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우리대학 밴드제가 열리던 라이브 홀에서의 사진이다. 무대 조명이 꺼진 순간 찍은 사진의 노출을 높이니, 은근하던 붉은 빛만 남아 피사체를 감싸는 사진이 만들어졌다.

무대에서는 중앙락밴드동아리 릴리즈(ReleAse)가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1991)이라는 곡을 선보였다. 좋아하는 헤비메탈 노래인데,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내 손을 잡아, 네버랜드로 떠나자’(Exit light/Enter night/Take my hand/We're off to never-never land)라는 가사가 붙은 곡이다. 낮은 조도 속에서 조명이 한 번씩 강하게 무대를 비출 때, 이윽고 다시 어둠이 무대를 덮을 때... 강렬하고 긴장되는 기타와 함께 벌스와 코러스를 넘나들 때마다 내가 마치 ‘네버랜드’에 들락날락한 기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차례로 넘기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표정과 배경 무엇 하나 잘 보이지 않는 이 한 장이었다. 어둡고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워 기사 사진으로는 쓸 수 없는데도 말이다.

밝고 선명한 다른 사진들과는 달리, 검붉고 어두운 이 사진에서만 연상되던 ‘Enter Sandman’ 무대의 기억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박진감 넘치던 기타 리프, 묵직한 드럼의 울림이 저절로 느껴지던 공연 찰나의 순간이 바로 이 한 장에서 내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화면이 얼마나 깔끔하고 정돈돼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사진 너머의 경험이 내게 부여하는 의미다. 디스플레이 너머의 감각들을 내가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체험을 온전히 불러내 느낄 수 있다면. 셔터를 누른 그 순간의 오감과 감정이 내게 기억되는 한, 사진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간 촬영한 사진들 바깥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눈길을 돌려본다.

폭염 노동자 사진 속의 쨍한 햇빛이 아니라, 노동자의 땀과 열기로. 학위수여식 속 졸업생이 날리던 학사모가 아니라, 후련하다는 말과 함께 지어 보이던 미소로. 옅어져 가던 사진 너머의 경험이 시선 안에서 재차 의미를 갖는다.

몇 개의 픽셀로 정리되기에는 너무나 무한했을 감각들을 떠올려 보자. 사진은 우리가 느낀 순간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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