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관 등 교내 공간서 개최…영화 상영 및 연대 공연·발언

제1회 이화퀴어영화제 개막식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ECC 밸리를 행진하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제1회 이화퀴어영화제 개막식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ECC 밸리를 행진하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이화여대는 성소수자 혐오 행정 사과하라,

성소수자의 존재에 허락은 필요 없다.

‘제1회 이화퀴어영화제: 불허를 넘어서’ 개막식 행진 참가자들이 비어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 티켓박스를 향해 구호를 외쳤다. 이화퀴어영화제는 지난 4월 학교 당국과 모모가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취소한 일에 대응하고자 우리대학 학생들이 개최했다. 이화퀴어영화제 조직위원회(조직위)는 4일~5일 양일간 학생문화관(학문관) 일대에서 ‘너와 나’(2023), ‘럭키, 아파트’(2024) 등 퀴어 영화 9편을 상영했다. 이 외에도 각종 공연과 여러 활동가의 연대 발언이 영화제를 빛냈다.

개막식은 조직위의 개최 선언과 연대 발언으로 진행됐다. 조직위는 “불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개는 이어진다”며 학교 당국의 퀴어 혐오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제57대 총학생회 스텝업의 정재린 권리연대국장은 “여성을 억압에서 해방한 이화가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절로 혐오와 차별의 공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청년 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의 파람(활동명, 정외·24년졸)씨는 퀴어의 존재는 어떤 혐오로도 지워지지 않는다며 학교 당국과 모모를 향해 “지금 이화에 존재하는 우리를 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문관 1층에 마련된 이화퀴어영화제 방명록에 한 이화인이 “우리는 존재하며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학문관 1층에 마련된 이화퀴어영화제 방명록에 한 이화인이 “우리는 존재하며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사전 예매로 방문한 관람객은 287명이었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인원이 현장을 찾았다. 개막작인 ‘너와 나’(2023)는 사전 예매 및 현장 발권으로 55명이 관람했다. 개막작을 관람한 배수민(사회·24)씨는 영화가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모든 사랑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장편 영화로는 개막작 ‘너와 나’, 폐막작 ‘딸에 대하여’(2023) 외에도 ‘럭키, 아파트’(2024), ‘탠저린’(2015), ‘헤드윅’(2001)까지 5편이 상영됐다.

 

창작 영화부터 공연까지, 영화제 이끈 학생들

김주영(환공·18)씨, 하지연(커미·19)씨, 김효민(국교·18)씨(왼쪽부터)가 미소짓고 있다. 이들은 “불허에 맞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기뻤다”며, “꺼지지 않는 불빛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영인 사진기자
김주영(환공·18)씨, 하지연(커미·19)씨, 김효민(국교·18)씨(왼쪽부터)가 미소짓고 있다. 이들은 “불허에 맞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기뻤다”며, “꺼지지 않는 불빛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영인 사진기자
4일 오후 ‘달려있는 하니(2022)’, ‘나를 잊지 마시오(2024)’ 두 편의 학생 창작 단편이 상영된 이후 감독과 연출자들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유경 사진기자
4일 오후 ‘달려있는 하니(2022)’, ‘나를 잊지 마시오(2024)’ 두 편의 학생 창작 단편이 상영된 이후 감독과 연출자들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유경 사진기자

우리대학 영화 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제작한 ‘달려있는 하니’(2022)와 ‘나를 잊지 마시오’(2024)는 ‘학생 창작 단편 세션’에서 상영됐다. ‘나를 잊지 마시오’는 외계인 여성과 지구인 여성의 사랑을 그렸고, ‘달려있는 하니’는 어느 날 남성기를 은유하는 뿔을 갖게 된 ‘하니’를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여러 관점을 담았다. ‘나를 잊지 마시오’의 복현주 감독은 ◆GV에서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절이 실망스러웠던 한편 “덕분에 투쟁의 장이 열렸고, 역설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더욱 시끄럽게 알리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학생문화관 광장에서 ‘이화풍물패연합’의 공연이 열렸다. 조예린(사회·23)씨는 “이번 행사에 풍물패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영인 사진기자
학생문화관 광장에서 ‘이화풍물패연합’의 공연이 열렸다. 조예린(사회·23)씨는 “이번 행사에 풍물패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영인 사진기자

우리대학 공연 동아리들도 무대에 올라 학문관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중앙록밴드동아리 릴리즈는 개막식에서 공연을 펼쳤고, ‘이화풍물패연합’은 폐막식에서 흥겨운 풍물놀이를 선보였다. 스콜피온스의 ‘Rock You Like a Hurricane’(1984)으로 분위기를 달군 릴리즈의 보컬 이윤서(경제·24)씨는 퀴어프렌들리한 사람으로서 조직위로부터 공연을 요청받았을 때 기뻤다며 “뜻깊은 공연이라 반드시 참여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회 곳곳의 연대로 풍성해진 영화제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팀 ‘호레이(HOORAY)’가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며 폐막식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정영인 사진기자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팀 ‘호레이(HOORAY)’가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며 폐막식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정영인 사진기자

