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도 완전한 인간임을 주장하기는 매우 힘들다. 여성의 삶은 종종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되며, 그 경계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된 여성 억압 구조가 사회 전반에 침투한 결과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무엇을 봐야 이 구조를 분명히 감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획기적인 계획을 선보인다. 27세의 여성이고 심리학 석사과정 중인 그는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봉사를 하고 연구 자료를 모으며 사회의 틈을 드러낼 계획을 은밀히 준비한다. 작전 개시일, 그의 심복 황남기는 영화배우 백승하를 납치해 강남 고급 아파트에 감금한다. 그 이유는 바로 남성 중심적 구조를 폭로하기 위해 백승하를 상징적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물론 납치라는 설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사회가 방치해 온 젠더 권력의 비대칭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데려갔던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설화 속 바다왕이 아그네타를 가둔 이야기처럼, 역사와 신화는 남성의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왔다. 소설은 이 신화적 구조를 뒤집는 선택을 한다. 따라서 ‘여성 납치범과 남성 포로’라는 뒤집힌 관계는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 온 이야기들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생성한다. 이와 비슷하게 미러링을 드러내는 부분은 강민주가 언론에 보내는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오히려 너무 뛰어난 머리의 남자는 더불어 즐기기에 성가신 게 한 둘이 아닙니다. 남자가 많이 알면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바깥 일은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저 잘생기거나 부드러운 남자면 족합니다.
바로 여러분 남성들이 유포하고 심화시켜 온 성의 개방과 확장에 관한 논리에 의하면 그것은 제약 없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중략) 기회만 닿으면 남의 부인이건 남의 귀한 외동딸이건 가리지 않고 성의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그 고귀한 기회균등의 정신 앞에서 저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일 하나를 해치운 것에 불과합니다.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이 문장들은 단지 통렬한 풍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이 발화는, 그동안 남성 중심의 언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회의 공기를 구성해 왔다는 사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백승하라는 ‘무결점’의 인물을 납치 대상으로 택했을까. 상담소에 전화를 거는 아내들의 폭력적인 남편, 방송에서 성희롱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연예인, 사회적 폐해를 드러내는 수많은 남성들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오히려 명료하다. 무결해 보이는 남성이 가장 쉽게 구조의 재생산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배우의 얼굴과 태도, 말투를 통해 권력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그가 부드럽고 친절한 이미지일수록, 여성 차별적 이데올로기는 마찰 없이 스며들 수 있다. ‘착해 보이는 남성’은 이렇게 은밀하게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의 상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당연히 페미니즘 문학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남성의 손에서 죽음을 맞는 결말이나, 강민주가 백승하에게 감화되는 서사는 여성 인권적 함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결말은 ‘초월적 여성 영웅’ 한 명에게는 구조를 뒤바꿀 힘이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강민주의 죽음은 오히려 여성 연대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환기한다.
하지만 후반에 강민주가 보여주는 태도의 변화 탓에 이 작품을 ‘싸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미혼의 여성이 부드럽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사랑을 깨닫게 되는 로맨스 소설’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미러링’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남성 권력이 일상에서 어떻게 정당성을 갖게 됐는지 끈질기게 보여준다. 1992년에 발표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작품 곳곳에는 오늘날의 여성혐오를 정교하게 예견한 듯한 통찰이 드러나 있다.
소설의 내용은 현실에서 반복된다. 대중매체의 왜곡된 재현, 무력한 공권력, 거절해도 집요하게 들러붙는 남성의 태도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뉴스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있을까. 또 내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나는 ‘자유’라고 답하고 싶다. 납치라는 설정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감옥은 보이지 않을 때 가장 견고하다. 차별의 창살은 익숙함을 가장한 채 우리를 가두고, 우리는 그 안이 안전하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반복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벗어날 때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이 바로 연대해 행동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