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편집부국장으로서는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목적 자체가 아닌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삶의 과정에 의미가 있다는 말을 들어왔던 기억이 납니다. 남는 건 결과뿐이라고 코웃음 치곤 했지만, 결국 삶을 견인하는 과정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지난 8일은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1년 중 여성을 위한 유일한 날에도 역시나, 정치권에서 여성의 삶은 지워졌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의 날 메시지로 구조적 성차별 해결은 언급하지 않은 채 ‘저출생 극복’을 꺼내놨습니다. 이제는 신기루 같은 저출생 극복에 집착하면서도, 막상 그 열쇠를 가진 이들의 삶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입니다.
사회가 외면한 약자의 삶은 구조에 가려지기 마련입니다. 이대학보는 구조 속 여성의 삶을 비추기 위해 여성학 대담 코너, ‘여성학의 연립방정식’을 시작합니다. 여성학의 간학문적 성격을 토대로 두 전문가의 대담을 담는 본 코너는 △분단과 여성 △여성혐오 문학 △법여성학 △기후위기와 여성 네 가지 주제로 이번 학기 동안 연재됩니다. 당장의 목적에 가려진 여성의 취약한 삶을 조명하고, 보다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고자 합니다. 여성학의 연립방정식은 이대학보 유튜브 영상으로도 발행됩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대담이 글과 화면을 넘어,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의 첫 발짝인 ‘분단과 여성’에서는 72년 분단으로 억압된 여성의 삶을 다룹니다. 분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빠른 성장만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이는 군사주의 정부를 자리 잡게 했고, 내부의 혐오 대상과 적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근원이 되어 왔습니다. 분단은 개인의 삶에서도 쉼과 공백을 삭제했습니다. 내부로 향한 경쟁의 화살은 개인에게도 크나큰 부담으로 자리합니다. 분단이 야기한 경쟁적 발전주의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고, 이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당장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는 발전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일, 최저임금 적용조차 되지 않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 사업을 법무부에서 추진하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법무부는 외국 인력이 ‘값싼 노동력’임을 강조하며, 외국인을 가사노동 인력으로 적극 활용할 것을 설명했습니다. 여성화된 대표적 노동인 돌봄을, 가장 취약한 계층인 외국인 여성에게 외주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효율성을 위해 톱니바퀴처럼 동원되는 이들은 또다시 약자가 됩니다.
그럼에도 굴레를 끊고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대학보는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유성희 센터장을 만나 지속 가능한 돌봄에 대해 물었습니다. 유 센터장은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할 때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의 노동 환경도 존중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고강도 노동인 돌봄 노동은 지금껏 여성의 몫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돼 왔습니다. 제3세계 여성에게로의 계속된 돌봄 노동 전가는 이러한 취약성을 강화합니다. 지속가능한 돌봄 환경을 위해서는 돌봄이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닌, 공공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돌봄 받고, 돌보며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결국 돌봄의 여성화와 계속된 약자로의 전가라는 굴레를 깨는 것이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된 여성 혐오 정치와 비가시화에도, 여성들은 항상 선두에 서서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여성 혐오를 등에 업고 집권한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광장에서도, 그 선봉에는 2030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대학보도 그 걸음에 함께하겠습니다. 더 다양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신문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 오늘도 삶의 과정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