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0원이면…주 40시간씩 알바를 하잖아요?
그럼 (월에) 200만 원 정도를 벌 수가 있어요. 살 수 있죠.
죽을 때까지 알바만 한다면.(원서연)
8월5일 최저임금심의위원회(최임위)가 발표한 2025년 최저임금은 1만30원이다. 인상된 최저임금에도 대학생들의 지갑은 여전히 가볍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어떻게 생각할까
최저임금은 국가가 정한 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다. 8월5일 확정된 2025년 최저임금은 2024년보다 1.7% 상승한 1만30원으로, 역대 2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한국은행과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전망한 2025년 물가상승률 2.1%에 못 미친다.
최저임금으로 5시간(2025년 기준), 4만7224원. 원서연(디자인·21)씨가 5일 치 장을 본 금액이다. 장을 한 번 보고 나면 그는 며칠 동안 같은 음식을 먹는다. 월셋집의 작은 냉장고 탓에 음식이 금세 얼어버려, 재료를 빨리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8월8일 아침, 그는 아침밥을 해 먹고 과제를 하러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사용한 비용은 6300원, 약 40분 노동의 값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부쩍 더워진 날씨에 에어컨을 켰다. 그에게 청구된 8월 전기료는 2만4840원으로, 2시간30분 노동의 값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집계한 원씨의 한 달 생활비는 약 60만 원으로, 매주 15시간씩 한 달을 꼬박 일해야 하는 금액이다. 생활비 절약을 위해 식비를 먼저 줄이는 그는 “이제 간장 계란밥에서는 비참한 맛이 난다”고 했다.
원씨는 “최저임금을 받고도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1만30원으로는 “삶이 (개선은 불가능하고) 현상 유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업과 대외 활동을 수행하면서 최저임금을 받는 낮은 수준의 임금 노동을 하면 계층 이동을 위한 인적 자본을 쌓을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윤은지(인공지능·22)씨는 “최저임금 상승률이 최소한 물가 상승률과 동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 수준을 다룬 기사를 자주 접했지만 최저임금은 이제서야 1만 원을 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무력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올해(2024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 톺아보기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고용노동부가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최임위에 다음 연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심의 요청을 보낸다. 최임위는 협의로 90일 이내로 최저임금안을 제출한다. 이렇게 정해진 최저임금을 매해 8월5일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다.
2024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도 이와 같았으나,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하자는 업종별 차등적용안 논의로 인해 최저임금 수준 논의가 뒤로 밀렸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심의에 주어진 기간은 동일하게 90일이었지만, 업종별 차등적용안 논의를 선행하다보니 최저임금 수준에 대해 노사 간 협의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매년 있던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갈등이 특히 부각된 이유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이정희 정책기획실장은 “최임위 시작 전부터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적용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주희 교수(사회학과)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해 최대한 최저임금을 낮추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임위에 속한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 촉진 구간도 지적됐다. 2022년과 2023년엔 최저임금 심의촉진구간의 하한선으로 적용한 ‘◆국민 경제 생산성 산식’을 올해엔 상한선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산식을 하한선이 아닌 상한선에 적용하면 최저임금 수준 논의를 할 수 있는 금액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2024년 최임위 공익위원이었던 안지영 교수(경영학부)는 “이번 심의 과정에서 노동계층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경제성장률 또는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달라 요청해 (국민 경제 생산성 산식을) 상한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박성우 과장은 “아무래도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제 상황을 감안한 것같다”고 추측했다.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와 같이 세대와 성별에 있어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도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는 해석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중 대학생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큰 만큼,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서 청년들 의견은 중요하다. 그러나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최임위에 청년단체가 포함된 적은 없었다. 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은 “최임위 구성 자체가 양대 노총과 공익위원, 사용자위원이다 보니 이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북대 김서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단순 노사 대표 참여에 의한 결정보다 이해당사자로서의 청년이 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할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며 최임위 내 청년 대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저임금 두고 설왕설래, 그 해법은?
이러한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는 장기간 지속돼 왔다. 안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대학생 수입에 영향을 직접 주기도 하지만, 대학생에게 몇 가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고용주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기회를 줄이거나 기존 인력의 근무 시간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러한 문제는) 자영업자들이 실제 어떤 현실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자영업의 기이한 구조의 영향이 훨씬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할 문제를 우려해 최저임금 인상에 미온적으로 반응하기보단 임금 인상에 수반되는 문제를 해소할 사회구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희 교수는 “최저임금에 대한 재계와 정부가 과도하다 싶은 공격적 태도는 우리가 저임금에 의존해 발전해 온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가상승률 등의 경제지표를 감안해 (비혼 단신 노동자가 아닌) 가구 유형별 적정 생계비 수준을 도출하고 유형별 비중을 가중치로 활용해 하나의 생계비를 도출해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선임 연구위원은 결정 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이나 여성, 비정규직 등 취약한 고용지위에 처한 구성원들을 대표할 수 있을 근로자 위원이 최임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또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게 최저임금 결정 구조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논의만으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서현 교수는 “최저임금 문제는 자영업자의 상황과도 민감하게 결부돼 있기 때문에, 영세자영업자 지원이나 저소득층 청년 지원제도, 저임금 근로자 세제 혜택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희 교수는 기본 소득 지급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청년이 필요로 하는 체계적인 구직 지원과 양질의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의 격랑 속에 있는 우리 사회에 충분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정책이 동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뀐 최저임금은 오는 2025년 1월1일부터 의무 적용될 예정이다. 9월9일 기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까지 114일 남았다.
◆심의촉진구간: 최저임금 심의 기간 내에 노사 양측 협의가 어려울 경우, 공익 위원이 개입해 제시하는 최저임금 액수의 구간.
◆국민 경제 생산성 산식: ‘물가상승률 전망치+경제상승률 전망치-취업자증가율 전망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