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찬란
출처=찬란

지난 1월 초, 배우 데미 무어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영화 ‘서브스턴스’(2024)로 제82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데뷔 후 45년 만의 첫 수상이었다. 데미 무어는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순간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는 이것을 제 온전함의 표시이자 저를 이끄는 사랑,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하는 선물로 삼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한겨레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인용)

영화 ‘서브스턴스’는 수상소감에서도 언급된 ‘스스로를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반복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단순한 자책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노하고 혐오하며, 끝내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한때 잘나가던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50세 생일날, 축하 인사와 함께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늙고 섹시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대신 ‘어리고 밝고 섹시한 여성’을 원한다고 말하고, 거리의 대형 전광판에서도 그녀의 광고가 사라진다. 직시하고 보니, 세상 모두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 듯하다. 깊은 충격과 좌절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더 젊고 아름다운, 즉 더 나은 나’를 낳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복용하기에 이른다. 형광 노란색 액체를 몸에 주입하자, ‘더 나은 나’인 수(마거릿 퀄리)가 그녀의 등을 가르고 태어난다.

‘서브스턴스’의 규칙은 단순하다. ‘두 사람은 하나’이며, 7일 간격으로 ‘원래의 나’와 ‘더 나은 나’를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에어로빅 쇼의 주인공이 된 수는 프로듀서 하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하루 종일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고 폭식을 일삼으며 교체일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영화 ‘서브스턴스’를 통해 여성이 어떻게 보이고 판단되는지를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50대 이후 여성의 존재가 미디어에서 극단적으로 지워지면서 여성들이 루키즘(Lookism)과 에이지즘(ageism)에 더욱 사로잡히게 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의 에어로빅 쇼 크루들은 그녀와 비슷한 연령대였지만, 수의 쇼로 교체되자 젊은 여성들로 대체된다. 이는 엘리자베스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기성세대 여성들이 설 자리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엘리자베스에게 전달된 꽃다발 카드에는 ‘모두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했어요(were)’라고 적힌 반면, 수의 카드에는 ‘모두가 수를 사랑할 거예요(are going to)’라고 적혀 있다. 영화는 이 대조를 통해 여성을 젊고 유망한 존재와 사회에서 퇴출당할 대상, 두 가지 범주로 나누는 시선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데이트를 준비하는 엘리자베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수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며 절망하고, 거칠게 메이크업을 지운다. 이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절정에서는 수가 엘리자베스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는 엘리자베스가 죽을 때까지 때린다.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을까? 이는 어쩌면 타인이 아닌 자신이기에 더욱 거칠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여성의 공격성이 온전히 표현된 것에서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기존 미디어에서 여성의 분노를 슬픔으로 변환시키거나 억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섭식장애를 비롯한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조명한다. 현실에서 성형, 시술, 다이어트 보조제, 보정 속옷으로 치환 가능한 ‘서브스턴스’의 존재, 그리고 메일 게이즈(Male gaze)를 내포하는 에어로빅 쇼의 포르노적인 연출까지. 영화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억압이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비롯되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프로듀서 하비는 여성을 씹고 뱉으면 그만인 소비재(새우)처럼 대하고, 카메라 감독들은 수의 신체를 0.1초 단위로 훑는다. 칭찬으로 가장한 외모 평가를 일삼는 옛 친구 프레드와 ‘서브스턴스’를 권했던 남자 간호사 및 전화기 너머의 남성 목소리까지. 결국, 엘리자베스와 수를 비이성적인 젊음과 아름다움의 강박으로 몰아넣은 모든 구조는 남성 기득권의 산물임을 시사한다.

이 모든 것이 지금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영화 ‘서브스턴스’의 존재 의의다. 2018년 한국의 미용 성형 시장 규모는 약 14조 3200억원으로, 전 세계 미용 성형 시장의 약 25%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성형 시술 건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빅토리아 시크릿, 브랜디 멜빌 등 남성 CEO가 주도하는 패션·뷰티 산업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왜곡된 신체 관념을 주입하고 있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의 말처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바디 호러’가 되어버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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