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月はどっちに出 ている)”
택시 회사를 중심으로 재일 한국인과 이방인들의 밑바닥 인생을 블랙 코미디로 다룬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일본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에는 손님을 태우고 나갔다가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하는 택시 기사가 나온다. 그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으면 공중전화에서 회사로 전화를 걸어 동료들에게 돌아갈 길을 묻는다. 전화를 받은 동료는 달이 어디에 떠 있는지 묻고는 이렇게 말해준다. “달을 향해서 달리세요.”
머리 위 어딘가에 달이 있다. 길을 잃었어도, 방향을 놓쳤어도 여전히 어딘가에 반드시 달이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면, 어떤 길을 택 하든 상관없지(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it no matter what road you take it)”
미국 영화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은 마이크와 애니 두 사람이 천국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각각 환생하는 바람에 30년을 기다린 후 끝내 재회하며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판타지 로맨스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 채 환생해서 반드시 30년 안에 서로를 알아 보아야만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설정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채 30년간 엇갈리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혼잡한 횡단 보도 앞에서 기적처럼 서로를 알아본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는 그런지나 얼터너티브의 계보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뮤지션 닐 영 (Neil Young)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마이크를 발견하고 태워주는 트럭 운전사 역할이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청년에게 트럭 운전사는 행선지를 묻지만 청년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청년에게 트럭 운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it no matter what road you take it.”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했다면 어디로 향하건, 무엇을 하건, 어떻게 되건 상관없지 않을까. 미래를 현재의 보상으로 환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불안으로 멈추어 서지 않는다면, 어떤 길이건 선택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희미하더라도 윤곽이 보일지 모른다.
“움직여! 일어서!(Move it, Reese. On your feet, soldier)”
전설적인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첫 장을 열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는 인공지능 전략 방어 네트워크 스카이넷이 스스로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가 멸망한 20년 뒤, 생존한 인간들이 존 코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기계에 대항하는 반군을 조직해 싸운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인간 반군과 대치 중인 기계들은 미래에 존 코너의 엄마가 될 사라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살인 병기 터미네이터를 과거의 LA로 보낸다. 반군들 역시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내 터미네이터를 막고자 한다. 영화는 사라 코너를 죽이려는 테미네이터와 이를 피해 달아나는 사라 코너, 카일 리스의 추격전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마지막 신은 자동화 공장에서 시작된다. 혈투 끝에 겨우 처치했다고 생각했던 터미네이터가 다시 나타나자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부상 당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무인 자동화 공장 안으로 숨어든다. 이 신에 이후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전사 사라 코너의 연대기로 확장될 것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담겨 있다. 카일은 이미 부상당했고 두 사람은 이미 지쳐 있다.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는 터미네이터는 사라와 카일이 도망치며 간신히 걸어 잠근 철문을 부수고 있는 중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지쳐버린 카일은 결국 포기하며 쓰러지고 만다. 이 순간, 사라 코너가 그를 일으키며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Move it, Reese. On your feet, soldier”
길을 잃었어도 가야할 곳을 몰라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는 분명히 달이 떠 있고, 달을 향해 나아간 길에는 끝이 있 으며, 또 가까운 곳에 일어서라고 소리쳐 줄 누군가가 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잃은 것은 목적이나 방향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채로, 그저 발아래 땅을 밀어내며 나아가는 묵묵한 반복의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향도 결과도 성과도 실패도 생각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오직 순간에 집중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