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타와라초의 차밭. 제공=하영은씨
우지타와라초의 차밭. 제공=하영은씨

녹차는 친숙한 차다. 하지만 300년 전까지만해도 우리가 아는 녹차는 보급되지 않았다. 현대식 녹차가 만들어진 것은 우지타와라초 (宇治田原町)의 나가타니 소엔 덕이다. 기존에 성행했던 갈색 차에서, 엷은 녹색을 띠는 차 제조법을 15년간 개발해 퍼뜨렸다. 우지타와라초에서 에도(현 도쿄)까지, 자기가 만 든 맛 좋은 차를 마시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걸어갔다.

그런 녹차의 발상지가 2024년 소멸 가능성 지역에 들었다. 일본 인구전략회의는 20~39 세 여성 인구가 줄어들어 30년간 총인구가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지자체를 소멸 가능성이 있다고 정의했다. 교토부에서 선정된 9개 지자체 중, 우지타와라초만이  지난해 들어 새롭게 지정됐다. 우지타와라초는 지난해 1월 8829명에서 12월 8437명으로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인구 약 4%가 줄었다.

태어나 자라고 터를 잡은 곳이 소멸할 거라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심정일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이든 일본이든 ‘소멸 위기’라 고 불리는 곳은 고령화가 많이 진행됐고,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지역에 애착이 있거나 떠나기에 늦어버린 경우가 많을 테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로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본가를 ‘소멸고위험지역’인 경남 산청군으로 옮겼다. 딸인 나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며 어쩌면 내가 본가로 돌아가고 싶을 때쯤 여기 무엇이 남아있을까를 걱정하는 신세다. 사실 태어난 곳, 학창 시절, 대학과 현재 본가가 모두 달라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도 망설이고 있다.

전혀 가보지 않은 비슷한 풍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발걸음을 옮겼다. 교토시에서 우지타와라초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교토역에서 나라선 전철을 타고 우지역(우지시)까지 가서, 한 시간에 한 대꼴 로 오는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가면 우지타 와라초다. 철도의 나라 일본이지만 우지타와라초에는 기차가 없다. 대중교통은 버스밖에 없어 칠팔십 대 노인들도 운전해 다닌다. 철 길 대신 늘어선 차밭을 보며, 우지타와라초의 첫인상은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본가에 잘 가지 않아, 초면인 곳에서 익숙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지타와라초에 방문한 이틀 동안, 지금 이 상태로라면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모두 우지 타와라초에서 태어났고,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서점을 운영하는 츠카타니 카즈요(65)씨는 주변에 우지타와라초에 살기를 권유하는 게 자신의 최선이라고 했다. 밑천 없는 외국인 대학생인 내게도 세금 부담이 적고 쌀이 싸고 차가 있으면 주변 지역과 접근성이 좋다는 둥 살기 좋은 이유를 줄줄이 말해줬다. 화과자 가게 의 오오츠지케이코(56)씨는, 어떤 것이 우지타와라초의 매력이냐는 질문에 “선물(おみや げ)”이라며 직접 만든 초콜릿을 쥐여줬다. 그러면서, ‘즐거운 마을’을 만들면 자연스레 살고 싶은 마을이 될 거라고 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지방자치의 힘도 중요 하다. 작년까지 8년 동안 우지타와라초의 의 원(읍의원급)을 지냈던 밤바 하지메(62)씨는 의원 시절 지역인재 육성에 힘썼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채택해 실현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5세 아이가 수공예를 하고 싶다고 하면 마을 시장을 열어줬다. 밤바씨는 젊은이들의 가능성을 구체화해 주는 게 지역 어른으로서 책임이라고 말했다.

지역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항상 받아들여 지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게 빈집 문제다. 우지타와라초에는 약 160채의 빈집이 있다. 부모가 물려준 집이라 팔고 싶지 않거나 외부인에게 빌려주기 꺼려진다는 이유로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 그 탓에, 우지타와라 초에서 운영하는 빈집 은행에는 35가구 정도가 빈집 정보를 기다리고 있지만 올라온 매물은 한 건 남짓이다. 지난해 11월 읍의원에 당선된 미츠시마 요시마사(70)씨는 그전부터 빈집을 서로의 수요에 맞게 연결하는 일을 추진해 왔다. 미츠시마씨는 빈집을 내놓고 싶지 않은 이들의 마음도 소중히 여기고 대화해가는 것도 지역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난데없이 찾아온 한국인 학생에게 서슴없이 마을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이 놀라웠다. 하나같이 우지타와라초에는 환대(おもてな し)하는 문화가 예부터 남아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든 이주민이든, 손님이 오면 최선을 다해주고 싶다는 거다. 이틀 그 짧은 시간, 고향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마음만큼은 확실히 느꼈다.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녹차 제조법을 널리 알렸던 나가타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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