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11월 중순, 우리대학 본관 옆 배롱나무에는 진녹색의 수목용 부직포가 씌워지고 있었다. 수목 관리사는 가지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팔을 뻗어가며, 붕대 혹은 옷처럼 보이는 부직포를 칭칭 감았다.모든 나무에 이와 같은 보온재가 필요하던 건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 탄생해 지금까지 살아온 나무들은 인간의 관리 없이 어떻게 추위를 버텨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겨울철 나무들은 스스로 추위를 대비한다. 낙엽과 휴면, 물관부와 뿌리를 포함한 내부 구조의 변화를 통해 추운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도록
7월24일, 나는 네덜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을 거쳐 동유럽을 여행하고 파리에서 귀국하는 한 달간의 배낭여행 시작이었다. 1학기 내내 오로지 출국만을 바라보며 바쁘디바쁜 일상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막상 그날에 다다른 나의 마음은 그 시간들이 무색할만큼 혼란스러웠다.1학기도, 계절학기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학보도, 다른 프로젝트들도 주어진 만큼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서 방학 때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불안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해 놓고 한가로이 여행이나 떠나고 있는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고 벅찼다. 내내 마음이 급했으며, 설익었는데 자꾸만 무르익은 이들을 흉내 내려 애를 썼다. 땡볕 아래를 바삐 오갔고, 급히 집을 나서다 우산 없이 장대비를 맞는 일상이 계속됐다. 폭풍우에 옥탑방 대문이 덜컹일 때 화장실엔 인체에 유해하다는 분홍 곰팡이가 피었다. 꿉꿉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뉴스에선 폭우로 터전을 잃은 이들과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여름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처럼 계절을 낭만화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숨이 턱턱 막혔다.올해 우리나라엔 우박 같은 강한 비가 짧
11일 저녁, 우리대학 밴드제가 열리던 라이브 홀에서의 사진이다. 무대 조명이 꺼진 순간 찍은 사진의 노출을 높이니, 은근하던 붉은 빛만 남아 피사체를 감싸는 사진이 만들어졌다.무대에서는 중앙락밴드동아리 릴리즈(ReleAse)가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1991)이라는 곡을 선보였다. 좋아하는 헤비메탈 노래인데,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내 손을 잡아, 네버랜드로 떠나자’(Exit light/Enter night/Take my hand/We're off to never-never land)라는 가사가 붙은 곡
8월19일 오후5시30분, 2주간의 해외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의 풍경은 익숙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여전히 설렘과 도전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2년 전 휴학 후 3개월간의 여행 동안 미국에서 ‘성장과 사랑’을 선물받았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변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인연에게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이런 기억 덕분에 이번 출발은 더 큰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 다시 방문한다는 설렘과, 이번에는 현지에서 살아가는 이화의
4월15일 오후3시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유달리 수업이 일찍 끝나 30분이었던 공강 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다. 푸르른 하늘에 밋밋함을 달래주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아주 완벽한 날씨였다. 서둘러 학보실에 들러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 아니면 봄날의 이화를 담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셔틀을 타고 연구협력관으로 향했다. 대개 이화의 예쁜 풍경은 ECC와 이화동산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는 이화의 가장 끝 연구협력관에 있다. 주요 활동 반경이 ECC와 학관, 아무리 멀어도 종합과학관을 벗
바람이 살랑이는 초여름 오후, 커다란 나무에 기대앉은 한 소녀를 보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생각에 잠겨있는 뒷모습이 초록빛 공원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나는 카메라를 들어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나도 나무에 기대앉아 다리에 닿는 촉촉한 풀잎의 감촉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을 오롯이 담았다. 사진을 찍을 때면 늘 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순간의 감각들을 온전히 느낀다. 그러면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그 감각들이 놀라울 만큼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코끝을 스치는 풀잎의 향, 볼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생각에 짓눌릴 때 습관처럼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얼굴을 치는 날카로운 바람이 고뇌의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내 주고, 사각사각 모래를 밟다 보면 비로소 잡념의 메아리로부터 해방된다.뜨거운 태양 밑에서 태닝을 즐기거나, 풍덩 빠져들어 헤엄칠 수도 없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또 바다를 찾았다. 친구에게는 겨울 바다가 가장 예쁘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것보다 큰 이유가 존재했다. 그저 사람들로 꽉 찬 거리, 평가와 비교의 일상, 그리고 자꾸만 나를 사랑하는 것을 잊는 나로 인해 지쳤었다. 오로지 파도의 자극만을 느끼며
사진은 세상을 포획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담긴 대상이 살아있건 살아있지 않건 간에 말이다. 양자적으로 어쨌건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는 형태 불변의 존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닳고 또 늙어간다. 형상적인 것이 그러한 한편, 기억과 같은 추상의 것들 또한 노쇠하고 희미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해서 사진을 찍는 일이란 무릇 대상의 지금을 포획하여 ‘가능한 한 오래’ 기억을 남기는 방식이다.나이가 들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나이지만 갈수록 기억이 옅어지는 것은 분명하게 느낀다. 어떤 논문에서 이야기하듯, 인생의 길이에 대한 미소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인들에게 꼭 선물하는,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있다. 바로 필름 사진 속 ‘프리지아’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한다’는 의미의 꽃으로 졸업식이나 기념일에 주는 다른 꽃들보다 더욱 큰 진심을 담아서 소중히 선물하게 된다.나에게 ‘첫 시작’이 남다른 의미가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유난히 수줍었던 나에게 첫 시작, 특히나 3월은 고난이었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마치 감옥에 끌려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몇 날 며칠을 밤새 고민하다가 반장 선거에 나가기도, 온
2월14일 오후4시경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트 모양을 한 구름이 푸르른 하늘 사이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었다. 하트 구름을 본 나는 홀린 듯이 카메라를 들고 하트 모양의 구름을 찍었다. ‘사랑’하러 가는 길에 ‘사랑’을 마주한 나는 발걸음이 더욱이 가벼워졌다.‘사랑은 언젠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사랑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해’ 우리는 항상 사랑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사람 사이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소중한 물건이 될 수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다.
