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필연적인 논리로 이루어진 상황만을 마주할 수는 없다. 세상은 아주 우연히 나를 괴롭게 한다.
방송국에서 밤중에 일어난 일을 취재하고 귀가하는 새벽 6시였다. 그날따라 큰일이 없었다. 궂긴 소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었다. 기자로서도 반길 수 있을까?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를 기사로 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바로 이어, 사건은 기자가 바란다고 생기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내가 느낀 딜레마는 누군가 죽고, 다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마냥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캐내는 일을 함으로 비롯됐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마주할 때 내 감정은 어때야 하는가.
기구한 상황을 마주함에 무뎌지고 싶지 않았다. 늘 최선을 다해 슬퍼할 수는 없겠지만. 기사로서의 중요도는 수치화할 수 있어도, 그 소식을 들었다는 것에 충분히 유감스러워하자고. “I’m sorry to hear that.”의 의미를 더 이해하게 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물음에 인생이 잔잔해지는 것이라 답한 적이 있다. 21살의 나는, 매일 마주할 사건에 권태를 느끼거나 덤덤하게 처리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2022년 3월4일, 울진에서 10일간 이어진 대형 산불이 났다. 앞선 고민이 떠오를 겨를이 없었다. 9시 뉴스가 끝날 쯤 출근하는데 그날은 이상함을 감지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수많은 제보를 받았다. “팀장님, 함양군에도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지금 안 난 곳이 없어.” 전국이 불바다였다.
울진-삼척 산불은 한울 원전과 한국가스공사 인근까지 번졌다. 공포였다. 순식간에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울진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는 붉은 연기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창문을 뚫고 연기가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폐가 답답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밤 산불 진화 작업에는 헬기를 띄울 수 없다. 소방 인력이 밤새 달려들어도 해가 뜨기 전 완진이 어려운 이유다. 아무리 물을 쏴대도 한 치도 줄어들지 않는 듯한 아득한 규모. 책상에 앉아 제보 영상을 끊임없이 보며 순간 무력해졌다. 자연이 주는 절망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꼈다. 불은 언젠가 꺼질 거였다. 얼마나 태우고 갈지가 관건이다. 더 이상 주변에 탈 것이 없어 꺼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터.
“너만 세상을 지키는 게 아니야.” 함께 근무하는 기자께서 잔뜩 긴장한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쭤봤다. 그냥 평소대로 하면 된다고 하셨다. 소방서에 피해 정도와 대피 상황을 물었다. 다행히 원전과 가스공사의 고비는 넘겼다. 인명피해도 없었다. 대피 인원은 혹시나 틀릴까 봐 재차 확인했다. 물론 진화 상황에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일출 전, 무거운 마음으로 근무를 마쳤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 자체는 기자가 어쩔 수 없다. 사건을 사랑할 수 없다.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다. 고작 담뱃불일 뿐이라 생각하고 버린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같은 날 새벽 강릉에서,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불(火)을 내버린 이에게 화가 났다. 그 불로 자신의 어머니가 숨졌다. 마른 낙엽, 가는 나뭇가지 하나가 산을 몽땅 태울 수 있는데 인간이 무슨 수로 감당해 내려고 그런 짓을 저지를까. 숱한 감정 속, 산불의 상황을 알려 피해 상황을 최소화하고 경각심을 준다. 그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운’에 관해 배운 적이 있다. 인간 의지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Fortuna est caeca.”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무기력한 말이 아니다.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가 원하든 말든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쉽게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도록 풀어갈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한다.
매일, 매달, 매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늘 마음에 새겨뒀다가, 일이 생길 때 잘 대처하면 된다. 발생할 때마다 감정이 동요해서는 그 순간을 놓치게 된다. 사건·사고 기사를 공식처럼 써내려가는 것은 그 일을 쉽게 여겨서가 아니다. 이론으로 배웠지만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야 그다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기 위해 잠시 묻어두는 것이다.
아직도 3월이면 산불을 걱정한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벅찼던 그때를 떠올리며, 더 치밀하게 바라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기후 위기로 대형 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커졌다. 산불로 대기 오염이 심해진단다. 야생동물들은 어쩌나. 사건이 나지 않는 날에도 이런 생각을 한아름 안고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