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마친 이화인들이 투표 인증을 하기 위해 손목 위에 도장을 찍은 모습. <strong>강연수 사진기자
투표를 마친 이화인들이 투표 인증을 하기 위해 손목 위에 도장을 찍은 모습. 강연수 사진기자

 

김명희(사회∙24)씨는 기숙사에 살면서 학교 근처에서 일상을 보내지만 인천 서구병 투표권을 가진다. 자신의 지역구에 나오는 국회의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서대문구갑 출마자는 하교길에 마주친 적도 있다. 김명희씨는 “대학 근처인 서대문구나 마포구가 주요 생활반경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천 서구에 투표를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김명희씨는 대학 주변을 자신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지만, 서대문갑 지역구 출마자들의 공약에서는 대학생을 제대로 고려한 공약을 찾아보지 못했다. 후보들의 선거 유세를 본 김명희씨는 “후보가 말하는 공약들이 학생들의 직간접적인 생활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기준 전국 대학생 수는 약 239만 명이지만 대학이 위치한 지역구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학생은 많지 않다. 캠퍼스 근처에 살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기숙사에 살면서 전입신고 의무가 없어 대학이 있는 지역과 투표하는 지역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대학생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안정적인 정치적 지지층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대학이 위치해 상대적으로 청년이 많은 지역구에서조차 대학생을 고려하지 않는 공약들에 대학생들은 정치적 효능감도 느끼지 못한다.

 

대학생은 ‘표가 되지 않는 인구'

서울시 내 대학이 밀집한 지역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후보자들의 공약에도 지역 청년과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공약이 거의 없다. 우리대학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가 있는 서대문갑 지역 출마자들의 청년 관련 공약도 마찬가지다. 서대문구갑 지역에 출마한 김동아, 이용호 후보는 우리대학 캠퍼스와 가까운 신촌동에는 청년 주거나 복지 공약보다는 상권 살리기에 집중한 공약을 내걸고 있다. 상권을 살리기 위한 연세로 대중교통지구 해제 여부, 상권 콘텐츠 개발, 지역 지구단위계획 변경 및 종상향을 통한 제한 업종 확대 등 방향성이 뚜렷한 공약을 제시했다. 반면, 청년 공약은 근로장학금 확대, 주거장학금 신설처럼 그 지역의 대학생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것보다는 포괄적인 내용이며, 실현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면서 국회로 입성하겠다는 포부가 대학생을 향하지 않으면서 국회에서도 대학생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보다는 피상적인 정책만 제시되는 상황이다. 조미소(국제사무∙21)씨는 “서대문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없고 대학생 주거비 지원, 원룸 생활자 지원과 같이 정확한 지원금액이나 구체적인 실행방식이 없는 정책만 제시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정책을 하나의 슬로건처럼 단편적으로 구성해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명희씨 또한 “서대문구갑 후보자의 공약들이 대학생들의 생활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역 내에 청년이 많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주요한 인구로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서대문구 공약이슈들이 정리돼 있는 표다.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서대문구 공약이슈들이 정리돼 있는 표다.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후보자 별 공약을 조회해 ‘청년’과 ‘대학생’을 키워드로 한 공약을 살펴본 결과, 해당 지역 대학생의 특수한 어려움과 지역 상황을 반영하는 공약은 거의 없었다. 경희대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다수의 대학을 포함하고 있는 동대문갑 지역구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에게 해당되는 공약은 ‘1년 내내 천원의 아침밥 제공’, ‘월세 지원 강화’, ‘대중교통 청년패스 추진’으로 지역의 특징과 실제로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학생을 연결한 공약이 없었다. 서울대학교가 위치한 관악을은 그나마 지역구 내 청년을 타겟으로 하는 공약을 마련한 편이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인 관악청년청, 관악구 내 청년 문화공간인 신림동쓰리룸 지원 확대가 그 예다.

지역구 거주인구에게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청년이나 대학생은 ‘표가 되는 인구'로 고려되지 않는다. 학업을 위해 대학 근처로 이동한 학생들은 기숙사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거나 싼 월세에 자취방 전입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민희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지역구 선거는 지역 유권자를 중심으로 하기에 대학생의 투표가 응집돼 영향을 주기 힘들다"며 “국회의원들도 대학생을 지지층으로 생각하기 힘들고, 대학생 대상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대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정치인들이 청년을 위한 정책을 공들여 고민하지 않는 원인이다. 유성진 교수(스크랜튼학부)는 “청년들을 대변할 정치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의 투표율이 낮은 것이 구체적인 청년 정책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정치인들이 대학생, 청년세대를 중요한 유권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특성을 고려한 청년정책을 내놓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려되지 않으면 정치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대학 근처에서 생활하지만 투표권은 주민등록지상 거주지에 있는 청년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기 쉽다. 고 교수는 “투표할 수 있는 지역구와 생활반경이 많이 다를 경우 정치적 효능감이 낮고, 투표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김민정씨는 “타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고,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대학생이 주요한 정책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대학생의 정치적 효능감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명희씨는 “투표하는 지역구가 일치하지 않아 정치적 효능감이 전보다 낮아졌다"고 말했다.

생활지역과 투표구가 일치하지 않는 대학생은 주로 정당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김명희씨는 “지역구 선거는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것을 알지만, 지역구의 현황을 잘 모르니 정당 자체만 보고 투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당의 지지도를 반영하는 비례대표석은 제22대 총선에 46석뿐이다. 반면 지역구 의석은 254석이다.

 

청년이 참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입법부는 전국민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기관이다. 그러나 대학밀집구역에서부터 주요 고려대상이 되지 않은 대학생에게는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집행위원장은 “선거 기간부터 지역에 있는 2030 세대를 고려하지 않으면 당선되고 나서는 (2030 세대를) 얼마나 신경쓸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씨는 “정책이 유용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나에게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며 “청년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청년 정치에 발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별로 청년정책 모니터링단이나 청년정책 네트워크를 모집해 청년 정책을 점검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조씨는 “기존 청년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장을 만들어도 논의 내용과 시정 결과는 알려지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정책에 실제로 반영함으로써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다고 느끼게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대문구청에서는 ‘서대문구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7기까지 완료했으나, 공지사항에 사업 성과를 찾아볼 수 없다.

국회 안에 당사자성을 지닌 청년이 부족한 것도 관련 정책 대표성과 구체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청년 관련 공약 중 청년기본법 상 청년에 해당하지 않는 의원이 발의한 정책들은 대부분 거주, 고용 정책에 한정된 반면, 청년 의원들이 발의한 정책들은 한부모 가족 지원, 생활동반자법, 모자보건법 등 다양한 청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고 교수는 “청년 당사자가 없으면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청년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청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정책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청년 문제가 후순위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나를 대변할 정치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당층이 많은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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