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고립과 은둔으로 모는 사회, 여러 주체가 청년과 연대해야
편집자주|고립·은둔 청년 수가 50만을 넘었다. 이들은 정신적 고립과 사회적 단절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기회와 연습의 장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은 마음껏 넘어질 기회조차 없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본지는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고립·은둔 청년을 바라보고, 이들을 공동체와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 '생명존중 ③' 기사에서 계속
정부 및 지자체가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재진입을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실효성은 부족하다. 특히 정책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통합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것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를 위한 지원 정책이 다각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을 살펴보면, 현재로서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전담으로 운영 중인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는 ‘청년미래센터’를 △인천광역시 △울산광역시 △충북 청주시 △전북 전주시에 설치해 지역사회가 해당 지역의 고립·은둔 청년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청년미래센터는 고립·은둔 자가 진단 및 일상 회복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작년 서울시는 고립·은둔 청년 정책 컨트롤타워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를 개관했다. 고립·은둔 청년을 비롯한 서울시 거주 청년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돕는 ‘마음건강 지원사업’도 운영 중이다.
여러 정책이 존재하지만,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국회의원은 청년의 사회적 고립은 결코 한 기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정부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정책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보건복지부에서 2023년 발간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청년들은 구체적인 지원 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를 아우르는 종합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동일 보고서의 청년 당사자 ㄴ씨도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지만, 어느 곳에서 할 수 있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서는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김승길 대표는 “고립·은둔 청년을 찾아냈을 때, 이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해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매개 역할은 정부 공무원들이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지역에서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 의원도 “청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질적인 연결망을 만들어 주는 일은 지역의 몫”이라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구인구직을 주로 지원하는 정책의 흐름에도 회의를 표했다. 그는 “취업이라는 목적으로 (청년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방향이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회로 재진입한 고립·은둔 청년들은 여전히 심리적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김 대표는 취업 준비 프로그램보다는 “낮은 문턱으로, 바깥으로 나와 여러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깔려 있어야 청년들이 고립·은둔에서 벗어날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본보기가 되는 사례로 경기도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을 들었다. 해당 사업의 프로그램 중 취업과 관련된 내용은 비중이 크지 않다면서, 오히려 심리극과 공감예술놀이 같은 문화 체험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년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취업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20대 청년들은 고립·은둔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 정책으로 ‘정신건강 지원’을 꼽는다. 그러나 현존하는 정신건강 지원 정책들은 그 효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본지의 ‘청년 고립·은둔 경험과 사회적 원인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63.5%가 고립·은둔 청년에게 심리 상담, 정신건강 치료, 치유 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니트오피스 참여자 ㄷ씨는 거의 매년 참여한 마음건강 지원사업의 상담 프로그램이 단기적으로 진행되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상담자가 본인과 맞지 않는 것을 알아도 “새로운 상담자에게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된다”라고 덧붙였다.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정책 형성에 청년들의 주체적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 개선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지역 기반 거버넌스에서 최소 4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주요 정책 행위자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청년을 포함한 다양한 세대가 동등한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을 단순히 정책의 수혜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구성원으로 등장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고립·은둔은 특수한 상황이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호서대 김혜원 교수(청소년문화·상담학과)는 “고립·은둔이 특별한 취약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전했다. 누구나 고립·은둔에 처할 수 있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으면 장기화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배타적이고 평가적인 시선으로 청년들을 바라보지 않고, 기회와 연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본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