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고립과 은둔으로 모는 사회, 여러 주체가 청년과 연대해야
편집자주ㅣ고립·은둔 청년 수가 50만을 넘었다. 이들은 정신적 고립과 사회적 단절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기회와 연습의 장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은 마음껏 넘어질 기회조차 없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본지는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고립·은둔 청년을 바라보고, 이들을 공동체와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인생이 이렇게 빨리 시시하게 망할 수도 있구나.
(문어빵·활동명)
두 번의 대학 졸업 유예 후 문어빵(28)씨는 교원 임용시험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시험을 치는 일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해 큰 고민 없이 공부를 시작했지만, 수험 생활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성취해 내야 할 듯한 부담과 남들보다 늦은 것 같다는 초조함이 일상을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임용시험을 그만둬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것. 포기할 용기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온 문어빵씨는 부모님께 임용시험을 그만두고 싶다고 겨우 털어놨다.
처음엔 ‘한 달만 쉬면 의욕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무업 기간은 점점 길어져 일 년이 됐다. 어느 날 문어빵씨는 당시 유행하던 챌린지 앱에서 ‘니트컴퍼니’ 홍보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가 처음 느낀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이 사람들, 나랑 똑같은 백수인데 되게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그게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니트컴퍼니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어요.”
연대하는 청년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다
니트생활자는 청년들의 안전지대가 되고자 한다. 공백 기간을 지나온 청년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니트생활자에 들어와,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부터 배운다. 다른 니트컴퍼니 참여자 ㄷ씨는 “장녀다 보니 누군가에게 의지한다거나, 힘들 때 전화를 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SOS를 치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며 과거의 경험을 털어놨다. ㄷ씨는 신원 보호를 위해 익명을 요청했다.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고 청년의 조력자가 되는 것이 니트생활자의 목표다. 대표 프로그램인 ‘니트컴퍼니’는 일종의 ‘회사 놀이’다. 무업 청년들이 직접 가상 회사를 운영하는 사원이 돼 스스로 정한 업무를 진행한다. 업무는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기’, ‘집 안에서 피아노 건반 치기’, ‘창문 열기’ 등이다.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됐던 이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면접 시스템도 우리의 상식과 정반대다. 운영진이 면접자가 되고, 참여자가 면접관이 돼 질문하는 ‘거꾸로 면접’을 진행한다. 거꾸로 면접은 무업 청년들이 그간 면접자로서 채용 과정에서 겪었던 힘듦과 트라우마를 재미로나마 해소하자는 의도로 시작됐다. 무업 청년들이 느낀 불안과 압박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신뢰와 이해를 견인하려는 뜻도 담고 있다.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은 새롭게 도전할 용기로 이어졌다. 문어빵씨는 니트컴퍼니 시즌6부터 1년여간 세 번을 참여했다. 당시 담당자는 전시 기획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던 그에게 “해보고 싶어? 그럼 해보자”라며 도전을 권했다. 해야 하는 일에 치여 좋아하는 일을 까먹고 있었던 문어빵씨는 오프라인에서 타인과 ‘별것 아닌 일들’을 하며 재미를 느꼈다. 마침, 서울시 뉴딜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니트생활자에서 인턴을 채용한다는 소식이 문어빵씨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여기에선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몰아세우지 않을 것 같았다”며, “그런 안전지대라면 같이 일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과거의 자신이 도움을 받았듯, 니트생활자 운영진으로 일하며 또 다른 무업 청년들을 돕고 있다.
호서대 김혜원 교수(청소년문화·상담학과)는 느슨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동질감과 위로를 느낀다. 김 교수는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은 곧 나를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실제로 마주해 이야기 나누며 회복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운영진의 모니터링 하에서 안전한 사람들과 안전한 방법으로 (사회 활동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ㄷ씨는 “나한테는 니트생활자가 (취업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곳이었고, 조건 없이 내 편이 돼 주는 단체”라고 말했다.
8월26일, 세 명의 기자는 니트오피스 서대문점에서 진행하는 아나바다 프로그램에 ‘이대짱’이라는 닉네임으로 함께 참여했다. 아나바다 프로그램은 사원들이 직접 하고싶다고 의견을 내면서 시작됐다. 문어빵씨는 “기왕 왔으니 재밌었으면 한다”며, 사원들이 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ㄷ씨, 지유(활동명)씨를 비롯한 10명의 공백 청년이 프로그램에 함께했다. 아나바다에서는 자신이 나눈 물건만큼 남들의 것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기자에게 애장품을 선뜻 나눠주기도 했다. “원피스 아까 가지고 싶다고 않으셨어요? 그냥 드릴게요.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기자가 아닌 ‘청년’으로 참여한 현장에는 주고받는 기쁨이 가득했다.
고립·은둔하고 싶은 이들은 아무도 없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고용노동부는 니트(NEET)를 ‘취업 상태에 있지 않고, 공식 교육 또는 취업을 위한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는 청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개인의 의지보다 정책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회가 뭘 준 적도 없다”는 것이다. ㄷ씨 역시 취업 상태에 있지 않은 청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짚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백수든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며 “(안 그래도 힘든 이들에게) 나서서 행동을 취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청년 정책은 인턴십, 자격증 교육 등 취업 중심 지원에 치중돼 있다. 니트생활자 운영진이자 니트 상태를 경험했던 문어빵씨도 정서적 지원 없는 정책은 악순환을 지속시킬 뿐이라고 봤다. “진짜로 내가 취업하고 싶을 때 (취업 캠프를) 지원해 줘야 (국가와 청년) 서로에게 좋은 정책이지, 기본적인 삶이 유지가 안 되는 상태에서 억지로 들어갔는데 그 와중에 취업한다면 양질의 일자리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정말 정말 적어요. 그렇게 취직하더라도 이미 내 마음이 지옥인데 어떻게 회사에서 오래 버티겠어요? 그것도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악순환인 거죠.”
니트생활자는 무업 상태의 청년들이 프로그램에 신청할 때 느끼는 장벽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무료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서적 돌봄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금, 더 이상 니트생활자와 같은 비영리 사단법인에만 심리적 지원을 의존할 수 없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