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연구에서 얻는 즐거움과 보람이

35년을 연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죠. (김은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마약 연구로 성분 분석이 필요한 사건, 사고 해결을 도왔던 김은미 전 국과수 법과학부장(약학 전공 박사·00년졸)이 6월30일 공직을 내려놨다. 김 박사는 1989년 국과수에 입사해 마약분석 과장, 부산과학수사연구소장, 독성학과장을 거쳐 법과학부장을 역임하며 국과수에서 35년을 보냈다. 가수 박유천의 마약 범죄 사건 해결에 기여하고 2013년 세계 최초로 모발에서 프로포폴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해 큰 공을 세웠다. 이대학보는 은퇴한 김 박사를 만나 35년간 국과수에서 지낸 세월에 대해 들어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근무하던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의 모습. 제공=김은미 박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근무하던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의 모습. 제공=김은미 박사

 

국과수 신입에서 법과학부장이 되기까지

김 박사가 1989년 국과수에 처음 입사할 때부터 ‘마약 범죄를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국과수가 지금처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김 박사는 국과수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무작정 지원서를 냈다. 우리대학 약학대학원을 1988년에 졸업한 뒤 직장을 찾아다니던 그의 직업 선택 기준은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겨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가’였다. 공무원이 그 기준에 부합한다는 생각에 찾은 곳이 국가기관인 국과수였다. 김 박사는 “사기업에서는 여성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과수는 임산부를 위한 휴식 시간 등 여성 연구원을 위한 섬세한 복지와 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 그는 “(여성이 비교적 편하게 일할 수 있고, 남성과 경쟁해서 동등하게 승진할 수 있다고 믿어) 공직 사회에 발을 들였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과수에서 김 박사는 그 바람대로 국내외 약 80편 논문을 게재하며 많은 연구 활동을 했다.

김 박사가 입사했을 당시, 국과수에는 마약과가 따로 없었다. 1993년 마약과가 신설되고 20년이 지난 2013년, 국과수 본원이 서울에서 원주로 이전하며 마약과는 독성학과에 통폐합되기도 했다. 김 박사는 통폐합 시기를 회상하며“지원은 부족한데 적은 인원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약 문제가 점점 늘어나며, 한 명이 맡는 업무의 부담이 전보다 10배, 20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버닝썬 클럽 마약 사건, 강남 학원가 마약 유통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며 마약 남용이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2024년 다시 마약과가 생겼다. 통폐합 후 다시 신설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시기 김 박사는 법과학부장으로 유전자과, 독성학과, 화학과 업무를 총괄했다. 독성학과장 시절부터 마약과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이 있던 김 박사는 2021년 법과학부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과 신설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평생 마약 관련 일을 했으니, 애정이 크다”며 “퇴임하기 전에 마약과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마약이 사람들에게 생소하던 시절부터 큰 사회적 문제로 조명되는 현재까지, 김 박사는 마약과의 연구원이자 법과학부장으로서 다양한 변화를 몸소 겪었다. 

국과수의 슬로건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 앞에서 환하게 웃는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 제공=김은미 박사
국과수의 슬로건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 앞에서 환하게 웃는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 제공=김은미 박사

 

문제 해결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마약 연구

마약 범죄로 가수 박유천씨가 2019년 검찰에 입건됐을 당시,국과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국과수가 진행한 첫 검사에서는, 박씨 머리카락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탈색 등의 손상이 가해지면 마약 성분이 나오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검사를 포기하지 않은 국과수는 박씨의 머리카락과 함께 의뢰된 다리털에서 마약 양성 결과를 확인해 냈다. 결국 박씨는 마약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을 번복해 투약 사실을 인정했고, 이는 국과수의 마약 수사 저력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과수의 연구 결과는 재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김 박사는 “재판에 증인으로 자주 나가, 어떻게 마약 양성이 나왔는지 실험을 설명한다”며 “이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 결과에 따라 재판 결과가 바뀔 수 있기에 큰 영향력만큼 책임감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국과수 업무에 김 박사가 계속해서 열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즐거움이라는 원동력 덕분이다. 그가 법과학부장으로서 관할했던 유전자과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고감도 장비의 개발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20년 전 범죄 현장에 있던 휴지에 묻은 미세한 타액에서도 DNA를 검출해 미제 사건의 범인을 밝혀낼 수 있게 됐다. 그는 “강제 징용 희생자의 유골을 분석해 가족을 찾아주기도 한다”며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에게 마약 연구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제공=김은미 박사
김은미 전 법과학부장에게 마약 연구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제공=김은미 박사

 

국과수, 성장할 수 있었던 울타리

국과수는 김 박사에게 단순한 회사가 아니다.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이 돼준 울타리였다. 김 박사는 학문적 성장을 위해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행정안전부의 국비 장학제도를 통해 미국의 ◆NIH에서 1년 동안 마약 관련 신경 전달 물질을 연구했다. 미국이 어떻게 마약을 연구하고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입사 4년 차에는 우리대학 약학대학원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채로 입사했지만, 계속 새 분석법을 개발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국과수에서 많은 시간을 연구로 보냈지만, 그 시간을 희생하기만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었던 든든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가 있어 국과수는 마약 연구로 명성을 드높였고, 그는 국과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나갔다. 김 박사와 국과수 모두가 성장한 35년이었다.

“흔히 은퇴 후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지금까지는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면서 모든 인생을 살아왔어요.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의 선택을 받고 싶어요.” 김 박사는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과수에 입사하고 퇴임하기까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 더 이상 국과수의 연구원이 아닌 김 박사는 ‘선택하기보다 맡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마약 문제와 과학수사의 발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NIH: 미국의 국립 보건원. 의료와 건강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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