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회 교수, 기상데이터 분석해 ‘가을우기’ 입증
편집자주|우리대학은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4곳의 연구 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대학보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711호에서는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허창회 석좌교수를 만나 가을우기 발생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기후변화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여름철 한 달 내내 비가 내리던 장마는 사라졌다. 7월 초 때 이른 폭염이 찾아오며 장마는 끝난 듯했으나 2주 뒤 엄청난 폭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기후 연구에서 새로운 기상현상을 밝혀낸 과학자가 있다. 우리대학 허창회 석좌교수(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는 태풍의 한반도 상륙 시기가 늦어지면서 가을철 강수량이 증가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대학보는 8월20일 허 석좌교수를 만나 ‘가을우기’의 정의와 발생 원인에 대해 알아봤다.
여러 현상 중 가을우기를 연구한 계기는
“가을은 보통 건조한 계절이다. 강수량 자체가 적어 가을에 내리는 비는 봄이나 여름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 가뭄이 들어도 수확을 진행하는 시기라 피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옛날보다 추석 무렵 비가 잦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해 봐야겠다는 일상적 관심이 데이터 분석으로 이어졌다.”
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가을철 강수량은 뚜렷이 증가했다. 특히 9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누적 강수량이 90년대 중반부터 급증했다. 1996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비교했을 때 누적 강수량은 42%포인트 늘어났다. 일일 강수량이 100mm가 넘는 집중호우의 발생도 두 배 이상 잦아졌다. 허 교수는 이를 두고 가을우기라 명명했다.
우리가 아는 장마와는 다른 현상인가
“그렇다. 가을우기는 장마와 구분된다. 장마는 기후학적으로 두 가지 분류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아는 장마는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비가 내리는 기간으로, 5일 동안의 강수량이 35mm가 넘는 시기다. 우리는 이런 장마를 보통 여름장마라고 본다. 가을장마는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오는 비를 뜻한다. 계절은 가을이 아닌데도, 가을장마라고 이름을 붙였다. 추석 무렵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올 것을 알았다면 가을장마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9월 말 접어들어 비가 또 내리니까,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 가을우기가 됐다.”
가을우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연구를 통해 원인은 태풍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가을철 증가한 강수량의 71%가 태풍 때문이었다. 원래는 8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태풍 시즌이었다. 특히 10월에는 태풍이 거의 없었다. 요즘 보니 태풍 시즌이 9월과 10월로 늦춰졌다. 20세기 초반 데이터를 보면, 한 세기 동안 10월 태풍은 한두 개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 년에 한 번꼴로 10월 태풍이 발생한다. 한반도에 태풍이 세력을 떨치는 시기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동한 것이다. 태풍이 상륙하면 강수량도 자연스레 늘어나므로, 그 결과 가을우기가 나타났다.”
가을태풍이 늘어난 이유는
“가장 큰 요인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는 시점이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형성되면, 태풍은 한반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한반도 부근에 고압대가 버티고 있어 태풍을 남쪽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도 힘이 빠질 때는 온다. 해수면의 온도는 천천히 상승하고 하락하는 반면 육지의 온도는 빠르게 상승하고 하락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해양의 온도와 아시아 대륙의 지면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서 힘을 잃고 한반도 지역에서 수축한다. 그 틈에 올라온 태풍이 한반도에 비를 뿌린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아시아 대륙의 고온이 비교적 길게 유지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도 한반도 지역에 오래 머물게 됐다. 태풍의 이동을 방해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늦게 수축하면,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때가 늦춰져 가을태풍이 발생하는 것이다.”
허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가을태풍의 강수량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지구온난화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인 북서태평양과 남중국해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태풍에 많은 양의 수증기가 공급된다. 이에 따라 태풍이 동반하는 강수량도 증가한다. 태풍의 강수량에는 대기 상층부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유입된 고온다습한 공기가 대류 현상에 의해 위로 상승하면, 상층부에서 주변으로 공기를 발산해 강수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가을우기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대부분이 농작물 피해다. 보통 여름철 비는 국가적 피해를 일으킨다. 반대로 가을철 비는 개인, 특히 농업인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다. 가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과일은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가지에 매달려 있더라도 당도가 떨어져 상품성을 잃는다. 벼는 물에 잠겨 수확할 수 없게 된다. 농업인은 그렇게 1년 농사를 망친다.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추석 무렵 내리는 비가 약간의 불편함을 줄 뿐이지만, 농업인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을 만든다.”
가을우기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가
“농작물 피해를 대비하는 재해보험이 있긴 하나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 보험 회사들은 시장에 진출하기를 꺼린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데, 피해를 보면 손실이 막대하니까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일에는 국가가 보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산을 투입해서 피해를 본 농업인에게 보상을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외에는 품종 개량으로 수확 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이 떠오른다.”
허 교수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기상 현상들이 나타나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기후학자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데, 이제는 기후학자들이 사용하는 분석 모델도 기후변화를 파악하기 어려워한다. 허 교수는 기후변화는 사회 전반에 예측 불가능한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자연과학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므로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태평양 고기압: 북태평양에서 발원한 해양성 아열대 기단으로, 고온다습한 특성을 가진다. 한반도의 여름철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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