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는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 춤을 추는 조그마한 아기의 몸동작이 자유로워 보여서 좋았고, 춤을 추는 노인의 몸동작은 그녀의 몸에 비해 커다랬으나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추는 춤들. 구역을 위한 펜스 너머 3명의 남자의 춤은 그저 스쳐보다가, 닌자 같으면서도 일본 신사같이 춤을 추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의 춤은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웠지만, 내 눈엔 근사해 보였다. 그러던 중, 춤을 추는 동양인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맘대로. 정말 맘대로 춤을 추며 다른 사람들과 눈 맞추더라. 그녀를 보고 나도 저곳에 가야겠다. 가서 춤을 추어야겠다. 이런 말들을 떠올렸다. 몇 분 전 바닷가 앞에서 만난 한국인 두 사람에게 ‘제가 아무래도 춤추러 다녀와야겠어요’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춤을 추는 구역으로 걸어 나갔지만 용기가 부족한 나는, 춤을 추지는 못하고 그 동양인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I’m from Korea’라며 괜한 말들을 지껄였다. 그녀는 중국인이었다. 노래 박자에 묻히고 춤동작에 흘러 들어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말들을 나누면서 설렁설렁 움직였다. 그렇게 자신감 없는 동작들만 설렁대다가 그녀의 거대한 동작을 보고는, ‘I don’t know how to dance’라고 말해버렸다. 마치 홍대 지하 꿉꿉한 클럽에서 혼자 왔냐는 멘트를 날리는 지루한 남자처럼, 말도 안 되는 그런 문장을 말해버렸다.

그녀가 말한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나에게 그냥 춤을 추면 된다고 말했다. ‘Nobody knows how to dance’ 같은 문장을 말하며 그녀는 그냥 춤을 추라고 말했다. 그녀는 삼바와 탭댄스 그 사이 어딘가의 요상한 스텝을 밟으며 열렬히 춤을 추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춤을 추는 법을 몰라요, 저 사람은 알까요? 아니면 저 사람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들렸다. 아무도 춤을 모른다. 그 누구도 춤추는 법을 모른다.

그 말들이 나를 춤출 수 있게 했다. 나는 몸을 조금씩 더 크게 움직였다. 동행하던 여자분도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너무 재밌어 보여서 왔다고 했다. 내가 어색해하고, 도저히 춤을 못 추겠다는 마음으로 설렁이던 동작들도 누군가에겐 춤으로 보였나... 그 이후 이상하게 용기가 솟았다. 아무도 춤을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합쳐져, 내 두 다리는 어느새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마치 탱고를 추는 사람처럼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하고.. 앞의 노부부가 추던 스태프를 재빨리 따라 해보기도 하고.. 마치 어느 깊은 바다의 해초처럼 두 팔을 위에서 아래로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두 팔을 더 크게 움직이고... 더 크게 움직이고... 

무섭고 외롭고 어두울 것만 같던 프랑스에서 이토록 자유로운 동작을 만들어낼 수 있음에 스스로 무척 놀랐다. 그녀는 왜 다시 뒤를 돌아 나를 찾았을까. 추워서 혹은 숙소로 돌아가야 해서도 아니고, 너무 배고파서 가야 한다며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 된 시간에 그녀는 떠났다. 우리는 그날 영화제를 위해 칸에 있었고, 알제리 출신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 해변에 모인 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이유가 개의치 않다는 듯 춤만 추고 떠났다. 오직 춤을 추러 잠시 칸에 온 것 같은 사람처럼.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에게 말했다. ‘You are so brave. You are good at dancing’(나는 영어 실력이 좋지 않다)이라고.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대답한다. 아무도 날 모른다. 어제 니스 해변에서 내가 느낀 자유였다. 내가 비키니를 입고 혼자 수영을 하고 젖은 몸으로 누워있어도, 내 엉덩잇살이 수영복을 비집고 삐져나와도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 설령 누군가가 나를 의식한다고 해도 그 누군가도 나도 서로를 모른다. 우리는 잠시 같은 공간에 존재하다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니스와 칸의 해변에서만 해당하는 자유인가 생각해 본다. 아닐 것이다. 조금 생각해 본다면, 실은 누구도 날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나 자신도 나의 몸에 대해, 나의 마음에 대해 잘 모를 때가 있다. 아무도 날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자유롭다는 것은 나로서 존재하는 것. 나 자신이 존재함이 어색하지 않은 것, 편안한 것,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 나로서.. 나로서 존재하기만 한다면.. 누군가의 취향에 의해, 누군가의 언행으로 인해, 누군가의 생각으로 인해 나 자신이 불편해지지 않는 것. 불편하고 어색해지지 않는 것. 편안하게 나를 받아들이는 것. 

어색한 나와 이별하는 것.

춤이라는 것. 

몸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춤을 추는 법을 모른다. 그 말은 반대로 우리는 모두 춤을 출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어떻게 춤을 춰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춤을 추면 된다. 아무도 날 모르고, 나 또한 그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춤을 추면 된다. 춤을 어떻게 추는지 모르는 상태로, 온전히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로. 그렇게 춤을 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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