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노동자 사업 진행 과정은 "잔혹 스릴러"
'변화하는 노동, 젠더와 법' 학술대회 열려

“잔혹한 스릴러 같았다.” 정부의 필리핀 가사노동자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노) 배진경 대표의 소회다.

노동과 젠더의 교차 지점을 논의하는 ‘변화하는 노동, 젠더와 법’ 학술대회(학술대회)가 22일 오후2시 법학관 405호에서 열렸다. 학술대회는 우리대학 젠더법학연구소와 한국젠더법학회가 공동 주최했으며, 히가시아시아지역연구소의 윤문희 박사가 통역을 제공했다. 개회사와 환영사 이후 △기조연설 △제1 발제 △제2 발제 △종합. 토론이 이어졌다.

아이자와 미치코 교수는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고 있는 현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여성 지위가 미래에는 더욱 나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strong>정영인 사진기자
아이자와 미치코 교수는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고 있는 현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여성 지위가 미래에는 더욱 나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정영인 사진기자

‘고용상 젠더차별의 근본적 이유-일본의 경우’ 기조연설은 ‘노동·자유·존엄-인간을 위한 노동법을 찾아서’의 저자이자 일본 히토츠바시대(Hitotsubashi University)의 아이자와 미치코 교수(법학연구과)가 맡았다. 아이자와 교수는 일본 고용 현장에서 발생하는 젠더차별의 원인을 가문(이에·いえ) 제도에서 찾았다. 아이자와 교수는 체력이 강한 남성에게 유리했던 전쟁 상황이 여성 지위 하락에 기여했고, 부계 상속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형성 과정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가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의 가문 제도는 성씨 승계뿐만 아니라 가업과 가산을 물려준다. 이러한 경영체적 성격 탓에 가문의 대표인 가장은 강한 권력을 가졌다. 아이자와 교수는 “일본 기업 간부들은 남성 노동자를 하인처럼 여기며 충성을 요구하는 한편, 여성 노동자는 하인 이하의 취급을 한다”고일본 고용상 젠더차별을 지적했다.

기조연설에 이어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부)가 좌장을 맡아 토론회를 진행했다. 두 번의 발제가 이어졌고, 각각의 발표 뒤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제1 발제는 ‘새벽배송 여성노동자 실태와 법적 과제’로, 한국방송통신대 박은정 교수(법학과)가 발표했다. 그는 ‘플랫폼 노동자의 모호한 법적 지위’와 ‘새벽배송의 필요성’에 주안점을 뒀다. 942명(여성 146명, 남성 796명)이 응답한 그의 새벽배송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새벽배송 노동자는 작업 내용과 작업 순서 변경에 대한 권한은 없었지만 수입과 손해를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임금노동자면서 동시에 자영업자의 위치에 놓였다는 의미다. 그는 “사회에서 장시간 근로가 미덕이기 때문에 새벽배송이 존재 의의를 가지게 된다”며, “야간 노동을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연세대 권오성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박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새벽배송 노동자가 근로자라면 (장시간 근로로 인한 고난이) 안 생겼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근로 시간은 곧 돈으로 바뀌는 재화라며 “낮과 밤 둘 다 일하는 한국의 이모작 경제를 그만둘 준비가 됐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노동을 타자화하고 소비자에 감정 이입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를 품어내는 젠더 담론이 되면 좋겠다”며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언급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행했을 때, 규탄 성명 낸 젠더 단체 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현장에는 ‘이주 가사돌봄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체’ 중 하나이자 2024년 8월28일 전국 이주·인권단체 공동 규탄 성명을 낸 한국여노 배 대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순서는 부산대 이재현 박사의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지위와 관련 쟁점’에 대한 발표였다.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배 대표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진행 과정 전반에 대해 “잔혹한 스릴러를 보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가사 노동은 일대일 노동이기에, 중간 업체가 이윤을 취득하면 착취로 변질된다”고 지적했다. 시범사업 계획 수립 당시 그는 이 점을 고려해 가사 서비스 시장을 비영리 생태계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업이 진행되며 해당 내용이 삭제되는 바람에 반쪽짜리 법안이 됐다. 배 대표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 저출생 해법이라던 본사업의 목적을, 비판이 일자 돌봄 공백 해소로 둔갑시켰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어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조건을 개선해야 할 법이 오히려 착취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평가했다.

종합 토론에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이미애 학술연구교수는 가사노동자는 이주민, 이주 여성, 노동 등 여러 쟁점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으며 “돌봄 노동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오랜 역사와 노동력 가치를 폄하한 사회 구조가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할 이 시점에 (필리핀 가사노동자와 같은 사업은) 나쁜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학술대회는 논쟁적인 현장이었다. 권 교수의 “젠더와 노동의 분야가 화해해야 한다”, “필리핀 가사노동자 사업에 연대 서명을 했냐”는 발언에, 현장에 있던 ㄱ씨는 “(나는) 서명도 했고, 여성 노동 분야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인권의 완성인데 오해하시는 게 아닌가”, “(여성 노동을 논의하는) 현장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ㄱ씨는 신상 유포를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아이자와 교수의 기조연설을 듣기 위해 방문한 최유정(29)씨는 “(아이자와 교수가 여성과 노동을) 고정된 프레임에서만 보려고 하지 않고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폭넓은 시각을 다뤄 좋았다”고 평가했다. 아이자와 교수는 특강 이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대가 거듭되며 여성의 지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미래에는 여성 지위가 보다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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