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퇴장하는 등장1’ 구자혜 동문 연출
“X같은 등장도 퇴장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X같은 극장을 빠져나온 언니의 얼굴에 횃불의 강렬한 빛이 드리우자 (...) 언니가 말해. ‘세실리아. 나는 퇴장할래.’”
5일 ‘2025 서울변방연극제(변방연극제)’가 우리대학에서 퀴어 청소년의 얘기로 막을 올렸다. 지난 4월 아트하우스 모모가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취소를 통보한 이후 이어진 학내 구성원의 비판에 연대하겠다는 의미다. 퀴어 청소년의 주변화된 삶을 다룬 개막작 ‘퇴장하는 등장 1’(2025)은 3일간 이화 시네마떼 끄에서 공연됐다.
변방연극제 사무국은 대관 취소 사태와 학내 구성원들이 이화퀴어영화제(이퀴영)를 자체적으로 개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 대학 무대에서 개막작을 올리기로 했다. 사무국은 대학 권력에 의해 퀴어의 존재가 지워졌지만, 학내 구성원의 연대로 퀴어가 다시 등장할 수 있었던 우리대학에서 개막작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화퀴어영화제 조직 위원회(조직위)도 사무국의 협력 제안에 호응했다.
조직위는 개막작을 선보일 무대로 학생문화관 343호에 위치한 영화상영관 ‘이화 시네마떼끄’를 선택했다. 이화 시네마떼끄는 학내 자치단위 ‘시네마떼끄’가 운영하는 학생들만의 공간으로, 학생회비의 일정 비율을 지원받아 학교 당국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해 있다. 민형(활동가∙국어국문학 전공 박사과정)씨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변방연극제가 우리대학에서 공연하고자 하는 취지와 가장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개막작 제목 ‘퇴장하는 등장’은 퇴장과 등장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인 퀴어의 고통을 전하고 그와 연대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구자혜(국문·06년졸)씨는 “혐오의 방법론이 진화하며 퀴어를 허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허하지 않는다”며, “자연스럽게 기괴한 수위까지만 허하는 세계에서, 퀴어는 등장했지만 (사실상) 퇴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거부하는 세계에서 적극적으로 퇴장함으로써 다른 공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퀴어를 상징하는 제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퇴장하는 등장 1’은 퀴어가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퀴어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기해야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비판하는 연극이다. 극에는 학예회를 준비하고 있는 퀴어 청소년 ‘토마스’와 ‘찰스’, 100년 전 퀴어라는 이유로 학예회에서 퇴출당하고 무대에 영혼이 갇혀있는 ‘세실리아’와 ‘세실리아의 언니’가 등장한다. 비(非)퀴어인 교사의 눈에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토마스’는 체벌을 받고 세계를 떠난다. ‘찰스’는 토마스와 달리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용납하는 수위 내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퀴어의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세실리아와 세실리아의 언니가 100년 후 동일한 무대에 설 퀴어들을 위해 남긴 편지를 찰스가 읽는 장면으로 여전히 퀴어들이 겪는 고통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남기고 극은 마무리된다.
‘퇴장하는 등장 1’은 연극 대사를 모두 벽에 영사하고, 감정을 자제하는 연기와 교과서를 읽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는 등 실험적인 형식을 선보였다. 홍인표(24)씨는 퀴어 청소년을 피상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극이었다며 “이화에서 퀴어 영화제를 금지했던 맥락이 있는데, 시네마떼끄에서 이 연극을 올림으로써 두 사안이 연대로서 맺어지는 것 같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공연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 인상 깊게 참여한 관객도 있었다. 이한나(23)씨는 “(구씨가) 배우를 선정할 때 ‘이 텍스트를 어떤 배우가 가장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떤 배우가 읽어야 안전할까’에 중점을 둔다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변방연극제는 성소수자, 국가 폭력 피해자, 장애인 등 사회 변방에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예술 언어로 전달해 왔다. 해마다 변방을 새롭게 정의하는 변방연극제의 올해 키워드는 ‘◆이방-◆연방-변방’이다. 사무국은 세계가 동질성에 기반한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해당 키워드를 선정했다.
이번 변방연극제는 연극뿐만 아니라 낭독, 게임, 참여형 공연 등 11개의 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서울, 고양, 목포 등 전국에서 12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사무국은 “동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공연예술로 어떻게 말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예술 작업자 및 시민들과 함께 질문하고자 한다”고 추후 활동 방향을 밝혔다.
◆이방: 풍속이나 습관 따위가 다른 지방
◆연방: 자치권을 가진 다수의 나라가 공통의 정치 이념 아래에서 연합해 구성하는 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