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만이 많다. 나도, 주변인도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이를테면 학교, 국가, 전 세계.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때면 우리는 불평하곤 한다. 욕을 하고 탓을 한다. 세상이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하고,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은 이 세상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사실만 자명해질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욕 한 바가지로 누군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항의 몇 번으로 체제가 바뀌지도 않는다. 힘이 없는 사람 다수가 힘 있는 사람 하나를 이기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뉴스에서도, 책에서도, 하물며 드라마며 영화에서도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세상이 망하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을 것인가?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위한다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쉬운 사실을 알고 움직일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6년, 촛불집회에는 집이 멀고 부모님께서 함께 가주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 2018년, 옆 학교에서도 하던 미투 운동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 청원은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미루기가 부지기수. 국회 청원도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지금도 다른 일이 겹친다는 이유로 집회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학교 내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들을 나서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변인들은 내가 사회를 위해 열렬히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는 내게 시위를 많이 나간 줄 알았다고 했는데, 실상은 달랑 한 번 집회에 나가본 것이 전부이다. 이게 다 여기저기 불만을 늘어놓고 다녀서 그런가 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사회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뿐인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가짜 혁명가일 뿐이다. 친구들은 내가 입만 살은 가짜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까.
12월의 어느 날, 국회 앞으로 모여달라는 외침을 보면서도 집에 꼭 붙어 있던 나. 또 집에서 쉴 새 없이 입만, 손가락만 움직였다. “미쳤지, 저기 가야 하는데, 다들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앉아’ 사태를 지켜보다가 일이 일단락되고 나서야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이리도 무책임한 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얼마 뒤, 살면서 처음으로 집회에 나갔다. 친한 사람들이 많이 함께했기에 진짜 일어나 나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았고, 커다란 화면 속에는 세상을 바꿀 힘과 권력이 있는 멀끔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롱패딩을 입은 수백만의 사람들은 까만 밤 속 번쩍이는 화면을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누구 의원, 돌아오세요. 누구 의원, 책임을 다하세요. 결국 그날 이뤄낸 것 없이 좌절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뒤, 진짜로 무언가 바뀌었다.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나서는 대자보를 썼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쓰는 친구에게 많은 것을 일임했다. 하고 싶던 이야기는 이 글과 비슷했다. “일어나서 움직입시다. 좌절하지 맙시다. 세상은 조금이나마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였고,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였다. 이미 그때는 많은 벗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던 때라, 나의 글이 얼마나 읽혔는지는 알 수 없다. 영향력 또한 굉장히 미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조금이나마 효능감을 주었고, 가만히 앉아 세상이 망하기만을 기다리던 내가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한 걸음이었다.
그때 즈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졸지에 학과의 대표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시간 되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단과대의 비대위장이 되었다. 운 나쁘게 사다리 타기에 걸려서 등록금심의위원회 학생위원이 되었다. 그렇게 마주한 좀 더 가까운 세상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반쯤은 내 의지로, 반쯤은 타의로 이끌려 무언가 행동을 하게 되었다. 자료를 모으고, 논의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그랬더니, 어라. 또 변하는 것이 있었다.
분명 작은 변화였다. 사실 등심위원들이, 학생들이 원하던 대로 등록금이 동결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치니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학교 위원들이 움찔, 굳건하게만 보이던 거 대한 단체가 슬쩍. 그렇게나마 변화를 체감했다. 지금까지는 한다고 뭔가 바뀌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해 보지도 않고 그 결과를 마음대로 재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직접 해 보고, 뭔가 바뀌는 것을 느껴 보았으니까 알 수 있다.
세상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쉽사리 변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선택은 있다. 앉아서 불평만 한다고 더 나은 선택지가 제 발로 걸어오지는 않는다. 근시일 내로 멸망이 찾아오지도 않을 것 같다. 세상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더 빠르다. 앉아서 내는 목소리보단 일어나서 내는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 여전히 학교도, 국가도, 지구촌 전체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떠날 수 없으니 고쳐 써야지. 뭐라도 하자. 더 나은 세상에 살자. 그런 생각으로 오늘의 나도 일어날 힘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