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자민당)이 의석 절반을 못 넘겼다고?

제50회 중의원 총선 포스터. 제공=하영은씨.
제50회 중의원 총선 포스터. 제공=하영은씨.

10월27일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일본 총리대신이자 현 자민당 총재 이시바 시게루(이시바)가 취임 8일 만인 10월9일 중의원을 해산해, 임기 4년을 채우지 못한 채 조기 총선이 열린 것이다. 일본 국회는 양원제로,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으로 이뤄진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는 대신 중의원은 총리 선출에 참의원보다 더 큰 권한이 있고, 보통 중의원 의원 중 총리가 나온다. 중의원 선거가 끝나면 곧 총리 지명 선거다.

나름의 칼을 뽑았던 이시바의 선택이 독이 된 걸까. 자민당은 연립 정당을 세운 공명당과 의석을 합해도 과반 233석에 못 미치는 215석에 그쳤다. 자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민주당으로의 정권이 교대됐던 2009년 총선 이후 15년만. 아베 신조 전 총리 취임 이후부터는 회마다 자민당의 의석이 줄긴 해도 늘 절반은 넘겨, 이번 결과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94%의 기간을 ‘안정 여당’으로 자리했으니 말 다했다.

선거 전날 저녁, 도쿄역 마루노우치 광장에서 국민민주당 대표 타마키 유이치로의 막바지 선거운동 현장을 봤다. 역으로 들어가는 몇 군데의 출입구가 통제될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건너편 신마루노우치 빌딩 7층 테라스에서도 타마키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이에 화답하듯, 국민민주당은 직전 선거 결과(11석)보다 2배를 웃도는 28석을 얻었다. 소수 야당에 환호하는 모습, 내게 ‘일본’의 새로운 이미지가 새겨진 순간이었다.

‘일본 정치’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내게 일본은 어쨌든 자민당, 그리고 총리는 그 안의 파벌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마다 정권이 엎치락뒤치락해 긴장하게 되는 대한민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자민당의 영향력이 커서 그런지, 그 외 야당은 비교적 다양한 소수 정당이 포진한 다당제의 형태로 보인다. 이번 총선거로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레이와 신센구미 등 소수 야당의 존재가 더 부각됐다.

일본도 변하고 있다. 웬만해서는 미동 없던 일본 사회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로 태동했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비리 스캔들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자진해서 물러났다. 다음으로 취임한 이시바가 위기를 타개하고자 조기 총선을 밀어붙였으나 결과는 ‘정권 심판’ 선거였다. 그렇다고 이시바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거나 정권이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으로 충분히 국민의 뜻이 전해졌을 거라 믿는다.

이번 총선에서 일본 청년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53.6%, 역대 3번째로 낮았다고 한다. 일본 정치에서 신선한 풍경이었던 것에 비해 사뭇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투표율이다. 주변에 물었을 때는 3명 중 2명꼴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청해구두 수업에서 토론하던 중 “투표하지 않았다”는 일본인 학생의 말을 들은 시부타니 선생님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고 하셨다. 한국은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지만, 일본은 중의원을 뽑은 후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 기껏 투표해도 자신이 원하는 총리를 선택할 수 없으니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거다.

정치를 어렵게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선거만 봐도 원내 정당이 10개다. 정당이 많아도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비교도 어렵다. 어느 당에 투표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거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일본 젊은이들은 소수 야당에 힘을 실었다. 지금까지 많은 의석을 차지했던 자민당과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찾은 것이다. 입헌민주당을 제외한 야당 의석은 지난 총선 66석에서 이번에 90석까지 뛰었다. 이전까지는 젊은 층에서 자민당 선호가 강했으나 이번 선거에서 크게 이탈했다고 한다. 다른 정당을 선호했다기보다, ‘자민당이 아닌 당’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표율이 낮았어도 확실히 희망은 있다. 이시이(23)씨는 “투표하러 가자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지난 선거보다 많이 보여, 선거 참여의 의의가 더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메시마(19)씨도 정치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투표하러 갔다. 누가 되든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젊은이들이 투표한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고령사회에, 장노년층 투표율이 높았다. 젊은이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인은 고령자만을 의식한 정책을 이어갈 거라고. 야마모토(19)씨도 중장년이 가득한 정치계를 보며 “젊은 정치인이 늘어나면 젊은 세대가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온 지 두 달 만에 총선을 마주하니, 상황을 파악하기 바쁘면서도 한국의 상황과 대조하게 됐다. 한국도 불과 7개월 전 총선이 있었고, 학보 기자로서 청년 정치에 관해 머리를 싸맸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력감이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늘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 3주 전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 투표했던 또래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믿는다. 한국은 내각불신임결의나 의원 해산이라는 제도가 없으니 별일 없고서야 대선은 3년 뒤, 총선은 4년 뒤에 치러진다. 그때의 정치, 그때의 청년은 어떤 모습일까. 일본을 보며, 한국에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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