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감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민의 끝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일 텐데 쉼 없이 고민하면서도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학보사에서 일하는 중에도 이러한 고민을 피할 수는 없다. 마케터로서는 아쉬운 발언일지 모르겠지만, 학보사의 기사를 완벽히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매주 어떤 기사를 메인으로 콘텐츠를 제작할지를 고민하면서도 말이다. 분야가 다르다 해도 한 단체의 구성원으로 자리하다 보면 하나의 기사를 내기 위해 각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매주 신문을 만드는 학보사 기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신문을 읽기 싫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비단 신문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X(구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모든 것’의 화면을 켤 때마다 안 좋은 소식만 보여 핸드폰을 꺼버리고 회피하기도 했고,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거지 같아서 세상이 완전히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여성혐오를 범행 동기로 인정한 판결이 역사에 새겨진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묻지 마 범죄’로 뭉뚱그려졌던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의 이유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페미니즘 리부트 10주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화인 534명에게 물었던 수많은 질문 중 하나.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가. 간단한 질문임에도 대답하기란 어려웠다.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한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성평등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일상의 차원에서 비판한 경험은 있지만, 여성단체에 가입하거나 집회 혹은 시위에 나가지는 않았다. 탈코르셋이나 4B 같은 여성운동을 실천해 본 경험도 없다. 함께 분노했던 개인적 경험만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칭할 수 있을
“우리가 찾고 있는 변화는 우리가 돼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우리의 의견과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결국 변화의 주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변화는 거창한 행동에서 오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 한 표를 던지는 순간 같은 작은 행동들이 쌓여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대학 생활 역시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정치적 공간이다.우리대학의 2025년 등록금 인상률은 3.1% 로 다른 대학들보다 낮았다. 학교 측이 처음 제시한 3.9%보다 낮은 수치다. 이 결과는 학생들과 총학생
어렸을 때부터 늘 글과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첫인상을 물으면 책벌레라는 답이 돌아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다. 요즘은 이북(E-book)이 편리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물성이 있는 글이 마음에 더욱 오래 남기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소 고집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글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피곤해도 활자로 생각을 쏟아내야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백오십일만 이천 분의 귀한 시간들. 46호의 신문. 직접 찍은 사진으로 나간 수많은 기사들. 2년의 이대학보 생활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처음 2학기는 사진기자로, 다음 2학기는 사진부장으로 이대학보와 함께했다. 이대학보에서 내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칼럼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마음 속 여러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처음 카메라를 들고 나간 취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졸업생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단상에도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하고,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에서 나온 변하
3일, 용혜인∙손솔 등 10명의 의원이 제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현행 법체계가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이 골자다.예전부터 이런 관계를 꿈꿔왔다. 친구들에게 네이마르처럼 돈 많이 벌어서 용돈이나 달라는 농담도 (반쯤 진담으로) 수백 번은 했다. 생활동반자관계에서는 서로가 상호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일방적 요구는 하지 않는다. 잘 부탁한다느니, 실버타운 들어갈 때까지 그러고 살자느니 하는 얘기는 우리만의 ‘진대(
글로 사람을 읽어낼 수 있을까.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게 만들 책임이 주어졌다. 여름방학을 지나며 소속이 3부서 인물팀 기자로 바뀌었다. 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 명 한 명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람 이야기’를 쓴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성격 탓에 벌써 많은 이들을 만났다. 나와 같은 청년들, 무더위에도 자리를 지킨 우리대학 노동자, 웹소설 작가, 국회의원까지. 학보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다. 한 주차유도원 분은 휴게실로 불쑥 찾아온 내게 ‘버물리’를 챙겨 주
기독교는 왜 퀴어를 혐오하는가. 취재는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됐다.올해 우리대학은 ‘퀴어 논쟁’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학보도 일련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꾸준히 현장에 나가 기사를 발행했다. 아트하우스 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절부터 총학생회의 퀴어퍼레이드 참여, 학생들의 이화퀴어영화제 개최까지. 여러 사건을 기록했다. 사건의 발생을 다루는 기사를 보통 스트레이트라 부른다. 스트레이트는 주로 현장에서 작성되는 기사로,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루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켠에는 늘 찝찝함이
