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11월 중순, 우리대학 본관 옆 배롱나무에는 진녹색의 수목용 부직포가 씌워지고 있었다. 수목 관리사는 가지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팔을 뻗어가며, 붕대 혹은 옷처럼 보이는 부직포를 칭칭 감았다.모든 나무에 이와 같은 보온재가 필요하던 건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 탄생해 지금까지 살아온 나무들은 인간의 관리 없이 어떻게 추위를 버텨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겨울철 나무들은 스스로 추위를 대비한다. 낙엽과 휴면, 물관부와 뿌리를 포함한 내부 구조의 변화를 통해 추운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도록
살아감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민의 끝에는 결과가 있기 마련일 텐데 쉼 없이 고민하면서도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학보사에서 일하는 중에도 이러한 고민을 피할 수는 없다. 마케터로서는 아쉬운 발언일지 모르겠지만, 학보사의 기사를 완벽히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매주 어떤 기사를 메인으로 콘텐츠를 제작할지를 고민하면서도 말이다. 분야가 다르다 해도 한 단체의 구성원으로 자리하다 보면 하나의 기사를 내기 위해 각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연말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하루가 조금씩 짧아지고 교정의 나무들은 잎을 털어내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밤을 지새우며 원고를 붙잡고 고뇌하던 날들, 인터뷰 뒤의 여운, 함께 웃고 울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또 한 해와 한 계절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지난 주부터 다음 총학생회 건설을 위한 선거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많은 벗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길 바랍니다. 이대학보 역시 가장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
매주 신문을 만드는 학보사 기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신문을 읽기 싫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비단 신문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X(구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모든 것’의 화면을 켤 때마다 안 좋은 소식만 보여 핸드폰을 꺼버리고 회피하기도 했고,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거지 같아서 세상이 완전히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여성혐오를 범행 동기로 인정한 판결이 역사에 새겨진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묻지 마 범죄’로 뭉뚱그려졌던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의 이유
7월24일, 나는 네덜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을 거쳐 동유럽을 여행하고 파리에서 귀국하는 한 달간의 배낭여행 시작이었다. 1학기 내내 오로지 출국만을 바라보며 바쁘디바쁜 일상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막상 그날에 다다른 나의 마음은 그 시간들이 무색할만큼 혼란스러웠다.1학기도, 계절학기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학보도, 다른 프로젝트들도 주어진 만큼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서 방학 때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불안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해 놓고 한가로이 여행이나 떠나고 있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페미니즘 리부트 10주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화인 534명에게 물었던 수많은 질문 중 하나.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가. 간단한 질문임에도 대답하기란 어려웠다.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한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성평등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일상의 차원에서 비판한 경험은 있지만, 여성단체에 가입하거나 집회 혹은 시위에 나가지는 않았다. 탈코르셋이나 4B 같은 여성운동을 실천해 본 경험도 없다. 함께 분노했던 개인적 경험만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칭할 수 있을
“우리가 찾고 있는 변화는 우리가 돼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우리의 의견과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결국 변화의 주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변화는 거창한 행동에서 오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 한 표를 던지는 순간 같은 작은 행동들이 쌓여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대학 생활 역시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정치적 공간이다.우리대학의 2025년 등록금 인상률은 3.1% 로 다른 대학들보다 낮았다. 학교 측이 처음 제시한 3.9%보다 낮은 수치다. 이 결과는 학생들과 총학생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하반기 첫 발행과 함께 인사를 드립니다.이대학보 하반기의 첫 마감은 10월 29일이었습니다. 3년 전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 오전, 학내에는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졌습니다.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즐거운 일상이 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대학보는 하반기 발행을 시작합니다.이대학보 제1716호는 한 달의 휴간을 맞았던 만큼 의미 있고 무겁게 담았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취재하여 신문을 꽉 채웠으니 흥미롭고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고 벅찼다. 내내 마음이 급했으며, 설익었는데 자꾸만 무르익은 이들을 흉내 내려 애를 썼다. 땡볕 아래를 바삐 오갔고, 급히 집을 나서다 우산 없이 장대비를 맞는 일상이 계속됐다. 폭풍우에 옥탑방 대문이 덜컹일 때 화장실엔 인체에 유해하다는 분홍 곰팡이가 피었다. 꿉꿉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뉴스에선 폭우로 터전을 잃은 이들과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여름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처럼 계절을 낭만화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숨이 턱턱 막혔다.올해 우리나라엔 우박 같은 강한 비가 짧
