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대선)가 29일~30일 사전투표를 거쳐 6월3일 본투표로 종지부를 찍는다. 선거 본투표일까지 약 일주일 남은 시점, 이대학보는 각 정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했다. 이번 대선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민주노동당 권영국 △무소속 황교안 △무소속 송진호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 중 정당 소속 네 후보의 공약을 여성과 청년 키워드로 분류해 살폈다. 공약은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nec.go.kr)에 기재된 10대 공약을 참고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대선. 민생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고려하겠다는 말 아래 여성 정책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나는 형세다. 각 후보들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 의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여성 안전부터 고용상 성차별까지, 여러 방면에서 대선 후보들의 여성 공약을 점검한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 범죄 대책은
대선 후보 중 여성 안전을 위한 정책을 10대 공약에 포함한 이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뿐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느슨한 정책 범위만을 포함해 수적으로 미흡했다. 반면, 권영국 후보는 디지털 성범죄부터 비동의 강간죄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여성 범죄 대책을 다루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흉악범죄·묻지마범죄(이상동기범죄) 예방을 위해 범죄경력자 관리 감독 강화 △교제폭력 범죄 처벌 강화 및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도입을 공약의 세부 항목으로 포함했다. 범죄 대책이 두 가지 항목에 그치며 미흡하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이재명 후보는 16일 추가적인 여성 공약을 발표했다. 교제폭력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불응 시 유치장 유치로 실효성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딥페이크 영상 등 디지털 성범죄를 집중 모니터링하고, AI 등 첨단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와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공약에서 여성 대상 범죄 대책은 전무했다. 저출생 정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여성 공약이 없던 김문수 후보는 20일 뒤늦게 여성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발표했다. 건물의 출입자를 감시하는 CCTV나 무인택배함 등 일정 안전 기준을 보장하는 ‘여성 안전주택 인증제’를 제도화해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의 안전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교제폭력과 딥페이크 범죄 예방 및 보호 제도 정비를 약속했다. 이준석 후보는 23일 기준 여전히 별다른 여성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권영국 후보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을 포함해 △비동의 강간죄 도입 △안전한 임신 중단과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 보장법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까지 강간으로 정의해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낙태죄 폐지를 대체할 입법을 마련해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상 성차별 없애겠다며 군가산점제 부활
고용 환경은 여전히 성평등하지 않다. 여성들은 채용 과정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뚫고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높은 임금 격차를 마주한다.
이재명 후보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및 공공기관 성별 평등지표 적극 반영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추진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권영국 후보 또한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성별임금공시제를 공약에 포함했다. 권영국 후보는 성별 평균 임금, 직급별 임금격차, 관리자 성비 등을 공개하고, 이를 공공기관 및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기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문수 후보는 10대 공약에는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지만, 때늦은 20일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를 공공기관부터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후보들의 공약에 군가산점제 부활의 징조를 보이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김문수 후보는 군가산점제 도입을 전면에 내세웠다. 군 경력이 민간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군 직무 경력에 기반한 경력 전환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여성희망복무제 도입으로 양성평등 군 복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내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는 계획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군복무 경력 호봉 반영으로 청년의 일할 권리와 기회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본지 1700호(2025년 3월10일자)에 따르면, 군가산점제로 대표되는 정책들은 남성에게 노동시장의 특권을 부여해 징병제의 태생적 한계인 강제성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김미선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군 복무에 대한 처우는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정책들은 국가 대신 노동시장의 기업이 국방의 의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뒤늦은 공약 추가, 밀려난 여성 의제
흔히 저출생 정책은 여성의 주된 부담을 덜어준다는 면에서 여성 정책으로 간주된다. 김문수 후보의 공약 중 여성 정책으로 언급될 만한 것도 저출생 정책뿐이었다. △24시간 돌봄시설, 긴급돌봄 시설 확대 △가임력 검사 및 난임 시술비 지원 등 임신과 육아에 치중한 정책들이다. 이재명 후보도 14개의 여성 공약 중 10개가 돌봄과 관련된 정책들이었다. 우리대학 고민희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정치인들이) 저출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청년 여성 정치인의 부재가 이를 심화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청년 여성 정치인이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후보들의 여성 공약에도 청년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김 교수는 후보들이 가족에서의 여성을 위주로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한국 사회의 여성을 정상 가정 속에서 출산하는 존재로만 인식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10대 공약은 대선 후보가 어떤 공약을 우선하는지 판별하는 기준이기에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진다. 하지만 후보들의 공약에서 여성 정책은 권영국 후보를 제외하고서는 전반적으로 빈약했다. 각종 여성 정책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나중에 발표됐지만, 이는 정당 내에서 자체적으로 성차별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 여성계의 강력한 비판과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정책들이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비판적 개입을 해야만 성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이번에도 확인받은 것”이라 표현했다. 고 교수는 “여성 의제가 후순위로 밀리면서 정당이 (여성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대중의 반응을 살피면서 정책을 던지는 형태의 선거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의 ◆백래시를 정당들이 빠르게 포착하고 여성 공약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지양했다는 의미다. 이준석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대표되는 백래시가 대선 공약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래시: 특정 운동이나 변화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나 여성 운동에 대한 반대 흐름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