이번 여름 방학에 나는 처음으로 직접 돈을 모아 친구와 호주의 시드니로 여행을 다녀왔다. “답답한 서울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여행의 시작점이었다.이전에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올해 1월부터 과외비와 용돈을 아껴 쓰며 여행 자금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시간당 몇만 원씩 돈을 받아 모은 금액은 생각보다 턱없이 적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단순히 “어디가 좋다더라”, “어디가 유명하다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3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떨린다. 이번 선거가 어떤 싸움 끝에 얻어낸 선거인지 알기에, 그리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이젠 알기에 더욱 불안하다. 이만큼 간절했던 적이 없다. 정권 교체만을 바라는 게 아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더 많다. 구조 자체가 누군가를 배제하도록 굳어 있는 이 현실, 그 근본을 뒤집어야 한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경찰은 관성처럼 투표장으로 향하는 장애인들의
우리는 보통 기대와 어긋난 하루를 실망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기쁨을 길어올 수 있다고 믿는다. 폭우주의보가 내려졌던 어느 축제 날도 그랬다. 비에 푹 젖은 신발과 축축한 공기, 사람들의 우산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던 순간까지. 이상적인 하루는 분명 아니었다.비 덕분에 더 크게 울려 퍼지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떼창, 우산을 집어던지고 다 함께 비를 맞으며 뛰던 젊음의 열기, 그리고 친구들과 어깨를 붙이고 서로를 감싸 안으며 비를 피하던 그 온기까지-그 날의 기억은 고스란히 ‘행복’이라는 단어로
6월3일 조기 대선이 치뤄진다. 123일간의 투쟁 끝에 이뤄낸 민주주의의 결과다. 응원봉을 거리로 들고나와 광장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가득 채우고, 서로 연대하며 영하에 웃도는 날씨에도 거리를 지키며, 차별 없는 광장을 만든 그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여성들의 그 목소리를 세상이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내자 여성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배경음처럼 사라진 듯 지워졌다. 21대 대선은 18년 만에 여성 후보가 없는 대선이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대선 후보자들은 성별 지우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
대학에 입학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순간이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 속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특히 그 방황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어 학내 여러 단체를 살펴봤다. 다양한 공동체를 찾아다닌 끝에 내가 선택한 곳은 학보사였다. 캠퍼스를 걷다 마주한 작은 궁금증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던 습관이, 어느새 나를 이대학보로 향하게 했다.학보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직접 기획안을 내고 작성한 기사는 정문 앞 초록 도로에 관한 기사였다. 캠퍼
Q. 시간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임금? Q. …자연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부동산? Q. …그렇다면 인간을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자는 말했다. A. 노동력!칼 폴라니는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 토지, 화폐는 사실 인간 활동, 자연, 구매력의 징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노동력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서 이윤 추구를 위해 행동한다(고 여겨진다). 저출생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중물 역할을
날씨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중간이 없어서 이번 달 첫 주에도 꽃이 피기는 어려울 줄 알았다. 아침마다 지나는 여의도 한강 근처 길에는 벚나무가 많은데, 며칠 전에 지나며 보니 꽃은 보이지도 않고 가지만 무성했다. 같이 다니던 친구에게 저래서 벚꽃축제는 할 수 있으려나, 하고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다음 날 같은 길을 지나며 보니 나무들은 모두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꽃이 핀 나무들도 꽤 보였다. 그때가 지난 4일이었다. 유독 올 3월은 춥더라니, 이제야 봄이 오고 있는 걸 12월 여의도에 함께했던 나무들도 다 아는가 보
이제는 무기력과 무력이 구분조차 안 된다. 일상을 살아갈 능력조차 빼앗아 가고 있다. 처음 대면한 거대한 국가적 폭력에, 이전에 느꼈던 사적인 고통은 사사로운 것이 돼버렸다. 계엄은 이렇게 사적인 공간까지 내밀하게 무너뜨렸다. 더 이상 나의 미래에 대한 우울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대신 내란성 우울이 119일째(31일 기준) 신체에 박혀 핏줄을 막아서고 있다. 이를 어떻게 무기력이라 부를 수 있는가. 국민으로서의 능력을 박탈당했다. 나는 무력했다.무기력(無氣力)과 무력(無力)의 차이는 기운(氣)을 중심에 둔다. 무력은 어떤 일을 할
이번 연도, 이번 달, 아니 이번 주의 마녀는 누구인가. 한국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현대판 단두대’ 정신에 잡아먹혔다. 과거 마녀사냥이 불에 타 죽는 여인을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여론이라는 횃불이 특정인을 태워버린다. 한국의 달궈진 냄비에 양동이째 들이부어지는 가십거리들은 수만 개의 계정 사이에서 씹히고 맛봐지고 물어뜯긴다. 기어코 목숨 하나를 내어줘야만 그 냄비는 차갑도록 식는다.미디어는 사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소비재로 전락했다.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을 앞세운다. 심지어는 보도가 나가
12월3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오후11시, 모두가 잠시 한숨 돌리고 있을 그 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다. 비록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며 불과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이대학보는 우리가 마주한 중요한 사회의 변곡점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호외를 발행하기로 했다.하필이면 그 당시 사진부의 인원은 둘 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두 명 모두 인대 파열로 깁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학교 관계자의 오프 더 레코드(O.T.R.) 정보를 접한 학보사 기자는 ‘신뢰’와 ‘사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는 취재원의 신뢰를 잃으면 앞으로의 취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처음 배운 O.T.R.은 기자가 정보를 얻고 온전한 사실을 전달할 수 있게 돕는, 독자에게는 ‘약’이었다. O.T.R.은 취재원이 기사에 담기지 않길 원하는 추가 정보를 제공할 때 활용된다. 정보가 공개될 경우 문제가 발생하거나, 취재원 자신 또는 소속 기관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요청된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