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속도에 치여 살아간다. 달리지 못해 걷고, 걷다 못해 기어서라도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쳐간다. 스스로의 속도를 잃은 채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기에 버겁고, 또 무겁다.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 이곳은 휴남동에 위치한 한 동네 독립 서점이다. 영주는 서울의 한적한 골목에 독립 서점을 열었다. 삶에 지쳐버린 자신뿐만 아니라 지친 이웃들까지 모두 한 번 더 일어서 보기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이 가득한 지금, 휴남동 서점은 서울의 한 곳에서 홀로 느긋하고 안온하게 자리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온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민철 엄마는 아들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민철 엄마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민철은 그저 인생의 재미를 찾지 못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무기력하기만 했다. 정서는 계약직의 서러움과 세상의 부당함에 머리가 식지 않는 날이 없었고, 서점의 사장인 영주 역시 어느 날 찾아온 번아웃에 버거웠으며, 휴남동 서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된 민준은 계속된 취업 실패로 좌절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곳, 휴남동 서점에서 자신만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사건 없이 그저 일상의 고민과 성장의 순간을 담은 공간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곳. 서점은 저마다의 이유로 지친 이들에게 쉬어감의 공간이 됐고, 사람들은 서점이 주는 작은 위로를 통해 다시금 상황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굽혔던 허리와 무릎을 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도 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한없이 작은 것만 같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 주는 이야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작가는 외면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보듬을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했다고 말한다. 차가운 현실이라는 벽 앞에 서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스스로인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영주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 없다고 생각해요. 없으니까 각자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찾은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요.”라고 말했다. 이 문장에서 도 한 번 더 찾아볼 수 있다. 내 삶의 주체는 나이고, 무엇이든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곳에서 갈팡질팡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하나를 버리게 되는 상황에 굉장히 아쉬워하고 때로는 후회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포기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가 못나고 부족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준은 자신이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취업 실패로 좌절만이 가득하던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포기가 아닌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모든 선택이 옳을 수는 없다. 판단의 오류와 실수로 인한 실패는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넘어져도 일어서는 법을 알려준다. 실패라는 단어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를 아프게 생채기 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더 이로운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나쁜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실패는 내가 나다울 수 있을 때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기능한다. 같은 상황 속 똑같은 좌절이더라도 어느 공간에서, 어느 상태에서 생겼느냐에 따라 내가 느끼는 것도 달라진다. 익숙지 못한 곳에서는 내가 한 모든 것들이 조금만 틀어져도 한없이 커 보인다. 내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에서는 별거 아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속에는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내가 진정 나다울 수 있는 공간, 나는 그 공간을 가지고 있는가? 휴남동 서점이 영주와 민준, 다른 이웃들에겐 자기다울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했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우리다울 수 있는,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책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