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부트 10년 이화인의 눈으로 바라보다 ⑤

편집자주 | 2015년 한국 사회에서 부상한 페미니즘은 여러 사건을 겪으며 강력한 사회 의제로 떠올랐다. 언론과 사회는 당시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흐름을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했다. 이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를 살아온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본지는 페미니즘 리부트 10주년을 맞아 우리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는 534명이 참여했고, 관련 기사는 2주에 걸쳐 연재된다. 1716호는 10년간 페미니스트들이 겪은 한국 사회와 현재 시급한 여성의제, 탈코르셋과 4B라는 여성운동 세 가지 측면을 분석했다. 1717호는 페미니즘 진영 내 퀴어 인식과 조용히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스텔스 페미니즘’을 다룬다.

☞ '리부트 ④' 기사에서 계속

우리대학은 비교적 퀴어 친화적인 환경으로 나타났으나,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여론은 엇갈리고 있었다. 본인을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면서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퀴어와 함께 페미니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여전히 트랜스젠더 의제가 치열한 논쟁임을 시사한다.

비교적 높았던 퀴어 포용도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을지로2가를 행진하고 있다. 본 행진에는 총학생회 스텝업, 이화교지, 이화나비 등 다양한 우리대학 자치단위 및 단체들이 참여했다. 출처=이대학보DB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을지로2가를 행진하고 있다. 본 행진에는 총학생회 스텝업, 이화교지, 이화나비 등 다양한 우리대학 자치단위 및 단체들이 참여했다. 출처=이대학보DB

우리대학의 퀴어 포용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7.5점으로 나타났지만,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단일하지 않았다. 3점을 매긴 김태랑(사회과교육학과 지리학석사과정)씨는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가진 퀴어, 즉 레즈비언에 대한 포용도는 높지만 트랜스젠더 등 젠더 이분법을 위협하는 퀴어에게는 배타적”이라고 지적했다. 김명희(사회·24)씨는 타대와 비교했을 때 우리대학이 퀴어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7점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김선혜 교수(여성학과)는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난 퀴어 포용도에 세대적 특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20대 여성은 타 집단보다 여러 사회 이슈에 개방적인 경향을 보인다”며 퀴어 관련 사안이 자신과 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강한 불쾌감이나 거부감까지 드러내지는 않아 비교적 높은 점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설문에서 확인된 인식과는 별개로 많은 이화인이 일상에서 혐오를 마주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45.1%는 우리대학 내에서 ‘타인의 퀴어혐오적인 발언 혹은 행동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ㄱ씨는 “커밍아웃을 한 나를 보던 룸메이트의 혐오 섞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며 “그 이후로는 함부로 커밍아웃하지 않게 됐다”고 털어놨다. 표면적으로는 포용을 말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퀴어혐오가 드러나는 모순이 있었던 것이다. 응답자들은 이외에도 △동성애 혐오 발언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서의 트랜스젠더 혐오 △퀴어혐오가 담긴 대자보 등을 관련 경험으로 언급했다. ㄱ씨는 신원 특정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이화퀴어영화제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이화여대는 퀴어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고, 진정한 대학 본연의 책무을 다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이대학보DB
이화퀴어영화제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이화여대는 퀴어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고, 진정한 대학 본연의 책무을 다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이대학보DB

학교 차원의 포용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많은 응답자가 지난 4월 독립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가 학교 당국의 입장을 수용해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거절한 일을 주요 사례로 언급했다. 학교 당국과 모모의 결정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대관 거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경연(화신공·22)씨는 “(우리대학이)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로 퀴어 이슈를 묻어두려 하는 것 같다”라며 “다른 기독교 기관들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화는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퀴어혐오가 집단적 행동으로 표출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 6월 총학생회가 퀴어퍼레이드 참가를 선언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붙었다. 해당 대자보는 '트랜스젠더와 연대하는 퀴어퍼레이드에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참여는 반여성인권적 행위'라며, 트랜스젠더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응답자들은 퀴어를 포용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차별, 혐오 발언에 대한 학교 차원의 대응 지침 마련’이 66.7%로 1위를 차지했으며, △퀴어 대상 프로그램 활성화(41.8%) △퀴어 관련 학생 동아리 및 자치 활동 지원(37%) △전체 학생 대상 퀴어 인권 교육(32.9%)이 그 뒤를 따랐다.

