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9년차 DNA 감정관.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공주 교도소 살인사건, 부산 돌려차기 살인미수사건 등 여러 사건에서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DNA 감정을 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하는 일을 소개한다. 명함이 오가고 나면 항상 비슷한 대화가 이어진다. 바로 다음과 같이.
아, 대검찰청에 계세요? 네, 맞아요. 검사, 아니면 수사관? 하하, 둘 다 아니에요. 저는 DNA 감정관입니다. DNA요? 네, 형사 사건 의 증거물에서 DNA를 찾고 사건 관계인과 비교해서 그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 하는 일을 해요. 오, 그럼 CSI 같은 거예요? 뭐 비슷해요, 드라마는 드라마지만. 와, 그러면 막 시체도 보고 사건 현장도 나가고그래요? 현장은 나가는 경우가 있긴 한데, 시체를 볼 일은 없어요. 시체는 부검실로 가서 부검하고 장례 치르겠지요.
“무섭지 않아요? 여자가 하기에는 험한 일 같은데.”
나는 형사 사건의 증거물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고 그 흔적에서DNA를 확인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일을 한다. 그게 법과학자로서 DNA 감정관이 하는 일이다. 자기소개의 끝에는 항상 시체와 현장을 보느냐, 범죄가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자는 그런 것을 무서워하지 않을까’라는 편견이 묻은 질문일테다. 물론 그 질문을하는 상대방에게는 악의가 없음을 알지만,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저 하하 웃으며 대 답할 수밖에.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나는 일을 하면서 보고 듣는 것이 무서웠던 적은 없다. 이 일을 하기 전, 학창시절, 그보다 더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나는 사실어떤 범죄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무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폭행이나 살인 같은 행위에 공포를 느끼는 성격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범죄를 마주하는 것이 아예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에 혼자 있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려고 들면 식칼부터 집어 들었던 적이 있고, 피해 사실을 신고하러경찰서에 들어가서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본 적도 있다. 교도소 현장에 나갔을 때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도 살인범 옆에 섰을 때는 정신을 더욱 단단히 차리고 있으려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피에 젖은 옷에서 풍기는 썩어가는 피 냄새를 맡으면서 이를 꾹 악물기도 해보고, 성폭행 사건의 증거물을 감정한 날 저녁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속옷을 늘어놓고 그 특징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언제든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 한편에 넣어두고 그에 대한 대응과 대비책을 여러모로 염두에 두는 것이 직업병인 셈이다.
그래도 범죄가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범죄가 됐든 다른 무슨 일이 됐든 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무섭다.
십여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출퇴근하며 지내던 일상을 더 이상 영위하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정말로 버겁고 무서웠다. 나이 서른이면제 밥벌이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평범한 삶을 가지지 못한 스스로가 패배자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때 새겨진 공포감이 아직 남아있어 나는 지금도 장기간 휴가를 가지 않는다.
그때, 나는 무너진 일상을 어떻게든 다시 세우려 발버둥쳤다. 눈 뜨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에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 매일 책을 읽고, 채용 공고를 살피고, 이력서를 다듬고, 운동하러 나갔다. 텅 빈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빈 시간에 할 일을 채워 넣으려 애쓰고 그것을 매일 똑같이 반복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좌절도 맛보았지만, 뿌듯한 결과물도 얻을 수 있었다.
십 년 전의 나는 그렇게 무너졌지만, 생활의 규칙을 만들며 다시 일어나고자 했다. 시나브로 그 노력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나는 그 해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그 바로 다음해에는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지금의 일을 하게 됐다. 그때로부터 꼭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기장에 ‘십 년 후에 두고 보자’고 적었던 서른 살의 나에게, 네가 그때 그렇게 노력했기 때문에 마흔 살의 나는 네가 평생을 바라왔던 ‘좋아하는 일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서른 살의 나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됐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대단한 업적이 필요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현재에 집중하면서 내가 꿈꾸는 것을 잊지 않고 지낸 시간이 조금씩 쌓여 원하는 것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 그것을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일까. 이제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매일 정해진 일과는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몸이 힘든 날이든 마음이 힘든 날이든,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수만 있다면 똑같은 내일 또한 마주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러면서 나 자신이 이 힘든 일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기에.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범죄에 피해를 당한 누군가의 무너진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일조하길 바라며 나의 업을 마주한다. 지나고 나서, 그래도 잘견뎌내 지금의 평화로운 삶을 손에 넣었다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길 바라면서.
엄태희(생명·06년졸) 대검찰청 DNA 감정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