마음, 그게 일을 사랑하게 돼 버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쓴 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애정을 가지게 되는 걸까. 독서에도 편식이 있다는데 하물며 뉴스를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읽지 않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분명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들여 쓴 기사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그 경로가 내가 만든 콘텐츠였으면 하는 욕심이 자꾸만 생겨 뭐라도 더 시도해 보고 싶다. 과욕일지도 모르지만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관성에 기대어 일을 하기에는 천성이 그렇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이달의 첫 주에는 독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근 몇 달간 학보 내외로 유독 누군가를 인터뷰할 일이 많은데, 매번 처음 보는 인물에게서 얼마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걱정하다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번 독자 분석 인터뷰 또한 질문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그렇지만 이건 꼭 물어보고 싶은데 어쩌지, 하는 마음을 반복하며 준비했다.

‘펜’, ‘변화’, ‘이화여대’. “‘이대학보’ 하면 어떤 이미지나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언뜻 단어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의미를 품고 있지만, 그 사이에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펜은 기록을 남기는 도구면서 변화는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화여대라는 공간은 그 기록을 필요로 하는 배경이자 우리의 독자다.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적 마음 때문인지, 디지털 기기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시대에도 펜이 여전히 글과 학보사를 상징한다는 점이 좋았다.

생각해 보면 독자를 만나는 일은 결국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과 비슷하다. 내가 학보사의 결과물을 애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독자의 평을 직접 들으려니 조금은 긴장되기도 했는데, 지금의 학보에 생각 이상으로 큰 지지를 주시면서도 조언을 전해 주셔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학보는 교내 기관이 이래도 돼? 싶을 정도로 좋다”라는 답변도 들었다. 그것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하는 일들은 그 질문을 더 멀리 밀어주는 일에 가깝다고 느낀다. 어떤 기사에 더 많은 사람이 반응하는지, 왜 어떤 문장은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지 살피다 보면 콘텐츠에 글이 꽉 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콘텐츠 하나하나가 작은 질문 하나를 품고 있다는 핑계로 붙들고 있다 보면 대충 해결이 된다. 그것이 어느 독자에게 닿아 잠시라도 멈춰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애정을 쏟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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