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립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 그 배경에는 여성혐오가 있었다
"여성학이 왜 필요해? 어디 남성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어? 별 쓰잘데기 없는 걸 학문이라고 하고 있네."
지난 27일, 비수도권 유일 여성학과인 계명대 정책대학원 여성학과의 존폐 논란을 다룬 서울신문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계명대 정책대학원이 신입생 감소로 폐원해, 정책대학원에 속한 여성학과가 독립적인 학과로 존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계명대 여성학과 지키기'의 전말
현재 독립적인 여성학과는 계명대, 성공회대, 우리대학에만 개설돼 있다. 특히 계명대는 비수도권 유일 여성학과로, 35년간 지역 여성운동의 기반을 마련해 왔다. 계명대 여성학 석사과정은 정책대학원에 여성학과로 자립해 있고, 박사과정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여성학전공으로 개설돼 있다. 사회학과는 정책대학원 여성학과를 박사과정과 같이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세부 전공으로 개설하자는 입장, 여성학과는 일반대학원에 여성학과를 독립적인 학과로 신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규 계명대 정책대학원장·여성학과장은 저조한 여성학과 신입생 수에 더해, ‘계명대, 이화여대를 제외한 다른 대학의 연구자들은 사회학과 소속으로 여성학을 전공한다’는 점을 근거로 ‘사회학과 구성원으로서 여성학과 세부전공을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또 “학문적인 우월성, 그동안 지역 사회에 계명대 여성학과가 헌신한 노력만으로 학과가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사립대라면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2010~2024학년도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지원 및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원자 수는 0명에서 6명 사이를 오가는데, 학과 유지가 가능할 만큼의 신입생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계명대 여성학과의 입장은 사회학과 및 정책대학원과 배치된다. 여성학연구소 임은경 전임연구원은 “교과가 개설되기 위해선 신입생 수가 아닌, 한 학기에 몇 명이 등록하는지가 중요하다”며 “5명 이상이면 수업이 진행되고, 5명 미만이면 폐강되는데 여성학과는 그럴 일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여성학연구소에서 제공한 ‘2007~2024학년도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석사과정 및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여성학전공 등록생 현황’ 자료가 위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성학과 석사과정이 여성학대학원에서 정책대학원으로 이전한 2011학년도를 기준으로 전년까지 매년 평균 24명이 석사과정에 등록했으며, 20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또한 임 연구원은 “(앞서 제시된) 사회학 전공생 수는 석·박사과정생을 모두 합해 부풀린 반면 여성학 전공생에는 박사과정생만을 포함했다”며 자료 왜곡을 강력히 비판했다. 임 연구원은 “사회학과 여성학전공에는 박사생만 입학하는데, 사회학전공에는 석·박사생이 모두 입학함에도 교과 개설 인원이 차지 않아 사회학 전공 수업이 폐강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회학과 여성학 전공'이 아닌 '여성학과'로 남아야 하는 이유
계명대 일반대학원 김태영(사회학과 여성학전공 박사과정)씨는 “(계명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에는 여성학적 관점이나 태도를 가진 교원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고, 따라서 사회학과가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문적 일관성과 전문성의 측면에서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회학과장이 여성학과에 대한 시혜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학과 ‘덕분에’ 지역이라는 열악한 공간에서도 여성학과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회학과장의) 발언 이면에는 여성학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존중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재와 여성학을 종속적인 학문으로 간주하는 권위주의적 태도가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대학 이은아 교수(여성학과)는 독립적인 학과가 있다는 것은 “대학 사회와 전체 지식 사회에서 학문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특히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왜 독립적인 학과로 있어야 하냐’는 물음엔 “지금까지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것을 주변인의 관점에서 다르게 질문하고, 낯설게 보고, 어떻게 연구할지를 제시할 수 있는 고유한 학문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덧붙여 오랫동안 여성은 지식 체계를 만드는 데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여성의 경험이 배제되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식은 지식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관계돼 있기에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젠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젠더 연구를 할 수 있지만, 독립적인 학과가 없다면 지금까지 보편으로 간주돼 온 지식의 남성 중심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론과 질문을 통해 사회 변화를 위한 비판적 지식 생산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학 비롯한 소수 학문 위기···사립대학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신입생 충원율은 여성학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취업난이 지속되며 인문·사회 계열 전공의 인기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를 택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같은 지역 사립대학인 대구대는 신입생 충원율 등을 기준으로 2025학년도 1학기부터 사회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계명대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정책대학원장은 신입생 모집이 어려우니, 여성학과가 사라지는 것보다 사회학과의 세부 전공으로서 여성학과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우리대학 이 교수는 대학의 근본적인 역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시장 가치를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 공간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라 그냥 취업 기관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학문의 기반을 닦을 책임이 있는 공간”이라며 “(특정 학과에) 사람이 안 오면 과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지 고민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