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학기, 작년 이맘때 신청했던 교환학생 생활이 시작됐다. 파견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에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다. 2024년 2학기, 내가 2학년 2학기였을 때에는 그저 교환학생을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해외 경험’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3학년 2학기를 시작하는 지금, 교환학생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이유는 교환학생을 신청했을 때의 이유보다 무거워졌다.
학교 수업, 어학, 동아리, 아르바이트, EUBS… 많은 것들과 함께 대학 생활 2년을 내리 달렸다. 2학년을 마치며 그간 하던 활동들이 모두 종료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학기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하던 일들이 사라지니 남들은 다 앞서 나가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내가 정말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은 갖지 않아 실체를 잃은 것 같다는 허무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과감히 한국에 내려놓고,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번 한 학기를 통해 본래의 목표에 확신을 더할 수도, 새로운 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미국 땅에 조금씩 비워내고 그 자리를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채워 한국에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나는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 한 것을 후회하는 게 낫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을 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면 후회만 남지만, 어떤 일을 실패하더라도 그 일을 해봤다면 실패로부터도 얻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설령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배움일지라도). 미국 교환학생을 결심한 것도 처음엔 그저 ‘해보자’의 일환이었다. 큰 고민 없이 미국을 선택했지만, 막상 한국을 떠날 때가 되니 먼 타국에서 어색한 영어만 써야 하는 상황이 닥치는 것이 무척 두려웠었다. 그러나 막상 이스트테네시대학(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ETSU)에 와보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영어 실력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여유도 없는 곳이 이곳 미국이라는 걸 매 순간 느끼고 있다. 두렵더라도 그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나를 던지는 것이 알을 깨고 나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나날들이다.
ETSU에서의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 기간으로, 그룹을 형성해 전반적인 학교 생활에 대해 배우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오전8시부터 오후7시까지 하루 종일 영어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한다. 이러한 일정을 3일간 소화해야 하는데, 익숙지 않은 영어로 소통해야 하니 정말 눈앞에 놓인 상황 말고는 아무 걱정도 떠올릴 수 없게 됐다. 한국에서 졸업 후의 미래를 걱정하며 항상 근심을 가지고 살았던 내가 당장의 상황에 집중하고, 그저 모든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기쁘게 느껴졌다.
교환교로 ETSU를 선택한 이유는 너무 큰 도시가 아니어서였다. 서울의 빠르고 복잡한 환경에서 벗어나 나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교통과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한국에 비하면 미국 대부분의 지역들은 시골로 생각되기 쉬운데, ETSU가 위치한 테네시 주의 존슨시티는 적당히 조용하고, 있을 건 다 있는 살기 좋은 동네다. ETSU의 첫인상은 ‘너무 만족스럽다’ 였다. 빨간 벽돌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하나의 마을 같은 캠퍼스, 친절한 교직원들, 언제나 반갑게 인사해 주는 친근한 국제학생 그룹 리더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룸메이트까지. 나는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상하게도 포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의 낯섦과 외로움만 생각했었는데, 되려 한국에서 잊고 있었던 따스함을 느끼게 되어 다시 모두가 나를 챙겨주는 신입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주면 정규 학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어떤 기쁨과 슬픔, 친근함과 어색함이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직 모든 배움의 기회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나’를 찾는 여정이 순항하길 스스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