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11월 중순, 우리대학 본관 옆 배롱나무에는 진녹색의 수목용 부직포가 씌워지고 있었다. 수목 관리사는 가지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팔을 뻗어가며, 붕대 혹은 옷처럼 보이는 부직포를 칭칭 감았다.

모든 나무에 이와 같은 보온재가 필요하던 건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 탄생해 지금까지 살아온 나무들은 인간의 관리 없이 어떻게 추위를 버텨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겨울철 나무들은 스스로 추위를 대비한다. 낙엽과 휴면, 물관부와 뿌리를 포함한 내부 구조의 변화를 통해 추운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도록 생리를 조절한다. 대부분의 수목은 냉해를 잘 견디지만, 추위에 약한 나무들이 존재한다. 묘목이나 껍질이 얇은 나무,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등이 그 예다. 배롱나무는 남부지방 수종의 대표적인 나무로, 따뜻한 곳에서 자라며 껍질이 얇아 한파에 피해를 입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철저한 월동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다.

조경수는 종종 다른 지역의 수종이 들어온다. 다른 나라의 수종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며, 남부지방의 수종이 중부 지역으로 들어오며 나무는 이주를 경험한다. 그 지역의 환경을 견디도록 진화된 종이 아닌 나무가,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서 인간은 보온재와 멀칭 등으로 본래 자연이 해주던 보호층의 역할을 대신한다. 비옥한 토양과 주변 식생이 만든 완충지대, 개체가 태어나던 자연의 조건을 모방해 나무를 곁에 둔다. 그러한 관리는 나무의 본 터전과 심어진 환경의 성질이 멀수록, 종 자체가 까다로울수록 더욱 필요하다.

고향을 떠나온 나무는 연약하다. 제 진화 방식대로의 흐름을 벗어나 외딴 도시로 이식된 나무에 내한성을 갖고 우두커니 살아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마 자립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외부로부터 받아야 하는 많은 손길은 어딘가 슬프고 묘한 성질을 띠는 것 같다.

배롱나무의 꽃 백일홍은 여름철 100일간 피고 지길 반복하며 긴 시간 피어 있는 듯 보여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 100일의 개화 끝에 낙엽을 흘리며 겨울을 바라보는 배롱나무의 앙상함이 자꾸만 잔상에 남았다. 문득 나무에 둘린 진녹색의 부직포가 학교 점퍼와 꽤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가 덜 된 채로 맞이하는 겨울을 위해 나는 또 몇 겹의 보온재를 더 둘러야 할지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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