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있지만 현장은 제자리
시각장애인 접근성 개선 필요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점자 교육을 담당할 전문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실제로 점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많지 않다.
시각장애인의 4%만 사용하는 점자
11월4일은 ‘점자의 날’이다. 보건복지부 ‘2023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100명 중 점자를 사용하거나 배우는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장애 정도가 심한 시각장 애인으로 범위를 좁혀도 점자 해독이 가능한 비율은 13.7%에 그친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고유한 문자 체계라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니며, 촉각 기반 문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박진석 연구교수(특수교육연구소)는 “정보를 습득하고 학습한 내용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문해력은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며, “성인기의 점자 문해력은 자립과 직업 생활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점자 해독이 힘들면, 일상생활에서도 불편이 따른다. 시각장애인 최영진(36)씨는 “메모할 때 녹음이나 타이핑으로만 가능하다”며 음성 기록은 휘발성이 강해 더 자주 들어야 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점자 문맹률이 높게 나타나는 원인으로 △통계상의 오류 △시기에 따른 점자 학습의 어려움 △부족한 교육 인프라를 꼽았다. 시각장애인 중 상당수는 잔존 시력을 사용하는 저시력인이며, 이 때문에 점자 활용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성인기 중도 실명 시각 장애인은 점자를 능숙한 수준까지 습득하기 어려워 대부분 음성으로 정보에 접근한다. 점자는 어린 시기부터 배우지 않으면 익히기 어려운 촉각 기반의 문자 체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점자 자료 제작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EBS 교재나 사교육 시장의 일반 참고서 중 일부만 점자로 제작되는 등 교육 기반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대학 시각장애학생 지원 현황은
우리대학에는 8월 기준 6명의 시각장애학생이 재학 중이다. 우리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향후 점자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발생할 경우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의 대학생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점자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시각장애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대체 자료 제작 및 제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 마다 배치된 ‘이화나래벗’ 학생이 교수의 강의 자료를 텍스트 기반의 대체 자료로 변환하고,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점자 전환이 가능 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도서 자료의 경우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업무 협약을 맺어 점자 및 음성 자료로 변환해 제공한다. 아울러 △문자 인식 프로그램(아르미) △화면 읽기 프로그램(센스리더) △화면 확대 프로그램(Zoom Text) 등의 소프트웨어와 함께 휴대형 확대기 및 광학문자판독기 등 보조공학기기를 구비해 개인대여 또는 기자재실 공용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점자 교육 인프라의 빈틈
국내에서 점자를 배울 수 있는 기관으로는 △시각장애 특수학교 △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지회 등이 있다. 맹학교와 같은 특수학교에서는 자체 프로그 램을 통해 점자 교육이 이뤄지고, 일반 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학교 밖 복지관이나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점자 교육을 받는다. 박 교수는 특수학교 교육과정에 점자 교과가 편성돼 있어 교과서 및 지도서를 편찬하기도 하나, 국어·영어·수학 등의 주요 교과 시수가 우선시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점자를 직접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시수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작년 맹학교를 졸업했지만 능숙한 점자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최씨는 “지역 복지관의 점자 교육은 복지관 운영시간 내에만 진행되기 때문에 직장인의 참여가 어렵고, 단체 수업 중심이라 수준별 학습도 어렵다”며 인프라의 한계를 지적했다.
점자 교육을 전담할 전문 직종과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특수학교뿐만 아니라 복지관이나 기관에서도 점자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점을 문제로 짚었다. 이어 점자 교육을 전문 점자 교원이 아닌 일반 문자를 점자로 번역하고 교정하는 점역교정사나 점자를 잘 아는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교육을 담당해 온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점자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개정안은 △전문 점자교원 양성 △점자교육원 지정 및 지원 △점자능력 검정시험 시행 등을 규정했다. 박 교수는 점자법 개정에 따른 점자교원 자격제도와 같은 제도적 기반 마련에 더해, “생애주기별 맞춤 점자 교육 연구와 체계적인 교육 인력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며 법제화 목적에 따른 실질적인 운영의 필요성을 짚었다.
실질적 접근성 향상 필요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점자 사용 확대를 위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학생 ㄱ씨는 “AI와 기기가 발전한 만큼, 점자를 영어처럼 하나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며 “AI를 통해 점자 교육 기회가 더 다양하게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각장애인도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점자의 디지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 역시 시각장애학생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맞춤형 컴퓨터 교육과 AI 활용 교육 등 편의 지원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신원이 특정 될 것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한편,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행정과 제도적 지원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대학 장애인권 자치 단위 틀린그림찾기(틀찾)는 현행 지원체계가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 방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 조치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틀찾은 특히 선거 기간에 발송되는 홍보물에 점자를 포함하는 것만으로 접근성이 확보된다고 보는 관행을 한계로 꼽으며, “중요한 것은 점자 제공 여부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자율성과 실질적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