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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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이 조금 많은 나머지, 현재조차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 채운다. 지나가 버린 시절, 순간, 사람, 장면을 자꾸만 되새기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후회와 닮아보여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좋았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들은 언제나 내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공허함을 안겨준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다고 한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회상은 결국 무력감과 마주하는 일이다.

기억을 되짚다 보면, 현재 나의 태도와 감정이 기억에 섞여 희석되곤 한다. 회상하는 즉시 기억은 탁해지고 뿌예지며 오염되고, 이로부터 재탄생한다. 기억의 바탕이 되는 사건들은 단지 지나간 사실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한 시점에 남아 있다. 반면 기억이란 행위는 과거가 남긴 자취를 현재의 시선으로 추적하고, 거기에 주관을 더해 재해석하는 일이다. 따라서 ‘온전한 기억’은 본래 불가능한 개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욕심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기억을 보존하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글을 적어 물리적인 증거를 남기지만, 이 또한 결국 미래의 나에 의해 재해석될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괜히 내 소중한 추억들이 옅어져 결국 이 강렬하고 뚜렷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날이 올까 봐 회상을 미루게 된다. ‘사라진 것들’의 단편 속 인물 ‘리처드’는 한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던 자신의 대학 시절 사진을 자주 들여다봤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는 그 사진을 봐도 더 이상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껴 점차 사진을 멀리하게 되었다. 또 다른 인물은 금연 4년 만에 담배에 불을 붙인다. 젊었을 때는 평생 피울 거라 생각했던 담배,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담배를 연결고리 삼아 젊은 시절을 기억하려 하지만, 연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그는 깨닫는다. ‘지금껏 흘러온 시간만으로도 쿰쿰해지고 마르고 쪼그라든 그 담배’에선 그가 기억하는 맛이 전혀 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이가 없던 시절, 지금의 배우자와 함께 피우던 담배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과거라는 것을.

어떤 기억들은 향기로, 목소리로, 색채로, 혹은 그날의 공기로 표상된다. 책 ‘사라진 것들’은 이처럼 단편적인 기억을 통해 우리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미끄러지듯이 지나가 버린 것들을 이야기한다. 분명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잔존해 현재의 나를 이루는 것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대체로 어딘가 알쏭달쏭한 면이 있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책 속 화자들은 공통적으로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각자의 상실을 마주한다. 와인, 담배, 예술 그리고 젊은 시절의 열정과 꿈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기억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그렇게 사라진 청춘의 감각을 되찾으려 시도한다. 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크게 긍정되거나 부정되지 않는다. 작가는 쾌활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인물들을 통해 붙잡을 수 없는 시간, 말없이 스며든 상실 그리고 기억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현재를 긍정하길 강요하지도 부정하는 것을 질책하지도 않으며, 그저 노스탤지어의 애틋하고 공허한 감정 묘사에 집중해 상실과 회상의 감각을 다룬다. 일인칭 서술로 전개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오직 화자의 입장이 되어 함께 기억을 재해석하고 알 수 없는 답을 유추하게 된다.

인물들은 상실 이후에도 그다지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가는 다만 그들의 내면을 따라가며 독자에게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용히 전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실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 부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보여준다.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오히려 현재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현재를 등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나로부터 다시 쓰인다. 그 과정에서 왜곡과 편집을 거치며 현재의 감각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라진 것들’은 비록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부재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마치 더 이상 떠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했던, 내 어딘가에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는 사라진 기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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