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구를 하세요?”라는 질문에 ‘색채과학’이라고 답하는 것은 여전히 저에게 낯선 감이 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던 시절, 색채를 정량화하는 발표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세미나는 제 학문적 방향을 바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나, 안타깝게도 세미나의 제목이나 강연자의 이름은 현재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취업을 고민하던 저에게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연구를 지속할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물리학이 자연현상을 규명하는 학문인 만큼, 색채, 즉 빛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빛은 가시적이며, 파동의 성질로 설명할 수 있어 관련 과목의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양자역학이나 전자기학에 비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색채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제게 학문적 난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술 및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러한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색채학을 대표하는 두 학자는 아이작 뉴튼(Isaac Newton)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입니다. 물리학의 거장 뉴튼은 백색광이 여러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였고, 철학자이자 작가인 괴테는 색채 이론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여 예술적 관점에서 색채를 학문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사실 괴테는 자신을 색채학자라고 칭하며, 뉴튼의 색채에 대한 이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대에 두 학자가 존재하여 각각 색채학에 큰 기여를 한 것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큰 학문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색채학은 많은 물리학자와 화학자에 의해 발전하였고, 현대 물리학에 이르러서도 색채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색채의 원인(cause)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한 반면, 괴테는 고전 철학자들의 연구를 이어받아 결과(result)라는 관점에서 색채학을 탐구했습니다. 이처럼 상이한 두 관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으며, ‘색채 전공’이라는 말이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융합’의 정의는 성질이 다른 두 가지를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색채학은 융합적 학문으로 매우 적합한 분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색채가 융합적 학문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존재합니다. 색채의 원인과 결과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며, 단순히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색채학이 여러 관점에서 다뤄질 만큼 방대한 학문임을 시사합니다. 일반인들에게 색채학은 종종 미술의 영역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으며, 어떤 분야에서는 더욱 접근하기 쉬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색채학은 ‘융합’의 학문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 가능한 방대한 학문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연구는 단순한 이론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색채론을 단순히 뉴튼이나 괴테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본질적 이해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해서 이를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던 저도 미술 전공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연결점을 찾아가며 색채학이라는 분야를 더욱 확고히 다져가고 있습니다. 새롭고 낯선 분야가 현재 제가 하고 있는 분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뉴튼과 괴테가 그 당시에 협력하여 색채학을 연구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풍부하고 확고한 색채론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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