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용혜인∙손솔 등 10명의 의원이 제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현행 법체계가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예전부터 이런 관계를 꿈꿔왔다. 친구들에게 네이마르처럼 돈 많이 벌어서 용돈이나 달라는 농담도 (반쯤 진담으로) 수백 번은 했다. 생활동반자관계에서는 서로가 상호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일방적 요구는 하지 않는다. 잘 부탁한다느니, 실버타운 들어갈 때까지 그러고 살자느니 하는 얘기는 우리만의 ‘진대(진지한 대화)’ 단골 주제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결혼하고 싶은 사람 얼마나 되나.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가족을 꾸리기는 싫다. 가부장 질서에 부역하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살기도 싫다. 일과가 끝나고 어두운 집에 돌아오면 외로울 때가 있으니 하루를 나눌 사람이 있는 것도 좋겠다. 영화 같은 사랑이 나타나길 바랐던 적도 있지만, 이제 내겐 단단한 유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다. 서로 의지하고, 믿고, 돕고, 함께 즐거워하기도 하고, 가끔은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결국 더 큰 애정으로 돌아오는 관계. 반드시 이성 간의 결합일 필요도 없고, 성애적 감정이 바탕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런 연결도 당연히,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랑스에는 1999년 제정된 ‘팍스 계약’이 있다. 다른 이름은 ‘시민연대계약’으로, 자유로운 의사 합의에 따라 성인 2명이 체결할 수 있는 유연한 결합 계약이다. 팍스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은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며, 당사자 간의 부양 의무 및 상호 간 협조 의무를 갖는다. 또 한쪽만 소득이 있는 경우도 두 쪽 다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다. 2000년에 제정된 독일의 ‘생활파트너법’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의견이 합치된 당사자들은 상호 부양과 협조의 의무, 그리고 공동 생활관계 형성의 의무를 갖는다. 파트너는 상대의 재산에 대해 상속권이 있고,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 적용에 있어서도 혼인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혈연 및 결혼, 혹은 사실혼을 제외한 생활공동체에 가족으로서의 권리의무관계는 전무하다. 법에서 정하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의료보험, 사회보장법, 국민연금의 수급권자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주거, 의료, 금융, 각종 경조사 등 법적 지원과 제도에서도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사전적 개념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원’이다. 그러나 혈연이나 법으로 묶이는 것만이 가족이라는 정의는 절대적인가? 2020년 여성가족부 사회조사에 따르면 약 70%의 국민이 혼인이나 혈연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법을 만든 것은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필연이 아니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자의적으로 세운 기준에 되려 배제당하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건 모순이다. 1인 가구부터 2인 생활동반자관계, 다양한 집단과 작은 사회들까지 모든 공동체는 구성원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언제나,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다. 각자에게 가족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가족의 정의와 의미 역시 수없이 다양하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건강한 가족 해체가 우려된다’, ‘결혼 제도의 의미를 없앤다’, ‘정해 놓은 규칙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같은 주장을 한다. 그러나 ‘건강한’ 가족이 부모와 자녀 세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을 말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가부장적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는 역기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들이야말로 해체되어야 한다. ‘결혼 제도의 의미’가 협의 아래 양측이 공동체를 이뤄 서로를 돌보고 부양함을 뜻하는 것이라면, 생활동반자관계는 돌봄의 관계를 성별과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본질의 의미를 더 순수하게 구현한다. ‘정해 놓은 규칙과 질서’를 고수하겠다는 건 그 규칙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지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특권이고 권력이다.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건 이성애중심, 남성 중심의 사회에 힘을 실어 주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빠짐없이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특정한 가족 형태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생활동반자법은 모든 개인에게 가족 생활을 영위할 권리와, 외롭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첫 걸음이다. 동등한 제도와 법적 보호를 통해 모든 시민의 존엄성이 존중받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