5일 오후1시 ‘연대 작품 단편 세션’에서는 이화퀴어영화제에 지지를 표한 감독들의 단편 영화 2편이 관객들을 만났다. 특히 신해나 감독은 이화퀴어영화제를 위해 새로 제작한 ‘퀴어를 납치하는 가장 완벽하는 방법’(2025)으로 다양한 퀴어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영화에 담았다. 김지원, 김영빛 감독의 ‘덕후 노정기’(2025)는 판소리를 ‘덕질’하던 두 감독이 전국을 돌아다니다 탄핵 광장과 퀴어 퍼레이드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같은 시각 학관 210호에서는 인문지리학자 김현철 연구교수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퀴어, 저항, 그리고 공간의 재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인권활동가 명숙씨가 세계의 극우정치 이론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명숙씨는 “극우정치는 평등에 대한 모든 요구를 억압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정영인 사진기자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인권활동가 명숙씨가 세계의 극우정치 이론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명숙씨는 “극우정치는 평등에 대한 모든 요구를 억압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정영인 사진기자

‘퀴어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코미디언 김연경(활동명), 문파란(활동명), 고은별(경영·13년졸), 안아키(활동명), 전인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퀴어 혐오를 유쾌하게 풍자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관객들은 “(혐오 세력의) 행동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연대하고 돈도 벌게 됐으니,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혐오해서 돈 벌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김 씨에게 환호했다.

‘호레이(HOORAY)’의 공연 중 다 함께 일어선 관중이 음악에 맞춰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정영인 사진기자
‘호레이(HOORAY)’의 공연 중 다 함께 일어선 관중이 음악에 맞춰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정영인 사진기자

여러 예술인의 공연도 더해져 즐거운 연대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폐막식에서는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 팀 ‘호레이’가 타악기 공연을 선보였다. 학문관 계단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공연 중 무대로 뛰쳐나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춤을 추기도 했다. 호레이의 단원이자 우리대학 졸업생인 김효민(여성학 전공 석사·24년졸)씨는 “관객들이 같이 기차놀이를 하며 공연을 즐겨 저희도 아주 재밌게 공연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외에도 개막식에서는 싱어송라이터 예람과 신승은이, 폐막식에서는 페미니스트 댄스공간 ‘루땐’이 공연했다.

현장 참여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동주최 및 후원 등의 방식으로 이화퀴어영화제와 연대했다. △이화민주동우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청년녹색당 △무지개신학교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등 51개 단위가 공동주최단위로 참여했다. 우리대학 및 신촌 일대 8개 업체는 이화퀴어영화제에 후원하거나 관람객들에게 제공될 무료 쿠폰을 준비했다. 약 450만 원의 후원금도 모였는데, 조직위로 일한 김민지(영문·21)씨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연대의 마음을 만나 감사했다”고 전했다.

 

수어 통역부터 자막까지…모두를 위해 노력한 축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안아키(활동명)씨가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 정영인 사진기자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안아키(활동명)씨가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 정영인 사진기자

조직위는 모든 이가 즐길 수 있는 이화퀴어영화제를 위해 산하에 접근성 팀을 두어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영화와 강연을 제외한 개·폐막식, GV 등 모든 행사에 수어 통역과 속기를 제공했다. 9편의 영화는 청각장애인용 한국어 배리어프리 자막 혹은 한국어 자막, AI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수어 통역사로 참여한 한국농인LGBT+의 김보석(36)씨는 이화여대는 퀴어프렌들리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아직도 (퀴어 혐오가)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조직위는 배리어프리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배리어프리 자막이 모든 영화에 제공되도록 힘썼지만, 결국 학내 단편 세션과 ‘럭키, 아파트’를 제외한 영화들에는 이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위의 명(활동명, 사회·24)씨는 “비용과 인력 문제로 가장 먼저 포기되는 요소인 배리어프리를 이화퀴어영화제에서는 지켜내고 싶었다”며 부족함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야말로 배리어프리의 출발점임을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화퀴어영화제 스태프들이 ‘이퀴영 스티커 굿즈’를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이화퀴어영화제 스태프들이 ‘이퀴영 스티커 굿즈’를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이화퀴어영화제 참가자들이 아트하우스 모모 앞 난간에 퀴어영화제 반대 입장을 규탄하는 대자보와 퀴어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스티커들을 붙이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이화퀴어영화제 참가자들이 아트하우스 모모 앞 난간에 퀴어영화제 반대 입장을 규탄하는 대자보와 퀴어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스티커들을 붙이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학생처 학생지원팀은 “‘이화영화제’라는 자치활동 명칭으로 공간 사용 신청이 접수돼 승인했다”며 이후 “자유게시판, 교내 벽보 등을 통해 해당 공간에서 ‘이화퀴어영화제’가 진행된다는 점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행사 진행 과정에 학교 측 경호팀을 둔 이유에 대해서는 “교내 행사에 많은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될 경우, 의례적으로 안전한 행사 진행을 위해 총무처 협조하에 안전 요원을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퀴어영화제를 주최한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양은석 사무국장은 “모모 대관 취소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별다른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교 당국은 이화퀴어영화제의 기자회견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GV: Guest Visit의 준말로 감독 등 영화 관계자들이 상영 현장을 방문해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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