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도 완전한 인간임을 주장하기는 매우 힘들다. 여성의 삶은 종종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되며, 그 경계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된 여성 억압 구조가 사회 전반에 침투한 결과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무엇을 봐야 이 구조를 분명히 감각할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획기적인 계획을 선보인다. 27세의 여성이고 심리학 석사
그런 영화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영화 어때?” 라는 말에, “재밌어”라고도, “흥미로워”라고도, “잘 만들었더라”라고도 대답할 수 없는, 사무치는 마음과 조심스러워지는 생각에 아무런 이야기조차 내어놓을 수 없는 영화. ‘다음 소희’(2023)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아주 단순한 계기였다. 지난 여름, 거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누워 있다가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서 티빙에 들어갔다. 그리고 ‘너와 나’(2023)를 통해 알게 된 김시은 배우의 이름을 치자 이 영화가 나왔다. 그래서 틀었을 뿐이었다. 핸드폰을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속도에 치여 살아간다. 달리지 못해 걷고, 걷다 못해 기어서라도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쳐간다. 스스로의 속도를 잃은 채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기에 버겁고, 또 무겁다.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 이곳은 휴남동에 위치한 한 동네 독립 서점이다. 영주는 서울의 한적한 골목에 독립 서점을 열었다. 삶에 지쳐버린 자신뿐만 아니라 지친 이웃들까지 모두 한 번 더 일어서 보기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이 가득한 지금, 휴남동 서점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2025)을 보는 내내 질문에 직면한다. '나는 사랑을 받을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류은중(김고은)인가, 아니면 결핍된 사랑 때문에 관계를 파괴하는 천상연(박지현)인가?' 우리는 마땅히 은중이 되기를 바라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마다 속으로는 상연의 비뚤어진 열등감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 우리들의 평범한 관계에서 드러나는 미묘하고도 사실적인 인간의 감정을 30년의 연대기에 걸쳐 세밀하게 풀어나간다.40대의 은중이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상연에게서 마지막 부탁을 받으
이 책은 젊음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도리언 그레이는 몹시 아름답고 부유한 청년이다. 그는 화가 배질의 뮤즈가 되어 화실에 드나들던 중 배질의 친구 헨리 경을 만나고, 그로부터 젊음이 얼마나 빛나며 짧게 타오르는 것인지 듣는다. 젊음에 집착하게 된 그레이는 ‘그림이 변하고 나는 지금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레이가 연인을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순간부터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그가 죄악을 저지를수록 그의 초상화는 추하게 늙어가지만 ‘진짜’ 그레이는 가장 아름다운 청춘, 배질이 그의 초상화를
최근에 부쩍 화가 많아진 것 같아 내면을 다스려 보겠다는 의지로 ‘싯다르타’를 골라 읽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이너피스’ 목적으로 딱이지 싶었다. 겉보기엔 부처의 자비로운 말씀이 담긴 듯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특정 종교 사상이 아닌 자기 이해와 깨달음, 사랑에 관한 헤르만 헤세의 고찰이 담겨 있다.주인공 싯다르타는 해탈의 경지에 오른 부처 ‘고타마 싯다르타’와 동명이인이다. 그는 인도 최상위 계층 바라문 집안에 태어나 아름다운 겉모습과 총명한 머리로 모두에게 기쁨의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내면에 갈증을 느낀 그는 아버지를
영원히 알기 힘든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호명(呼名)하는 일은 어설프다. 어설프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 매달린다. 무언가를 일련의 단어(들)로 호명하는 순간, 호명의 대상은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호명으로 인해 까마득한 밑바닥에 내려진 닻이 그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는 유동하는 자아를 멈추게 하고 일말의 흔들림 없이 침몰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서수가 그리는 'AKA 신숙자' 속 신숙자의 초상은 어떠한가. 신숙자는 어떻게 호명되며, 어떻게 움직이는가. 신숙자는 누구인가.소설 속 '나(미리)'는 자신을 과민하게 만드는 세 가지
두 사람이 이별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성격이 맞지 않아서,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서, 혹은 서로를 향한마음이 식어서. 그러나 꽤 많은 경우, 이별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다르다”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더 이상 우리가 ‘우리’일 수 없음을 인지하는 순간, 관계는 흔들리고 세상은 균열한다.‘해피엔드’의 유타와 코우는 성인이 되기를 앞둔 청소년이다. 오랫동안 함께 자라며 테크노 음악과 친구들 속에서 거침없는 시간을 보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세계는 다른 궤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늘 해오던 장난처럼 보였던 사건—새
기억을 지우는 환각제로 만들어진 나비 날개. 사춘기 소년들 사이 성적 흥분의 소재로 쓰이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폭도들에게 구타당하고 불타 사라지는 얼룩말. 엘비스 프레슬리 분장을 한 채 ‘파티용 물건’으로 불리다 사망하는 어린 소년. 혼란스럽고 엽기적인 이미지와 극장이라는 점잖은 장소에서 쉽게 연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폭력이 뒤섞이며 ‘머큐리 퍼’의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2005년 무대에 처음 오른 ‘머큐리 퍼’는 영국 극작가 필립 리들리의 다섯 번째 희곡이다. 극은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근미래 런던의 이스트엔드를 배경으로, 의
“너는 무엇을 지키려 하느냐?” 늑대에게 길러진 소녀 산의 목소리로 던져진 질문과 함께 이 영화는 시작된다. 중세 일본, 인간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숲을 침범하던 시대, 한 청년 아시타카는 저주받은 팔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운명을 풀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아니라, 공존과 파괴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었다. 숲의 신들, 철을 캐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숲을 지키는 산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사건은 단순히 저주를 풀거나 한쪽의 승리를 보는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만을 남
