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3월12일 제22대 총선 공약집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포함했다. 공약이 시행되면 상대방의 성관계 동의 여부만 가지고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남성 유권자의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실무적 착오”라며 철회했다. 개혁신당은 1월29일 ‘여성 신규 공무원 군복무 의무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렇듯 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정치권의 표를 얻기 위한 남성 위주의 정책 제시와 여성 혐오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여성이 사라진 한국 정치, 문제점을 실감한 많은 이들
제20대 대통령 선거(대선)의 최대 승부처는 2030 남녀였다. 20대 여성의 58%가 당시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20대 남성의 58.7%는 윤석열 당시 국힘 후보를 지지했다. 2030 남녀의 분열에는 윤 후보와 이준석 당시 국힘 당대표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윤희석 당시 국힘 대변인은 2022년 3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선 전략이) 젠더 갈등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2년 1월, 윤 후보가 자신의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다. 이후 국힘은 여성 배제적 정치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고, 이 당대표는 20대 남성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이 당대표는 "20대 여성들은 결집력이 낮다"며 2030 남성층과 4050 세대의 지지세를 압도해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으로 여성 혐오적 정치를 내세웠다.
실제로 청년 정치인들의 정계 진출을 돕는 스타트업 뉴웨이즈(NEWWAYS) 박혜민 대표는 한국 정치와 국회에 혐오가 내재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국힘의 압승 후, 당시 이 국힘 당대표가 자신의 SNS에 “2030 남성들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하다 나온 결과”라며 민주당의 패배 요인을 분석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뉴웨이즈를 통해 한국 정치에 더 많은 사람이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이번 총선은 기득권 세력이 더 강화돼 청년 여성 후보 비율이 아주 낮은 선거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도 국회에서 성평등, 여성 관련 법안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봤다. 2월29일자 <뉴스타파> ‘성평등 국회’ 기사 내에서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과 여성 관련 법안의 통과율을 조사한 결과, 제21대 국회에 발의된 전체 법안 통과율은 5.13%인 반면 여성 관련 법안의 통과율은 1.9%로, 사회적 약자 법안 통과율인 3.7%보다도 낮았다.
청년 사이 젠더갈등 이용한 혐오정치
정치철학자로 혐오의 정치학에 관해 연구해 온 경희대 김만권 교수(비교문화연구소)는 20대 남녀가 혐오 정치에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로 과열 경쟁화된 한국 사회와 그로 인한 청년들의 고립을 꼽았다. 치열해지는 취업 시장과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도태됐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성평등 정책을 불공정하게 느끼고 오히려 반여성적 정책에 호응하게 된다. 김 교수는 “(청년 남성들에게) 성평등 정책이 무능한 개인에게 사회가 불공평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대학생위원회 이동원 사무국장도 20대 남성으로서 이에 동의했다. “자신들의 미래도 암울한데 본인들이 아닌 여성들을 돕겠다는 정책에 남성들이 표를 던지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 사무국장은 “경쟁이 과열된 사회 속에서 외로움까지 겪고 있다 보니, 타인의 힘든 상황에 공감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계는 이러한 청년들의 심리를 표 모으기에 이용했다. 김 교수는 “한국 정부는 여성 혐오에 대응할 ‘평등’이라는 가치를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도 정치권에서 의도적으로 청년 세대의 분열을 유발했다고 봤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민주당이 ‘페미니즘 정치’를 표방하자 이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반발심이 거세졌다. 이 사무국장은 “국힘이 그 반발심에 편승해 반여성적 정책을 내세워 20대 남성들의 표를 얻었다”고 말했다. 제20대 대선에서 젠더갈등의 정치적 활용 가능성을 연구한 충북대 구본상 교수(정치외교학과)도 이에 동의했다. 구 교수는 청년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난 젠더 갈등을 “청년층을 타깃으로 삼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시도”로 분석했다.
한국 정치권 내 여성 혐오 해결의 열쇠는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 혐오를 제거하기 위해선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2022년 국내 우울증 환자 가운데 20대가 18.6%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로는 30대가 16%를 차지했다. ‘서울연구원’이 2023년 10월 발표한 보고서 ‘서울시민 정신건강 실태와 정책방향’에 따르면, 자살생각군에 속하는 청년층이 뽑은 스트레스 원인 첫 번째는 ‘경제적 어려움’, 두 번째는 ‘실직과 미취업’이었다. 이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 이러한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로부터 단절된 많은 청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젠더 간 화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녹색정의당 장혜영 후보(마포 을)도 “현재 한국 정치권에서는 성차별 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성별 갈라치기로 낙인 찍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들이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 또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 교수는 “사회 구성원끼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 리더들이 공론장에 나와 합의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집단 간 소통을 통해 ‘다르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여성 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회에 여성 진출이 증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성 의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더 확고히 관련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다. 장 의원은 “여성 국회의원은 여성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정치에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2021년 7월 ‘월경용품 가격안정화를 위한 법안’을 발의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중년 남성 의원들에게 생리대 가격 인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제21대 국회에서 활동한 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세계 최하위에 속하는 대한민국 성평등 지수를 개선하려면 여성의 목소리를 편하게 낼 수 있는 국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