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눈을 감고 누워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 주세요. 나의 몸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오로지 몸의 감각으로 내 몸이 닿아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잠이 들것 같다면 억지로 몸을 깨우지 말고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여성의몸과창조적움직임>의 실기수업 첫날, 체육관에 모인 학생들에게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아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혹스런 표정을 보이며 눕기를 주저합니다. ‘누워서 하는 수업이라더니 정말이구나!’ 학생들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내 학생들은 깊은 고요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완전하게 이완된 상태가 되었을 때 잠이 들기도 합니다. 이때의 잠은 단순한 졸음이 아닌 깊은 몸과의 만남을 경험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교과목이 처음 개설된 시기는 2013년 1학기입니다. 이 강좌가 개설된 당시에 우리 사회는 ‘보여지는 몸’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몸은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라 여겨지지만 더 이상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가령 표준 체중을 넘어서거나, 기성복 옷 사이즈 안에 몸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특정 기준에 맞지 않은 몸은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자, 자기관리를 못하는 패배자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적극적으로 가혹하게 따르도록 합니다. 그 기준은 강요하는 주체는 사회와 가정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그 규율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행동하는 것을 통제하고 검열하며 변형되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노력은 성취감보다는 좌절과 절망을 더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왜냐하면 맞춰야 하는 기준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요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몸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가는 모습은 저에게도 익숙합니다. 저는 청소년기부터 발레를 전공으로 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오랜 시간 받아왔습니다. 춤예술은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춤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무용수는 연습실의 전면 거울 속에 관객의 시선을 투영하여 자신을 몸을 관찰합니다. 오늘 나의 몸이 무용수로서 부합한 몸인지, 동작을 수행하며 틀린 것은 없는지 누구보다 냉혹하게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몸과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 내재화되면 무대와 무용실이 아닌 장소에서도 스스로 통제하고 검열하는 행위가 작동됩니다. 

  보이지 않은 억압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정해진 규율과 규칙에 잘 따르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자책과 모멸을 느끼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에서 학생들이 겪고 있는 몸과 관련된 체험을 듣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은 공감을 느끼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수업이 시작된 13년 전보다 ‘보여지는 몸’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손에 있는 핸드폰을 통해 펼쳐지는 가상 세계에서 연출된 몸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학기를 시작한 여러분, 그리고 이화에 입학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신입생 여러분들! 새 학기가 시작되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으실 것입니다. 바쁜 등하굣길에서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게 위해 지하철 창문과 거리의 쇼윈도를 통해 나의 모습을 점검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을 통해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 거울에 투영된 나를 확인하기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면 어떨까요? 아주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잠시 멈춰서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나의 두 발이, 나의 다리가, 나의 팔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 나를 둘러싼 이 공간을 받아들인다 생각해 봅시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내 안의 고민, 고통, 기쁨, 행복의 시간을 호흡과 함께 바깥으로 내보내 봅시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나와 함께 하는 몸에게 말을 걸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몸이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주는 편안한 나의 집(Oikos)이 될 수 있음을 서서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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