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우리대학은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4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이대학보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704호에서는 행정학과 이승혁 교수를 만나 정책 형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그와 관련된 요소들에 대해 연구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환경 보호와 경제 개발, 무엇이 우선일까. 정답은 없다. 신념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라질 뿐이다. 정책 행위자들은 자신의 정책 신념이 반영된 정책을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한다. 정책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정책 신념을 가진 이와 경쟁하기도 한다. 우리대학 이승혁 교수(행정학과)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행위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하는 원인과 이를 완화하는 방안을 다룬 연구를 미국 켄터키대학 이승윤 교수와 함께 발표했다. 이대학보는 3월28일 이승혁 교수를 만나 미국에서 정책이 만들어질 때, 무엇이 경쟁을 촉발하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연구 내용을 들어봤다.
상대보다 많은 이를 포섭하기 위한 경쟁
정책은 정책 네트워크에 의해 형성된다. 정책 네트워크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 권한을 보유한 사람이나 집단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은 직접적 권한을 가지고, 비정부 기구나 언론 기관은 간접적 권한을 가진다. 찬반 논쟁이 치열한 정책 이슈는 반대되는 정책 신념을 가진 확고한 정책 집단인 ‘적대적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 교수는 적대적 정책 네트워크에 집중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는 적대적 정책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뉴욕주의 ‘프래킹 정책’을 주요 사례로 삼았다. 프래킹이란 지하 암반에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고압으로 주입해 균열을 일으키고 매장 상태의 천연자원을 뽑아내는 공법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이점이 있지만, 지하수를 오염시켜 생태계 전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정부 기관, 환경단체, 언론 기관, 석유·가스 협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친프래킹 네트워크와 반프래킹 네트워크로 나뉘어 적대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해당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먼저 자원의 종류와 정책 행위자의 역할을 관련지어 분석했다. 자원은 유형 자원과 무형 자원으로 나뉜다. 보조금과 기부금 등 재정 자원과 토지와 건물 같은 물적 자원이 유형 자원에 포함된다. 무형 자원은 정보, 평판, 지식처럼 비물질적인 것들로, 유형 자원에 비해 희소성이 적고 더 널리 전파되는 특성을 가진다. 무형 자원 제공자들은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형성되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자신의 정책 집단에 끌어들인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무형 자원의 용량은 한정됐기 때문에 제공자들은 그들의 관심과 지원을 자신의 집단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적대적 정책 네트워크에서 무형 자원 제공자들 사이 경쟁은 심화된다.
같은 신념이라도, 경쟁은 있다
정책 신념에 따라서는 어떨까. 두 행위자가 상반된 정책 신념을 가졌을 때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할 가능성은 높았다. 상대와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정책 신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집단 내에서 갈등이 강화되는 특정 상황도 존재했다. 유형 자원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이 동일 집단 내에서 제한된 자금 흐름을 마주했을 때 이들 사이에서 경쟁이 발생했다. 자금은 한정됐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비정부 기구 같은 집단은 수익을 내야 된다는 목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정책 이슈에서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점을 보여줘야 정당성을 입증하는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는 자신이 더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경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쟁을 완화하는 방법, 중개인
이 교수는 적대적 정책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개인은 동일한 집단 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기관의 소통을 중개한다. 중개인의 조정으로 집단 내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정책 비용 혹은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오바마 정부가 수립한 포괄적인 정책 계획 ‘오프닝 도어즈(Opening doors)’ 중 노숙자 정책을 예시로 들었다. 오바마 정부는 노숙자가 노숙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주 정부, 비영리 단체들이 협력하도록 유도했다. 연방기관을 통해 다양한 지원금을 제공하고 여러 프로그램에 이를 배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산발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이 중개인 역할을 맡은 정부의 주도로 하나의 연합체가 된 사례”라며 “중개인이 이런 역할을 해야 경쟁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후속 연구로 미국이나 에너지 분야를 넘어 한국이나 다른 정책 분야에도 해당 이론을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미국과 다르게 법적으로 로비가 금지돼 있어 정책 네트워크가 다르게 형성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연구는 정책 네트워크의 단면을 살핀 것이지만, 실제 정책 네트워크는 단절되지 않고 움직이는 유기체의 특성을 가진다. 정책 이슈의 제기, 공론화, 의제 설정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위자들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같은 이슈에 대해 협력 관계였던 이들도 나중에는 경쟁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네트워크가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