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우리대학과 인접한 북아현동에서는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아현역 좌측의 북아현 1구역은 재개발이 끝나 신축 아파트가 자리했으나, 아현역 우측부터 충정로까지 이어지는 북아현 2·3구역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17년째 이어지는 지역과 조합 간의 갈등으로 해당 구역은 낡고 허름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속에서도 터전을 지키며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이 있다. 주민들에게 북아현동은 ‘눈만 오면 지긋지긋해지는 언덕길’이다가도, 한편으로는 ‘많은 추억이 담긴 정다운 곳’이다. 오래된 집들이 촘촘히 늘어선 북아현 달동네,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일부 철거가 진행된 북아현동 달동네에는 빈 집이 즐비하다. 주인 없는 집 우체통에 고지서와 우편물이 쌓여있다. <strong>정영인 사진기자
일부 철거가 진행된 북아현동 달동네에는 빈 집이 즐비하다. 주인 없는 집 우체통에 고지서와 우편물이 쌓여있다. 정영인 사진기자

55년째 북아현동에 거주한 성숙자(86)씨는 “이 집 저 집 옮겨다니며 밥 먹던 시절의 북아현동이 참 좋았다”고 회상했다. 재개발 지연 상황에 대해 “관련 이야기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소식이 없어 주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북아현동에 60년 거주한 이대환(88)씨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집들이 많으니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열악한 환경을 설명했다. “이 동네만 계속 미뤄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지연된 행정에 답답해했다. 

현관 앞으로 나와서 쉬고 있는 북아현동 주민들의 모습. <strong>진유경 사진기자
현관 앞으로 나와서 쉬고 있는 북아현동 주민들의 모습. 진유경 사진기자

ㄱ(76)씨는 북아현동 달동네 철거가 진행될 때부터 건너편인 손기정로에 거주했다. 손기정로 역시 ‘뉴타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으며, 북아현동과 유사하게 주민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는 이웃동네인 북아현동을 보며 “의견 대립으로 인해 개발이 미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개발과 관련해 더 알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ㄴ씨는 “공공재개발이란 너무 작은 집으로의 이주를 뜻한다”며, 정책의 빈틈으로 인해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북아현로 14길의 저녁 시간 모습. 위쪽으로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다. <strong>진유경 사진기자
북아현로 14길의 저녁 시간 모습. 위쪽으로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일부 주민들은 앞으로의 거처에 대해 무력감과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아현동 4차길 달동네 철거가 시작되던 무렵 달동네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이사 온 ㄴ씨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 어디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재개발 이후의 삶을 걱정했다. 달동네 언덕 위에서 만난 명순희(75)씨 또한 “언덕을 오르는 게 힘들지만 나이 들어 이사 갈 수도 없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90년대부터 들었던 게 재개발 계획”이라며, “변화를 기대하기보단 그저 살고 있을 뿐”이라며 허탈해했다. 

북아현동 달동네 위쪽에서 바라본 마을의 전경. 헌 판자가 덮은 집과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있고, 그 너머로는 우리대학 기숙사 건물이 늘어서 있다. <strong>진유경 사진기자
북아현동 달동네 위쪽에서 바라본 마을의 전경. 헌 판자가 덮은 집과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있고, 그 너머로는 우리대학 기숙사 건물이 늘어서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북아현동에 20년째 거주 중인 서활란(72)씨가 인터뷰 중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나면 마을 정자에 모여 다같이 수다를 떨곤 한다”고 말했다. <strong>정영인사진기자
북아현동에 20년째 거주 중인 서활란(72)씨가 인터뷰 중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나면 마을 정자에 모여 다같이 수다를 떨곤 한다”고 말했다. 정영인사진기자

