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아시아여성학센터와 일본대 고하마 마사코 특임교수(문리학부) 연구팀의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다시 사유하기’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학술대회)가 12일 인문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국가 주도의 가족 정책이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제약해 온 역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가족주의가 사회통제와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해 온 방식을 다층적으로 조명하는 현장이었다.

일본대 고하마 마사코 특임교수(물리학부)가 12일 우리대학 인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학술대회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다시 사유하기’에서 ‘동아시아 생식 보조 기술 이용의 현황과 일본의 특수성’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일본대 고하마 마사코 특임교수(물리학부)가 12일 우리대학 인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학술대회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다시 사유하기’에서 ‘동아시아 생식 보조 기술 이용의 현황과 일본의 특수성’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개회사에서 고하마 마사코 교수는 동아시아의 저출산 상황을 짚으며 ‘재생산’을 이번 학술대회의 한-일 공통 키워드로 제시했다. 학회는 △한국 가족주의 역사에서 계층, 인종, 젠더의 교차 △동아시아 가족주의의 해체와 재구성I: 일본 △동아시아 가족주의의 해체와 재구성II: 한국까지 총 3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첫 세션에서는 ‘출생 등록이 필요한 이들’과 ‘미혼모’를 한국 가족주의와 연결해 설명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은 외국인 아동의 출생 미등록 문제를 짚었다. 특히 “한국인은 가족 아닌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고, 이주민은 개인 아닌 가족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형적 가족주의”를 지적했다. 미혼모·입양 정책의 역사, 보호출산제의 한계에도 주목했다.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연구소 권희정 소장은 ‘미혼모’라는 범주가 역사적으로 구성돼 왔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흔히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입양 보내기를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국제 정치와 입양 산업의 구조 하에 입양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다시 사유하기’의 두번째 세션 토론에서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동아시아의 가족주의와 재생산 문제를 주제로 논의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다시 사유하기’의 두번째 세션 토론에서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동아시아의 가족주의와 재생산 문제를 주제로 논의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일본 사회가 전통적 가족주의 규범 속에서 돌봄과 출산을 관리·통제해 온 방식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교토산업대 오치아이 에미코 교수(현대사회학부)는 동아시아 사회를 중심으로 돌봄의 가족화와 탈가족화를 설명했다. 그는 “돌봄이 사회의 구석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돌봄 자체가) 사회의 공간”이라며, “사회과학 속에서 돌봄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공립대 타마 야스코 명예교수는 조산록 연구를 통해 근대 일본의 출산 관리가 여성이나 아이에 대한 기록은 등한시한 채 남성 중심 기록에 치우쳐 있는 점을 비판했다.

학술대회는 전통적 가족주의가 돌봄과 재생산을 통제하는 동시에, △비혼 △퀴어 △이주민 등 새로운 주체들이 돌봄과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 한국의 상황까지 폭넓게 다뤘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우리대학 아시아여성학센터 황지성 연구원과 김선혜 교수(여성학과)가 발표를 맡았다. 황 연구원은 과거 한국 산업화 시기의 돌봄 체제를 ‘생명정치적 돌봄’으로 개념화했다. 그는 보호라는 이름 아래 △여성 △장애인 △빈곤층을 수용시설에 가두고 통제했던 역사를 짚었다. 김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의 양상을 설명하며 한국에서 ◆보조생식기술(ART)이 저출산 정책의 핵심 장치로 제도화됐지만, 동시에 비혼 여성과 성소수자 등 새로운 재생산 주체들이 등장하며 기존 가족 규범을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학회 현장을 찾은 이주명(사회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퀴어 이론이나 가족 재생산, 보조생식기술처럼 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주제들을 수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데, 이번 학회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여성학센터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동아시아 맥락에서 고립된 개인과 가족을 넘어, 보다 관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모색했다. 앞으로 한-일 페미니즘의 교류와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조생식기술(ART): 난자와 정자 또는 배아를 체외에서 생식(Reproduction)하는 것을 목적으로 다루는 모든 의료적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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