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에서 퀴어 담론은 뜨거운 감자다. 헌장에 명시된 ‘기독교정신’을 이유로 퀴어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과, 퀴어를 지우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이들의 대립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우리대학에서 기독교를 연구하고 학습하는 이들은 기독교정신이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1조 (창립이념) 이화여자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기독교정신에 바탕을 둔 여성의 인간화를 위하여 여성들이 건전한 인격과 교양 및 전문지식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진취적인 학문 연구와 적극적인 사회봉사를 통하여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지난 5월 아트하우스 모모(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퀴어영화제) 대관 취소는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이화인 일동’은 퀴어영화제가 “이화여자대학교 헌장 제1조 창립 이념인 기독교정신에 반하기에, 이화여대의 교육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라며 항의 민원을 쏟아냈다. 이들은 “어린 학생들의 교육 공간인 이화 땅이 전국의 동성애 홍보장이 되지 못하게” 퀴어영화제 반대 서명 및 항의를 독려했다. 학교 당국과 모모는 협의 하에 퀴어영화제 대관 취소를 결정했다.
대관 취소가 알려지자 저항의 목소리가 다수 나왔고, 그중에는 우리대학에서 기독교정신을 수학한 이들도 있었다. ‘퀴어와 연대하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신학 공동체 123인’은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화 안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 없다”라는 내용을 담으며, 반대 진영의 주장을 반박했다. 대자보를 작성한 이들 중 한 명인 임령진(기독교학 전공 석사·24년졸)씨는 우리대학 기독교학과가 퀴어영화제를 반대한다는 오해를 막고, “오히려 우리가 배운 것은 이와 정반대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대자보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대자보에는 기독교학과와 일반대학원 기독교학과, 신학대학원까지 다양한 재학생과 졸업생이 연서명했다.
제57대 총학생회 스텝업이 퀴어퍼레이드(퀴퍼)에 참여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대자보에도 기독교정신이 언급됐다. 퀴어영화제 취소에 반발해 자체적으로 개최한 이화퀴어영화제 기자회견에서는 한 신학대학원 학생이 “기독교정신에 반하는 존재는 없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성서, 특정 구절 아닌 맥락을 이해해야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레위기 20장 13절(레위기)은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해 주로 인용하는 구절이다. 퀴어영화제를 반대했던 진영도 이를 ‘근거 성경 말씀’이라고 지칭했다. 우리대학 박경미 명예교수(기독교학과)는 저서인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에서 해당 구절을 근거로 현대의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위 구절은 남성 간 삽입 성행위를 죄라고 언급한다. 박경미 교수는 이것이 윤리적 의미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죄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경계를 넘어서는 어떤 행위든 부정하다고 여겼던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남성 간 삽입 성행위에서 삽입 당하는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므로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부정하게 된다고 봤다. 박경미 교수는 위 구절을 반동성애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긍정했던 예수의 정신에 의해 위 구절은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대학 기독교학과를 졸업한 미국 스펠만대(Spelman College) 김나미 교수(종교학과)는 “3만 개가 넘는 구절 중 하나를 선택해 혐오를 정당화한다면, 이는 성서 구절을 오역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악용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맥락을 무시한 채 증거로서 성서 구절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프루프 텍스팅’(proof texting)이라고 정의했다. 김나미 교수는 프루프 텍스팅을 통해 “(그들이) 성서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들의 편견, 즉 퀴어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자인 특정 집단에 대해 낙인을 찍는 것은 성서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임씨 또한 기독교학과에서 성서 해석을 배우며 특정 구절 하나로 퀴어를 배제하는 행위는 틀린 것임을 배웠다고 말했다. 성서가 쓰인 배경과 무엇을 말하기 위해 쓰였는지 등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레위기의 성행위가 오늘날 동성애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퀴어를 '외부의 적' 삼아 내부 결집
우리대학에서 발생하는 퀴어혐오는 현시대 보수 개신교의 맥락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김나미 교수는 “혐오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 배경에 있는 정치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의 퀴어혐오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대학 김보명 교수(여성학과)의 논문 ‘한국 사회 보수개신교 반동성애 실천의 담론적 확장과 변주’(김보명, 2024)에 따르면, 보수 개신교는 과거 한국 사회를 지배한 반공주의에 편승해 공격할 대상을 만들어내며 세력을 결집했다. 그는 보수 개신교가 오늘날에도 반공주의 프레임을 변주하며 퀴어와 무슬림,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외부의 적으로 만들어 내부를 결속했다고 분석한다.