19일 오후2시48분, 4년의 작곡과 학부생으로서 마침표를 찍는 졸업작품발표회 리허설이 진행되던 중 한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 순간의 나는 본무대가 끝난 후 청중으로부터 환호를 받을 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감사하게도 본무대가 끝나고 작곡자가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하는 순간, 저 멀리서부터 큰 환호가 들려왔다. 학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무대인 만큼 그 누구보다도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는데, 올라간 순간 들리는 친구들의 환호는 앞으로 어떠한 진로를 선택하던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들렸다.2시48분이면 완성도 높은
9월8일 오후7시22분, 남산타워가 보이는 이태원의 한 육교에서 30초간 사진을 촬영했다. 그 시간 동안 육교 위에서 바라본 차들과 사람들은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어디론가 향했다. 흔히 ‘사진’을 표현할 때 ‘순간의 미학’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하지만, 사진으로 꼭 ‘순간’만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진은 장노출 기법을 사용해 찍었다. 장노출이란,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느리게 조정해 비교적 오래 빛을 담아내는 촬영 기법이다. 이를 사용하면 빛의 궤적을 정지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빛을 담는 시간이 길어지면 렌
8월12일 오후5시5분,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도심 한가운데의 언덕 위에서 사진 한 장을 촬영했다. 언덕 위에서 본, 따뜻한 햇살 아래 배가 지나가는 바다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높은 언덕의 도시라 도보로만 이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도시였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채로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길가에 핀 알록달록한 꽃들과 언덕길에 위치한 집들을 구경하며 올라갔다. 특히 색색깔의 대문들이 내 시선을 끌었는데, 누군가는 보라색으로 대문
9월3일 오후6시, 취재를 마친 후 오랜만에 밤길을 걸었다. 아직 한여름 무더위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저녁에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걸어볼 만 했다. 직장이 많은 종각역 부근에는사람들이 서서히 퇴근하기 시작했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을 참 부지런했고, 빨랐다. 그 사람들의 틈을 지나, 걷고또 걸었다.지난 한 학기 동안 주 7일 아르바이트를 했고, 어둑해지는 저녁 거리를 걸을 시간이 없었다. 오랜만에 저녁 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이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사이
8월22일 오전11시경, 어딘가 특별한 바람개비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바람개비에 태극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처럼 특별한 바람개비들이 꽂힌 곳은 나의 집 앞 어린이집 화단이었다. 광복절을 맞이해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든 것 같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끙끙거리며 접었을 바람개비가 제법 야무져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한 가지 질문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번 광복절 때 태극기를 달았었나."최근, 한 공영 방송국이 국민의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광복절로 넘어가는 자정에 기미가요가
2월17일 오후5시경, 남원 여행을 하며 길을 걷던 중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오래된 건물을 만났다. 건물의 2층 창문에 여러 단어가 붙어있었다. 가게 혹은 단체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 중 ‘행복’에만 햇빛이 들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모습을 빈티지 카메라로 담았다.행복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남의 행복을 빌어주고, 나의 행복을 찾아 헤매고, 광고에서는 ‘행복해져라’하는 주문을 외워준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에서는 경로 우대카드를 개찰구에 찍으면 “행복
2월13일 오후12시43분, 한국과 정반대의 계절을 지내는 호주의 본다이 비치(Bondi Beach)에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10년 전에 사용하던 디지털 카메라로 말이다. 맞다. 이때 사용한 카메라는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Vintage)’ 디지털 카메라다.화질 좋은 휴대폰 카메라를 놔두고, 굳이 빈티지 카메라를 사용한 이유를 말해보자면 “조금은 화질이 ‘덜’ 선명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첨단 시대에 사는 우리는 카메라에서도 확연한 기
3월4일 오후3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했다. 주변에서는 한국어보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이 나의 귀를 간지럽혔고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나를 반겼다. 자주 오는 광화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여행 3일 차의 마지막 일정 같았다.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군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나도 이 시간만큼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유아차에 탄 금발의 남자아이, 한복을 입고 아빠의 목에 올라타 드넓은 경복궁을 구경하는 갈색 눈의 여자아이, 나란히 한
사랑, 이 두 글자가 주는 의미는 음절의 수와 반비례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한한 듯싶다. 사랑을 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의미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단어에 나는 나만의 의미를 하나 더하고 싶다. 나에게 사랑이란 ‘타인의 언어를 기꺼이 학습하려는 행위, 또는 그런 마음’이다.이러한 의미를 더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는 맛집으로 소문이 난 경양식 돈가스 가게가 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나, 기분이 좋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