어렸을 때부터 늘 글과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첫인상을 물으면 책벌레라는 답이 돌아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다. 요즘은 이북(E-book)이 편리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물성이 있는 글이 마음에 더욱 오래 남기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소 고집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글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피곤해도 활자로 생각을 쏟아내야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백오십일만 이천 분의 귀한 시간들. 46호의 신문. 직접 찍은 사진으로 나간 수많은 기사들. 2년의 이대학보 생활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처음 2학기는 사진기자로, 다음 2학기는 사진부장으로 이대학보와 함께했다. 이대학보에서 내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칼럼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마음 속 여러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처음 카메라를 들고 나간 취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졸업생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단상에도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하고,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에서 나온 변하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지난 주, 마치 가을 우기가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듯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비에 정신없이 우산을 챙기고 발걸음을 서두르며 한 주를 보낸 우리 모습처럼 사회도 쉴 틈 없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많은 이들은 이제 성평등이 상당히 실현됐다고 말합니다. 여성의 교육 기회가 넓어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으며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표면적 성과가 곧 완전한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11일 저녁, 우리대학 밴드제가 열리던 라이브 홀에서의 사진이다. 무대 조명이 꺼진 순간 찍은 사진의 노출을 높이니, 은근하던 붉은 빛만 남아 피사체를 감싸는 사진이 만들어졌다.무대에서는 중앙락밴드동아리 릴리즈(ReleAse)가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1991)이라는 곡을 선보였다. 좋아하는 헤비메탈 노래인데,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내 손을 잡아, 네버랜드로 떠나자’(Exit light/Enter night/Take my hand/We're off to never-never land)라는 가사가 붙은 곡
3일, 용혜인∙손솔 등 10명의 의원이 제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현행 법체계가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이 골자다.예전부터 이런 관계를 꿈꿔왔다. 친구들에게 네이마르처럼 돈 많이 벌어서 용돈이나 달라는 농담도 (반쯤 진담으로) 수백 번은 했다. 생활동반자관계에서는 서로가 상호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일방적 요구는 하지 않는다. 잘 부탁한다느니, 실버타운 들어갈 때까지 그러고 살자느니 하는 얘기는 우리만의 ‘진대(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편집부국장 배진아입니다.꽤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어느새 가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며 캠퍼스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이대학보 구성원들은 방학에도 꾸준히 취재를 해왔는데요. 텅 비었던 학교가 학생들로 채워진 것을 보니 이제야 이대학보가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대학보 구성원들도 개강을 맞이했습니다. 취재와 학업을 병행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지만, 활기를 되찾은 캠퍼스는 취재할 거리가 넘쳐나니 오히려 기쁩니다.이번 학기 이대학보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싶습
글로 사람을 읽어낼 수 있을까.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게 만들 책임이 주어졌다. 여름방학을 지나며 소속이 3부서 인물팀 기자로 바뀌었다. 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 명 한 명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람 이야기’를 쓴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성격 탓에 벌써 많은 이들을 만났다. 나와 같은 청년들, 무더위에도 자리를 지킨 우리대학 노동자, 웹소설 작가, 국회의원까지. 학보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다. 한 주차유도원 분은 휴게실로 불쑥 찾아온 내게 ‘버물리’를 챙겨 주
8월19일 오후5시30분, 2주간의 해외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의 풍경은 익숙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여전히 설렘과 도전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2년 전 휴학 후 3개월간의 여행 동안 미국에서 ‘성장과 사랑’을 선물받았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변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인연에게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이런 기억 덕분에 이번 출발은 더 큰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 다시 방문한다는 설렘과, 이번에는 현지에서 살아가는 이화의
기독교는 왜 퀴어를 혐오하는가. 취재는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됐다.올해 우리대학은 ‘퀴어 논쟁’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학보도 일련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꾸준히 현장에 나가 기사를 발행했다. 아트하우스 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절부터 총학생회의 퀴어퍼레이드 참여, 학생들의 이화퀴어영화제 개최까지. 여러 사건을 기록했다. 사건의 발생을 다루는 기사를 보통 스트레이트라 부른다. 스트레이트는 주로 현장에서 작성되는 기사로,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루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켠에는 늘 찝찝함이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편집국장으로서 처음 인사 드립니다. 이대학보 편집국장 강예본입니다.녹음이 여전히 짙푸른 빛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어느덧 다음 주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됩니다. 이대학보도 여름의 기운을 이어받아 이번 학기 첫 신문을 전합니다.‘각자만의 때가 있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이대학보를 펼쳐 이 글을 읽는 지금이, 독자 여러분께는 이 신문을 만날 가장 좋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휴간 기간에도 더 나은 신문을 고민한 학보사는 방학 동안 새로 합류한 114기 기자들과 함께 이번 학기 방향성을 논의했습니
이번 여름 방학에 나는 처음으로 직접 돈을 모아 친구와 호주의 시드니로 여행을 다녀왔다. “답답한 서울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여행의 시작점이었다.이전에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올해 1월부터 과외비와 용돈을 아껴 쓰며 여행 자금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시간당 몇만 원씩 돈을 받아 모은 금액은 생각보다 턱없이 적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단순히 “어디가 좋다더라”, “어디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