엇갈렸던 트랜스젠더를 향한 목소리

설문 결과 우리대학 학생 10명 중 6명이 트랜스젠더 의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례에 동의하는지’, ‘트랜스여성(MTF)의 우리대학 입학에 동의하는지’ 2가지 질문에 답했다. 각 의제에 반대 의사를 보인 이들은 공통적으로 약 60%였고, ‘동의한다’고 답한 이들은 약 20%였다. 나머지 20%는 '잘 모르겠다'를 선택했다.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현상은 우리대학뿐 아니라 한국 페미니즘 담론 내에서도 나타난다. 응답자 중 90%(480명)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정의한 우리대학에서도 트랜스젠더 의제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현재 한국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터프(TERF)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터프는 트랜스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의 약어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의 존재가 페미니즘에 해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트랜스젠더 의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터프 진영과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답변에서 ‘성별은 타고난 염색체로만 결정된다’며 사회문화적 성별인 젠더를 부정하는 성별 이분법적인 사고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유빈(스크·25)씨는 미디어를 통해 접한 트랜스여성이 “본인을 화장을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정의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이힐이나 치마에 관심을 가지며 여자로 정체화했다는 트랜스여성의 경험 자체가 “일종의 여성혐오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도 덧붙였다.

트렌스젠더 의제에 찬성을 표했던 학생들은 젠더가 사회적인 수행을 통해 구성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ㄴ씨는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수행하는 트랜스젠더의 행위 자체를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개인을 억압하는 성역할이 존재하고, 이것이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페미니스트조차도 젠더를 수행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도 사회 속에서 젠더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며, “이들이 규범화된 성역할에 순응하도록 만든 여성혐오적인 사회를 비판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명희씨는 페미니즘의 주요 슬로건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드러내 여성해방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며, 터프의 주장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는 견해를 밝혔다.

성전환 수술의 여부는 트랜스젠더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응답자들은 ‘수술을 한 경우에만 우리대학 입학에 찬성한다’,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등 의견을 남겼다. ㄷ씨는 수술한 트랜스여성의 우리대학 입학을 막을 명분은 마땅히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르다고 답했다. 그는 “남성 신체를 지닌 채 여학생만이 모여 있는 여대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은 여대의 오랜 규범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비수술 트랜스여성이 우리대학에 입학했을 때 시스젠더 여성이 느낄 공포를 우려한 이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트랜스여성이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성적, 물리적 위협을 가한 사례’로 인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트랜스젠더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거대한 성산업 구조를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민소원(심리·22)씨는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는 이들과 이것이 공유되는 사이트, 이를 운영하는 유통업체와 소비하는 남성 소비자들”이 진정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랜스여성과 시스여성이 싸우는 동안 이들은 더욱 세력을 불릴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응답자는 ‘학내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해 기존 학생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남겼다.

타자화 경계하고 연대해야

FTM(Female-to-male) 트렌스젠더 박정한(가명)씨가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다. 박씨는 본교 입학 후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민경민 사진기자
FTM(Female-to-male) 트렌스젠더 박정한(가명)씨가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다. 박씨는 본교 입학 후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출처=이대학보DB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트랜스젠더를 대면한다면 트랜스젠더 타자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짚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류민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직접 듣는 과정이 사회적 이해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성공회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을 언급하며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 기본적인 생리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해 학교 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아닌 실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경험을 공유받을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선혜 교수도 트랜스젠더 방송인들의 미디어 속 모습이 학생들의 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미디어에서 본 제한적 이미지나 특정 사례를 근거로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편견이나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계는 터프가 페미니즘 운동의 주류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의전화 도경은 기획조직국 국장은 “인권이나 평등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며 “구조적 차별은 특정 소수자 집단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페미니즘은 종국에는 모든 차별과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수수(활동명)씨도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에 의해 여성이 고통받고 있다’ 같은 주장에 단호히 반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즘의 핵심 가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대학보 취재2부서(최영서, 박희원, 이지원, 한재유) 공동취재
· 조사 기관=이대학보
· 조사 대상=우리대학에 재학하는 이화인
· 조사 기간=8월28일~10월16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