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우리대학 행정학과·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법학 석사(2007)와 법학 박사(2011)를, University of Connecticut School of Law에서 LL.M.(2020)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범부처 국책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영화 칼럼니스트,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세상을 바꾼 영화 속 인권 이야기’, ‘오페라 영화 속 편지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2025년 8월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세계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가 최초로 출연하고 강효 교수의 세종솔로이스츠가 함께하는 클래식 음악회 ‘Hic et Nunc’(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가 열렸다. 

신작 소설인 ‘키메라의 땅’을 토대로 대본을 집필, 직접 내레이터로 무대에 선 그가 공연에 앞서 한 인터뷰의 내용이 인상 깊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은 반복된 생각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를 하게 되는데,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 ‘새로운 것’을 꺼내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며 자신은 표절 기계인 인공지능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워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는 순간, 독서가 우리를 익숙한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이끄는 힘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생각은 곧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소설 ‘화씨 451’로 이어지며, 책의 존재 이유와 그 불가피한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씨 451’을 통해 책이 금지된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독서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소설 속 중심 인물인 몬태그는 책을 소지한 집을 불태우는 방화수이다. 이 체제에서는 독서가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데 위험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책 읽는 것이 금지되고, 방화수를 동원해 모든 책들을 소각하며 집집마다 벽면에 부착된 텔레비전을 통해 대중문화와 소비를 촉진하는 오락 방송을 24시간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한다. 

체제의 대표자인 방화서장 비티는 증가하는 인구와 급변하는 세상, 그리고 흥미와 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주의로 인해 인간들 스스로 책의 소멸을 자초했다고 강조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는다. 이는 작품의 깊이와 복잡성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책의 서사를 온전히 느끼는 대신 짧은 시간 동안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인 유튜브 요약이 제시하는 압축된 하이라이트를 선택하는 우리가 직면한 ‘여기 그리고 지금’의 현대 사회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몬태그는 따뜻하고 생각이 깊은 17세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면서 체제에 의문을 품고, “아저씨는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그녀를 통해 조금씩 자신의 삶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리세가 실종되고, 자신의 집에서 책이 발각된 노인이 책과 함께 당당하게 불타 죽는 모습을 지켜본 몬태그는 충격을 받는다. 점점 방화수로서 책을 불태우는 자신의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확고히 느끼던 몬태그는, “책은 삶의 표면에 난 숨구멍(pores)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균일화된 사회를 유지하려는 체제에서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은퇴한 영문과 교수 파버의 말을 듣는다. 그는 그 말에서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다양한 의견과 견해에 대해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체제와 충돌하게 된 몬태그는 반체제 인물로 추적당하며 도시에서 도망쳐 ‘북 피플(book people)’ 공동체에 합류한다. 이들은 언젠가는 자유로운 사회가 도래할 때 지식을 전해줄 것을 꿈꾸면서 책을 암기해 구전으로 보존하는 사람들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사유하고 이를 기억하는 행위이다. 몬태그는 그 사람들, 그들과의 친교, 그들의 정의로운 명분, 그들의 진한 커피, 그들의 음식, 숲의 내음, 그리고 불의 온기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전쟁이 발발해 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질 때 체제 순응자들은 눈앞에 다가온 폭탄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는 화면 속 ‘가족’들과 함께 사망한다. 북 피플과 몬태그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이 가진 지식과 사유가 앞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확신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종이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인 ‘화씨 451’은 책을 읽지 않으므로 책을 불태울 필요도 없는 ‘여기 그리고 지금’의 현실 속에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며, 보는 것이 생각하는 것을 대체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책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의 부조화된 상황에 대한 유희적 상상을 향유하므로, 새로운 질문을 제시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책의 ‘숨구멍’을 발견하는 자, 즉 책의 행간을 읽으며 삶을 에워싼 수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내려 놓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읽는 자’들을 통해 책의 세계는 미래에도 계속 이어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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