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화라는 구호처럼 여자대학은 그 누구에게도 규정되지 않아야 하며, 스스로 질문하며 우리 사회의 수많은 혐오에 맞서야 한다.” (이은아 교수)
여성혐오에서 촉발된 여자대학(여대)폐지론이 반복되는 와중에 여전한 여대의 필요성과 의미를 논의하는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컨퍼런스(컨퍼런스)가 8일 오후2시 학관 109호에서 열렸다.
컨퍼런스는 김은실 명예교수(여성학과)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부)가 ‘여성혐오에 대한 법정책: 법정책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한국여성연 구원 권김현영 연구원이 ‘여자대학과 여성혐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연세대 나임윤경 교수(문화인류학과),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이숙진 강사, 법무법인 ‘덕수’ 김상현 변호사, 이은아 교수(여성학과)가 참석했다.
홍 교수는 여성혐오 담론과 법 정책에서 ‘여성’이 대상화되는 방식을 설명했다. 홍 교수는 “여성혐오의 기본적 논리는 여성이나 여성 정책이 자기 이익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며 현재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여성혐오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반 여성주의 단체 신남성연대와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이 그 예다. 홍 교수는 이 현상을 “사회경제적 지위가 취약해진 남성들이 문제 원인으로 여성을 지목하고 공격하는 상황에서 정치가 여성혐오 정서에 편승한 것”으로 본다. 그렇게 여대는 한국 사회 내 여성혐오 확산과 맞물려 불공정의 상징이 됐다. 그는 “여대가 여성혐오의 중심이 되는 상황에서 여대가 여성혐오에 맞서는 방식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권김 연구원은 “현재 여대 혐오는 대체로 페미니스트 혐오의 하위 범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여대 폐지론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인 ‘여학생들도 여대를 기피한다’는 말 역시 여대 기피 현상 자체를 뜻하기보단, 여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의 산실인 여대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대의 현재적 필요성을 언급하며 “여자 고등 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질문하기 전에 현재 공학대학 내 여성 대학생(여대생)이 평등한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중앙대, 세종대처럼 여대가 공학대학으로 전환된 선례가 있지만, 이 중 과거보다 개선된 여성 친화적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대학은 없다. 권김 연구원은 공학 전환 4년 차였던 신라대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신라대는 남성이 양적으로 소수임에도 주도적 위치에 있었고, 이는 학내 네트워크 형성에서 여성이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여대를 폐지할 게 아니라 공학대학 내 여대생에게 공평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나임 교수는 ‘왜 여자대학이어야 하나?’를 주제로 공학대학 내 여성 과 여대 내 여성이 처한 환경이 완전히 다름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여성혐오가 대상인 정책은 ‘성’이나 ‘젠더’ 대신 ‘여성’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예시로 든 한 회사는 승진 심사 기준으로 영업직만 달성할 수 있는 항목을 마련해 논란이 됐다. 남성만 영업직을 담당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상황에서, ‘여성’을 정책 대상에 명확히 표기 할 때 비로소 문제의 본질을 인지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여자대학은 그 자체로 옳거나 정당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위치에 따라 의미가 계속 변화해 왔으며 또 변화해가야 한다”며 현재 여대의 의미를 고찰해 볼 것을 제안했다. 강연 후 권김 연구원은 “이 컨퍼런스가 여자대학을 향한 혐오를 분석하며 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시작이 되면 좋겠다”며 이대학보에 소감을 밝혔다.
권김 연구원의 바람대로 컨퍼런스는 참가 학생들이 여대 혐오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카와고에 에리(여성학 전공 석사 과정)씨는 “다양한 방면으로 여성혐오 대응법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답했다. 김은재(철학·20)씨는 “여대 구성원이 된 이상, 여대가 가진 역사와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순을 끊임없이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현시대에 필요한 논의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