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경영·10년졸) 아트디렉터
김은주(경영·10년졸) 아트디렉터

우리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예술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물관, 미술관, 금융기관에서 큐레이터, VIP 마케터로 근무하다 현재 프리랜서 아트디렉터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저는 새내기 시절부터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끝인 줄만 알았던 ‘최선과 열심’의 시간은 이화에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학업, 공모전 수상, 교내외 봉사활동, 동아리, 학회, 아르바이트, 인턴십까지 소위 ‘갓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이것이 평범하고,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야 커다란 이변 없이 굴러가는 인생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경험 덕분에 졸업 이후 사회에 나갔을 때, 친구들에 비해 처음에는 ‘사회의 쓴맛’을 덜 느끼며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말했듯, 작은 고난은 큰 고난을 맞이하기 위한 연습이었을까요. 주어진 상황이 어렵게 느껴졌고, 어떻게든 견뎌내려 안간힘을 쓴 적도 많았습니다. 요즘도 비슷한 위기가 오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조절 능력이 제 삶의 항상성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지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한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또 마음이 힘든 후배님들이 있다면 마음껏 방황하고, 소리 내어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그냥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면 그것은 그저 게으름의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로잡고 다시 잘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라는 것도요. 아무리 애를 써도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다면, 지금 그런 시공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거대한 캔버스를 채워 나가는 일이라면, 우리는 때때로 붓을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처럼, 삶에서도 잠시 멈추어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림 한 점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색감이나 붓의 결, 여백의 의미가 서서히 마음 속으로 스며듭니다. 어떤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어떤 작품은 멀리 떨어져 보아야 전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저에게도 삶이 그러했습니다. 매 순간 열심히 살아왔지만, 오히려 한 발 물러났을 때 내가 걸어온 궤적과 진짜 의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하던 선들이, 물러나서 바라보면 하나의 조화로운 형상이 되듯이, 삶도 그렇게 멀리서 볼 때 비로소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쁜 상황 속에서 흘려보낸 순간들을 곱씹어 보면, 그 안에 나만의 색이 있고 서사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 속에 핀 무지개가 맑고, 그 사이로 청량한 하늘이 보이듯이 우리의 삶도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며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쉼은 멈춤이아니라, 더 나은 표현을 위한 사색의 시간입니다.

요즘 저는 천천히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올라가고 다시 내려와야만 새로운 마음으로 사물과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행복의 좌표도 점점 더 공고해집니다.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 순간 오롯이 몰입하고 즐기는 데 집중합니다. ‘중간 생략’ 없이 꾸준히 이어진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경험으로 남고, 결국 자신만의 문화자본이 됩니다. 하루를 잘 보낸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만의 ‘추구미와 유니버스’에 몰입해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만큼이나, 친구, 가족, 타인과 시간과 공간을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세상의 흐름을 읽고 이끄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도 이야기해 주고싶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삶을 돌아보는 여유, 인생을 되짚어보며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감각입니다. 모두의 우주를 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단절을 넘어 세상을 잇고, 자신의편만 챙기지 않는 모두를 위한 다정하고 따뜻한 리더로 성공할 것입니다.

대학 졸업 이후 마케터로, 또 큐레이터로 살아온 저는 ‘화면 조정’의 시간을 거쳐, 문화 예술을 매개로 지역 활성화와 문화 선진화를 위한 사업의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를 둘러싼 시간이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이 들기도 하지만, 반면 괜찮을 거라는 굳은 믿음도 있습니다. 적절한 속도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지속 가능하면서도 발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이화인 모두가 ‘속도 조절 능력’을 갖추어 가시기를 응원합니다. Pac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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