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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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이러니의 기제로 작동한다. 사랑은 단편적 감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분노, 슬픔, 후회, 실망, 기쁨 등 다양한 폭의 감정을 포괄한다. 더불어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가장 미운 사람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치할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는 우연하고 불가해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이유는 언제나 명확하다는 점에서 사랑은 역설적이다. 사랑은 시작과 끝이 다르고, 앞과 뒤가 다르고, 표면과 이면이 다르다. 사랑은 이중성과 이중화의 맥락에 위치하는 감정이다. ‘헤어질 결심’(2022)은 이러한 사랑의 본질인 아이러니를 극대화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극 중에서 이포는 안개가 많아서 해가 잘 들지 않는 동네로 묘사된다. 해준과 서래가 헤어진 뒤, 서래는 해준이 있는 이포로 찾아온다. 그리고 우연인 듯 어시장에서 해준을 마주친다. 이때 서래는 ‘안개를 좋아해서 이포에 왔다’고 대답한다. 서래의 말에서 역설을 발견한, 예리한 성격의 정안은 ‘안개는 사람들이 여길 떠나게 하는 이유’라고 대답한다. 사실 서래는 안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해준을 만나기 위해 이포로 왔으므로 자신의 의도를 숨기며 발화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맥락을 모르는 정안이 이것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인 것과 달리, 주인공의 사랑을 목격한 관객들은 그 이면을 이해하며 서래의 말에 있는 역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안개는 영화에서 주된 요소로 사용되는데, 안개는 특히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는 속성으로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게 되며 왜곡된 시선으로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허점이 많은 서래의 알리바이를 치밀하게 파고들지 않으며, 이러한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하 수완의 이야기를 흘려듣는다. 결국 기도수 자살 사건의 실체는 흐려지고, 해준은 감정에 치우쳤던 스스로를 뒤늦게 발견하고 배신감을 느끼며 서래를 떠난다. 그리고 2부에서 다시 서래를 만난 해준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복기하며, 의도적으로 서래를 용의선상의 중심에 놓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준은 편향적인 수사를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기 때문에 틀린 방향의 결론을 낳는다. 서래를 사랑하지 않는 두 형사, 수완과 연수가 명백하게 진실을 가리키는 것에 반해 저명한 형사였던 해준은 서래가 연루된 사건에서만 오답을 쓴다.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지 않아서 2부의 범인을 서래로 지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서래를 사랑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부산에서는 정훈희의 노래로, 이포에서는 기상현상으로 존재하는 안개는 이렇듯 사랑에 의해 시야가 흐려지는 해준을 은유한다. 안개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역설로 작용하고 있다. 해준과 서래의 사이를 음악으로도, 기상 현상으로서도 유영하는 안개는 그 사람에 의해 흐려지고 왜곡된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일종의 필터가 된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사랑한다고 발화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을 극대화한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포기하면서도 핸드폰을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말한다. 서래는 일이 잘못되면 해준을 협박할 심산으로 마지막 대화를 녹음하였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위해주는 해준의 진심을 느낀다. 그리고 2부에서 서래는 자신과의 관계가 들킬 경우 해준이 겪어야 할 파멸을 예상하고 결정적인 녹음이 든 파일을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결정적인 순간에서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핸드폰을 깊은 바다에 버리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관객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동일한 선택을 하며 같은 대사를 주고받는 해준과 서래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목격한다. 한편, 임호신이 서래에게 남겼던, 표면뿐인 ‘사랑해’라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사랑한다는 말의 허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해준과 서래는 ‘사랑해’라는 언어를 생략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증명한다.

‘헤어질 결심’은 아이러니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사랑의 실체에 다가서고자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는 만큼, 영화는 모순을 결합하고 병치한 캐릭터와 서사를 촘촘하게 엮어냄으로써 사랑의 핵심적 성질인 아이러니를 전달한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교차를 통해 관객은 개인적 경험을 반추하며 서래처럼 영원한 미결로 남은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해준이 서래로 인해 수사에서 난항을 겪는 과정은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며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닮아 있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은 미결로서 완성되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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