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미래에 대한 불안, 기후위기에 대한 공포,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 이야기,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낙관적이지 않은 경제 지표들, 취약한 노동 시장, 쌓이는 과제와 미친 듯이 다가오는 데드라인에 쫓기는 일상∙∙∙, 우리 모두의 삶이 불안정한 것 같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애나 로웹하웁트 칭은 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인류학자인 칭은 자신의 이 책을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엉망이 된 삶과 버섯이 무슨 상관인가?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버섯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는 버섯을 곰팡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버섯은 땅속에 숨어있는 균사 조직 중에서 땅 위로 드러난 생식기관, 즉 자실체이다. 식물학자인 호프 자런은 ‘랩걸’에서 “모든 버섯 머리 아래로는 길게는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균사 조직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흙덩이를 감싸며 그물처럼 퍼져서 땅의 모습을 보전한다”고 적고 있다. 버섯 머리는 땅 위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지만, 땅속의 균사 그물은 몇 년이 넘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버섯, 곰팡이, 균사의 생식기관인 그 버섯이 애나 칭에게는 삶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신호라고 한다. 왜, 어째서 버섯일까?

버섯은 어느 숲에서나 발견되지만, 특히 훼손된 숲, 인간에 의해 망가지고 생태가 교란된 풍경에서 번성한다. “1945년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되었을 때, 폭탄 맞은 풍경에서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송이버섯의 균사는 숙주 나무 뿌리와 상리공생의 관계를 맺는데, 나무에게는 양분을 주고 나무로부터는 탄수화물을 얻는다. 이와 같은 상리공생이 가능한 이유는, 곰팡이가 다른 식물과는 달리 햇빛에서 양분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에 먹거리가 필요하고, 또 곰팡이 자신은 세포외 소화를 하기 때문에 양분을 밖으로 배출해서 다른 종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공생이 모두에게 언제나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곰팡이는 나무를 파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곰팡이는 식물의 적이다. 죽은 나무를 분해시켜 토양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하고, 살아있는 나무를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호프 자런에 따르면, 곰팡이 중에 약 5천 종 정도는 식물들과 평화협정을 맺어 함께 숲을 번성케 하고 거대한 지하 세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개발 논리와 이윤 추구에 매달리는 인간들에 의해 망가진 숲, 그 가장자리에서는 쓰러진 나무와 곰팡이와 흙이 서로 얽혀 파괴된 숲의 생명을 되살리고 있다. 진보, 말쑥한 계획과 정돈된 구획, 인간적 의도와 목적 그리고 그것의 도구이자 대상, 자원이 되는 ‘자연 환경’을 구분해 온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들은 서로 얽혀 생명이 되돌아올 수 있을 토양을 그들만의 리듬과 속도로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숲의 재생을 방해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다. 애나 칭은, 진보에 대한 기대와 성마름이, 그리고 우리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상상적 믿음이 숲의 부활을 저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숲의 생명이 인간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자체로 충분히 강인하다는 믿음을 접었다.” 그 결과 숲에 내재된 존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재생의 리듬과 속도를 방해하면서, 결국 절멸적 세계를 재촉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세계의 중심,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가 구축하고 망가뜨린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곰팡이는 나무뿌리와 얽혀 비옥한 흙을 되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애나 칭은 ‘세계 끝의 버섯’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어슐러 르 귄의 짧은 에세이 하나를 인용한다. 그 에세이는 르 귄이 ‘운반 가방 이론’이라고 이름 붙인 스토리텔링 짓기와 퍼뜨리기에 대한 제안이다. 인간이 만들어 온 문화와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이제까지 이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진정으로 중요한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재발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 작가는, 문화의 진화 이야기의 주인공은 찌르고 죽이는 영웅의 ‘무기’가 아니라 “유용하거나, 먹을 수 있거나, 아릅답다는 이유로” 물건들을 모으고 담아 운반하는 ‘가방’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싸움이나 사냥을 위해 길을 떠나는 전사나 사냥꾼조차도 물이든 곡식이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가 필요하고, 그것을 담은 가방을 메고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의 가장 귀한 자리에 놓여야 할 보물은, 무기가 아니라 이 놀라운 발명품인 운반 가방이어야 할 것이다. 르 귄은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설령 우리 자신이 이미 ‘살해자 영웅 이야기’의 일부가 돼 버렸다 해도,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생명 이야기”를 찾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애나 칭은 그 이야기를 잇는다.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결코 끝나지 않아야 하고 더 많은 이야기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 ‘버섯 이야기’가 있다. “버섯을 채집할 때 하나의 버섯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 번째 버섯을 찾으면 더 많은 버섯을 찾을 용기가 생긴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어쩌면 ‘세계 끝의 버섯’ 같은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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