우리대학에서 기독교를 공부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보수 개신교가 혐오라는 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혐오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이라며, 보수 개신교의 행동을 “멀리 보지 못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미 퀴어를 향한 사회적 인식은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김나미 교수도 “보수 개신교가 혐오를 퍼뜨리는 방식을 버리고 내부 성찰과 반성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차별과 폭력 자행
기독교인 퀴어가 교회 안에서 겪는 고통은 특히 쓰라리다. 퀴어 축복 기도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감리회로부터 출교 처분을 당한 이동환 목사는 정체성이 신앙과 공존 가능한지 갈등하는 기독교인 퀴어를 다수 지켜봤다. 그는 동성애를 병리적 현상으로 여기고 이성애를 ‘정상’으로 보는 ‘전환 치료’를 설명하며, “폭력성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을 봤다”고 덧붙였다. 기독교인 퀴어를 대상으로 무료 상담을 진행하는 박희규 교수(기독교학과)는 내담자들의 사연에 늘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당사자를 만나면 “그 언어(죄)가 쉽게 나올 수 없다”며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발화하는 이는 퀴어를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수가 행한 길은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옆에 섰던 것이라고 모두 입 모아 말한다. 임씨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은 당시 사회적 약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며, 오늘날의 언어로는 연대라고 의미를 확장했다. 오민서 (기독·24)씨는 기독교가 “경계 없이 사랑하라”라고 역설하는 종교임을 학부 수업에서 배웠다. 그는 “예수님은 가장 경멸 받던 이들 옆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라며 기독교 안에서 남을 배척하는 목소리는 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박희규 교수는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사회가 낙인찍은 사람들과 가장 낮은 곳에서 동행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퀴어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기독교정신에 반한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이화의 기독교정신, "약자 곁에 위치해야"
우리대학의 기독교정신은 당시 절대적인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한 근거였다. 헌장은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이름 없는 여자들이 살고 있는 조선에서 오직 여성의 ‘인간화’를 위해 교육했음을 명시한다. 박경미 교수는 한국의 70~80년대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 진보적인 신학을 선도한 곳이 우리대학 기독교학과라며 창립 이념을 살폈을 때 “약자를 위해 헌신했던 귀한 전통”을 지녔다고 말했다.
우리대학이 퀴어영화제 취소를 결정한 것에 부끄럽다는 평도 나온다. 박경미 교수는 학교 당국이 최소한의 중립적인 태도마저 견지하지 못한 데에 유감을 표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이화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부끄러운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김나미 교수는 우리대학에서 퀴어영화제 취소의 근거로 내세운 ‘구성원 모두의 안전과 존엄’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나미 교수는 “퀴어영화제의 상영을 환영하고 기다렸던 또 다른 이화인들의 존엄과 심리적, 물리적 안전은 어떻게 보호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우리대학은 해방신학을 표방하며,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에 의한 신학을 기조로 한다. 정은혜(기독·24)씨는 퀴어가 아닌 주체가 퀴어를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퀴어와 함께하는 것이 기독교정신이라고 말했다. 김나미 교수는 “공동선을 향해 인류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이화 교육의 목표라고 한다면, 더 많은 섬김, 나눔, 베품이 있어야 한다”며 차별이나 배제, 혐오가 들어설 자리는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대학 기독교정신이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손지현(기독·23년졸)씨는 진보적인 신학을 배우는 이화에서 퀴어영화제 대관 취소부터 퀴퍼 반대 대자보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해 당혹스러웠지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슈가 발생해야 한다면 이화에서 나야 한다”라고 전했는데, “우리는 그런 의제에 들고 일어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희규 교수는 보수 개신교 진영의 목소리가 전체 기독교의 목소리인 듯이 과대표된다고 느꼈다. 그는 우리대학이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 만큼 모든 구성원이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독교정신을 숙의하는 장을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