한국에서 홍콩 배우 장국영은 예외적인 문화적 지위를 점한다.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외국 배우임에도 매년 4월이면 그의 기일을 기리는 추모전이 열리고, 대표작들이 재개봉돼 스크린에 오른다. 올해 22주기를 맞아 국내에서는 최초로 재개봉한 ‘열화청춘’(1982)은 장국영이 자신의 실질적인 데뷔작으로 손꼽은 작품이자, 장국영 특유의 우수 어린 이미지가 처음으로 구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영화는 홍콩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담가명 감독의 대표작으로, 개봉 당시 ‘동성애적 묘사’와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상영 금지를 받았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망치고 싶어서 관계를 맺고, 파괴하고 싶어서 가정을 꾸리는 사람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단지 더 나은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한 선택들이 결국 우리를 몇 번이고 불행으로 이끈다는 것.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불행해지고 만다는 건 진정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은 ‘행복해지고 싶은’ 두 주인공이 난폭운전 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한다. 집안을 일으키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가장으로 거듭나고 싶지만 역부족인 한국계 미국인 수리공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깨어나는 순간, 영화 ‘미키 17’(2025)은 존재와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다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삶이 복제될 수 있다면 감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미키는 인류의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 투입된 ‘익스펜더블’, 즉 죽어도 되는 존재다. ‘죽는 역할’을 대신 수행하며, 죽을 때마다 생전의 기억을 다른 몸에 업로드해 재생된다. 그는 매일 위험한 실험에 투입되고, 상처를 입고, 다시 출력되며 살아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점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궁금한 게 뭐야?” 주인공 산드라의 목소리로 던져진 질문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으로 뒤덮인 조용한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한다. 사건 현장인 집에는 남자와 그의 아내, 아이 그리고 반려견뿐이다. 피가 튀긴 흔적을 분석하자 단순 사건 혹은 자살로 보는 것이 어려워졌고 그의 아내 산드라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후 그녀가 기소되며 발생하는 법정 공방과 판결에 대해 다룬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스릴러 장르 영화 ‘추락의 해부’이다.검사와 변호사는 혈흔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추락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이중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이 조금 많은 나머지, 현재조차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 채운다. 지나가 버린 시절, 순간, 사람, 장면을 자꾸만 되새기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후회와 닮아보여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좋았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들은 언제나 내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공허함을 안겨준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다고 한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회상은 결국 무력감과 마주하는 일이다.기억을 되짚다 보면, 현재 나의 태도와 감정이 기억에 섞여 희석되곤 한
사랑은 아이러니의 기제로 작동한다. 사랑은 단편적 감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분노, 슬픔, 후회, 실망, 기쁨 등 다양한 폭의 감정을 포괄한다. 더불어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가장 미운 사람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치할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는 우연하고 불가해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이유는 언제나 명확하다는 점에서 사랑은 역설적이다. 사랑은 시작과 끝이 다르고, 앞과 뒤가 다르고, 표면과 이면이 다르다. 사랑은 이중성과 이중화의 맥락에 위치하는 감정이다. ‘헤어질 결심’(2022)은 이러한 사랑의 본질인 아이러니를 극대화해 사랑
조금은 허름한, 그러나 아주 정겨운 무대를 비추는 희미한 불빛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조금의 정적을 뚫고 들려오는 힘찬 노랫소리. 8명의 배우가 내는 소리라곤 믿기 힘들 만큼 다채롭고 분주한 소리.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는 물음으로 활짝 문을 여는 이 뮤지컬의 이름은 바로 “빨래”이다.주변에서 누구나 볼 법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소개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 파도가 밀려온다. 힘들게 서울 생활을 이어가는 사회 초년생 나영의 목소리는 명랑하고도 애잔하다. 옥탑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솔롱고는 어리숙하고
28년. 영화 감독 타셈 싱(Tarsem Singh)이 그의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The Fall, 2006)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로부터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2024년 12월 25일, 전세계 수많은 영화인들의 관심과 사랑 끝에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으로 재개봉하여 무려 18년 만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관객의 품으로 돌아왔다.일본의 의상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 이시오카 에이코(Eiko Ishioka, 1938-2012)의 정교하고 화려한 의상 디자인, 그리고 타셈이 고수한 1920
애증은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어떻게 미우면서 좋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논리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귀신은 지평좌표계를 고정할 수 없어서 과학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남몰래 간은 콩알만큼 귀여워진다. 애증도 글자 그대로는 모순이지만 무서운 귀신처럼 막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이다. 수많은 애증 중에서도 아빠에 대한 애증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빠가 너무 싫다. 같이 밥 먹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아빠가 죽으면 분명히 울고
개념 미술의 등장으로 인해 아름다운 회화만 예술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덕분에 현대 미술에서 사진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필수인 요즘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SNS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이 오늘 누구와 무엇을 먹었지,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 등의 사진 업로드를 많이 하지만, 이러한 사진들에서 소소한 흥미는 얻을 수 있어도 뜻 깊은 의의를 찾기는 어렵다. 예술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