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고 벅찼다. 내내 마음이 급했으며, 설익었는데 자꾸만 무르익은 이들을 흉내 내려 애를 썼다. 땡볕 아래를 바삐 오갔고, 급히 집을 나서다 우산 없이 장대비를 맞는 일상이 계속됐다. 폭풍우에 옥탑방 대문이 덜컹일 때 화장실엔 인체에 유해하다는 분홍 곰팡이가 피었다. 꿉꿉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뉴스에선 폭우로 터전을 잃은 이들과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여름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처럼 계절을 낭만화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숨이 턱턱 막혔다.
올해 우리나라엔 우박 같은 강한 비가 짧게, 자주 내리는 이상 기후가 지속됐다. 여름에 만개해야 할 수국은 맹렬한 햇빛 아래서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졌다. 그런 미묘하고도 거대한 역동 속의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작게나마 변화했다. 어느 날 대뜸 옷장 구석에서 민소매를 꺼내입었고, 10년 만에 바다 수영을 했다. 맨 어깨에 닿는 햇살과 입에 남는 바닷물의 짠 기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수박 주스와 평양냉면의 맛에 눈떠 혼자서 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카페와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매일 밤 10시쯤 운동장 향해 무작정 달렸다. 습할수록 더더욱 몸을 위로 띄웠다. 뒷덜미에 땀이 흐를 때면 머릿속이 닦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너무 더우니까”라는 핑계로 사람들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초가을에 나뭇잎을 찍는 습관은 천천히 변하는 것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됐다. 가을의 문턱에 선 지금, 나뭇잎이 물드는 속도로 중심을 찾아가고 있다. 한여름에 시작된 슬로우조깅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좋아하는 영화나 책이 생기면 요약이나 배속 없이 감상한다. 이미 놓쳤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가을은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의 계절이다. 은근히 차가워진 아침 공기, 끈적이지 않는 몸과 보송한 이불, 그리고 천천히 붉어지는 풍경까지.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의 신호에, 어김없이 찾아온 시간의 순환을 느끼고 안심했다.
계절의 초입에선 언제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보다 잃은 것들에 대한 집착이 든다. 괴로움도, 새로움도 다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채우기 위해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은 간직하되, 여름에 두고 올 것들은 놓아 보내자.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나무와 달라진 바람결을 알아차릴 때, 회복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