주민들은 다양한 이유로 북아현동에 남기를 선택했다. 달동네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 집에서 60년째 거주 중인 박영림(83)씨는 북아현동이 “원래는 화목한 동네”였지만, “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동네로 뿔뿔이 헤어져 소식을 모른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박씨가 살고 있는 집은 노후화돼 겨울엔 벽으로 찬 바람이 스며들지만, ‘살다 보면 익숙’해지기에 앞으로도 북아현동에 살려고 한다. 서활란(72)씨는 자신의 집을 가진 이들은 재개발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래 산 집을 두고 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북아현동에 남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제니스슈퍼’를 운영하는 오석환(87)씨가 미소짓고 있다. ‘제니스 양장점’ 주인이었던 그는 같은 이름으로 북아현동에 가게를 차렸다. <strong>정영인 사진기자
‘제니스슈퍼’를 운영하는 오석환(87)씨가 미소짓고 있다. ‘제니스 양장점’ 주인이었던 그는 같은 이름으로 북아현동에 가게를 차렸다. 정영인 사진기자

“여기서 60년을 살았지. 아이들 키우고, 같이 밥 나눠 먹고, 동네 사람들 다 알았어.” 성씨를 포함한 많은 노인들은 북아현동에서 아이를 낳고, 자녀가 떠날 때까지의 세월을 보내왔다. 집이 낡고 생활이 불편해도, 그 안에는 세월이 켜켜이 쌓은 추억이 있다. 성씨 “친목계를 해서 이웃끼리 돌아가며 집에 모였고, 밥을 함께 먹으며 정을 나눴다”며 “골목마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가득했던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회상했다. 

박영림(83)씨가 골목에 앉아 마늘을 손질하고 있다. <strong>채의정 사진기자
박영림(83)씨가 골목에 앉아 마늘을 손질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한 골목길에서는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걸어보니 앞서 만난 박씨가 집 앞 계단에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박씨는 “다들 떠나고 빈집만 남아서 속상하다”며,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이웃들을 그리워했다. 그는 “예전에는 좁은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다 같이 요리를 해 먹기도 하고, 저녁이면 술잔을 돌리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그때는 동네가 바글바글했고 서로 힘이 되어줬다”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주택 사이 화단에서 쉬고 있는 황순애(69)씨와 이웃 주민들. <strong>진유경 사진기자
주택 사이 화단에서 쉬고 있는 황순애(69)씨와 이웃 주민들. 진유경 사진기자

“아침에 나와 저녁6시깨나 들어가. 혼자들 살다 보니 적적해서 나오지” 북아현로14길 주택가 사이 자리한 쉼터에서 황순애(69)씨가 오후를 나고 있었다. 혼자 지내면 외롭고, 집 안보다 ‘여기’가 더 시원하다 며 이웃들과 함께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단풍나무 그늘이 드리운 화단은 근방의 이웃들이 모여 여름을 나는 쉼터다. 황씨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쉬어가던 이웃들은 “함께 모여서 쉬고 간식을 먹으면 좋다”고 말했다. 

북아현로 4차길의 모습. 한 아주머니가 계란을 사들고 지인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strong>진유경 사진기자
북아현로 4차길의 모습. 한 아주머니가 계란을 사들고 지인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사람들이 많이 떠나갔으나, 그럼에도 북아현동은 여전히 ‘모임의 동네’다. 주민들은 마을 정자나 경로당, 골목 등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가게를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재개발 이후 북아현동의 미래에 대해 묻자, 명씨는 “다른 동네들이 그랬듯,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며 빠르게 변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이 북아현동의 언덕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래된 빌라 건물들과 재개발된 구역의 아파트의 모습. <strong>정영인 사진기자
한 주민이 북아현동의 언덕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래된 빌라 건물들과 재개발된 구역의 아파트의 모습. 정영인 사진기자

 

재개발이 미뤄지는 사이, 남은 이들의 삶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었다. 자식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배우자를 먼저 보낸 어르신은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재개발로 인해 가까웠던 이웃들도 많이 떠난 상태였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이들도 대화를 하다 보면 “들어와서 음료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정을 나눴다. 대화를 마치고 일어나려 하자 “다음에 또 놀러 오라”며, 다시 얘기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북아현동의 가장 높은 지대에 도착하자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낡은 판자가 뒤덮은 폐가와 저 멀리 1구역의 신축 아파트가 대조되며 도시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풍경을 자아냈다. 북아현동에서 만난 어르신의 모습은 재개발이라는 이슈 속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사람’의 존재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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